기록 06
오늘 아침엔 비가 내렸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참 묘한 현상처럼 느낀다. 어린 시절 장마철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한없이 쏟아내리던 비는 방 안에 홀로 자리 잡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들 포근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노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상상을 펼치는 놀이도 좋아했던 내게, 그 모호함의 경계를 지어줄 어른이 없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특히 문밖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딜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비가 내릴 때면, 난 마음껏 상상을 했다. 에어컨을 찾아볼 수 없던 시절이기에 비가 오면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복도식 아파트의 장점은 활짝 열린 현관문을 통과해 들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바람에 품은 비의 향들과, 대지에 부딪혀 울려 퍼지는 무한의 파동을 들이 어린 나의 마음을 다독였다.
비의 기억은 지금도 종종 찾아온다. 그래서 비를 마냥 싫어할 수 없다. 신발이 젖고, 바지가 젖고, 하나의 손은 온전히 우산을 지지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이지만, 옷이 젖어도, 자유로운 손이 하나밖에 없어도 비를 싫어할 수 없는 마음이 내겐 남아있다.
비는 스스로 다짐할 수 없던 순간의 용기를 대신 쥐여주기도 하고, 애써 품은 아쉬움을 놓아줄 핑계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런 비를 거스르곤 한다. 비를 맞는다는 것은 나의 소심한 반항이자, 비를 느끼는 것이다. 아주 가끔은 젖은 신발을 말려야 할 고민도, 머리가 젖어 헝클어지는 걱정도 내어준 채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달리고 싶다. 그것은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의 회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