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작가 이지상 Mar 21. 2019

오키나와 온천, 남탕 안의 여인들

교토와 오키나와의 대중 온천탕에서 겪은 일

 오키나와의 미바루 해변에 있는 '하마베노 차야'는 사진 이미지 때문에 많이 가게 된다. 

 창밑으로 새파란 바다가 펼쳐지는 사진은 환상적이다. 나도 그 사진 이미지에 끌려 그곳에 갔다. 가던 날은 하루 종일 비가 왔지만 거기서 비 오는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낭만일 것 같았다.

 아사히바시 역 근처에서 39번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평범한 주택가가 펼쳐졌다. 한 시간 후, 버스는 바닷가 종점에 도착했다. 미바루 해변은 버스 정류장 바로 아래에 있었다. 아늑한 해안이었지만 비가 오니 썰렁했다. 글라스 보트 선착장들과 바닷가를 거니는 사람들 몇 명만 보였을 뿐 텅 비어 있었다.



 마을 안쪽 길을 따라가다 보니 왼쪽에 ‘카리카 식당’이 보였다. 문이 닫혀 있었다. 식당 앞 바닷가에 넓은 천막이 쳐졌고 그 밑에 하얀 테이블이 놓인 것으로 보아 비가 안 오는 날에는 문을 여는 것 같았다. ‘하마베노 차야’ 카페는 거기서 얼마 안 떨어진 바닷가에 있었다. 겉으로 보면 볼품없었지만 계단을 내려가 문을 여니 멋진 실내가 나왔다. 

 “우와, 멋져!”

 내 뒤를 따라 들어온 한국 여인들이 감탄사를 연발했다. 구석에 혼자 앉아 있던 일본인 중년 사내가 깜짝 놀라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 소란이 가라앉자 다들 창가에 조르르 앉아 말없이 바다를 감상했다. 고급스러운 집은 아니었지만 위치가 기가 막혔다. 바닷가 언덕을 깎아 만든 집으로, 창밖의 파란 바다 사진으로 많이 알려진 집이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달랐다. 널리 알려진 것은 맑은 날, 밀물 때 바로 카페 앞까지 찰랑거리는 바다 사진인데 지금은 썰물 때라 바다 바닥의 산호가 뼈처럼 드러난 풍경이었다.



 그래도 비 오는 하늘과 멀리 보이는 흐린 바다는 수채화 같은 운치가 있었다. 샌드위치와 바다의 포도라는 우미부도를 먹고 커피를 마시는 동안, 사람들이 계속 왔다.




 비수기, 그것도 비가 오는 날인데 이러니 성수기 때는 어떨까? 줄까지 서고 대기표를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30분도 안 되어 일본인들 몇 명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고 내 옆자리에도 가족으로 보이는 일본인 세 명이 앉았다. 노부부와 아들 같았다.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러지 못한 옛날의 내가 생각나 조금 우울해졌다. 어느새 좁은 카페 안이 사람들로 그득했다. 오래 앉아 있기가 좀 미안한 분위기였다. 사진을 찍었으면 곧 떠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오는 데 보니 기념품이 전시된 곳에 고양이가 있었다. 인형인 줄 알았는데 살아 있는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세상이 지겨운 듯 눈을 감고 잠에 취해 있었다.

 

   


 그곳에서 나와 카리카 식당으로 향했다. 성수기 때는 사람들로 붐비는 바닷가겠지만 아무도 없었다. 차양 밑의 텅 빈 의자에 앉았다. 오다가 자판기에서 뽑은 캔 커피에 아침에 산 오키나와 빵 ‘사타 안다기’를 먹었다. 사타 안다기는 약간 단맛이 나는 오키나와 도넛이다. 갖고 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썼다.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 바람이 선선했다. 글 한 줄 쓰고 바다 바라보고, 또 한 줄 쓰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작은 섬들이 불쑥 솟아난 적막한 바다는 그림 같았다. 







 나는 왜 이토록 뭔가를 쓰고 또 쓰는 것일까? 별 것을 쓰는 것은 아니다. 여행의 과정에 대해, 풍경에 대해, 내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계속 쓴다. 그러나 가끔은 다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글을 멈춘 채, 흐린 하늘과 회색빛 바다와 흩뿌리는 비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세상은 고요했고 볼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했다. 목적지보다도 길을 오가며 만난 우연한 순간들이 더 좋았다.     


 나하로 돌아오는 길은 피곤했다. 오자마자 여관 옆 식당에서 데비치 탕을 먹었다. 비 오는 날, 피곤한 몸으로 먹는 돼지 족발탕은 쫄깃쫄깃하고 고소했다. 




 저녁을 먹은 후 여관 근처의 온천탕으로 갔다. 국제거리 스타벅스 근처에서 미에바시 역 쪽 방향으로 가는 어느 골목길에 대중 온천탕이 있었다. 



 입장료는 한국 돈으로 1만 원 정도. 돈을 따로 더 내고 큰 수건을 빌렸다. 한국처럼 탕 안에 수건이 준비되지도 않았지만 그보다도 내 몸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전번에 왔을 때 남탕의 탈의실 안에서 옷을 모두 벗고 있는데 50대 아줌마가 벌거벗은 사내들 사이를 걸어 다녀 당황스러웠었다. 아줌마는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 시선을 내리 깔고 있었고, 60대 후반의 장화 신은 할머니는 온도계로 온천탕의 온도를 태연한 얼굴로 쟀다. 온천탕의 벤치에 맨 몸으로 벌러덩 누워 있는 사내, 벌거벗은 채 왔다 갔다 하는 사내들은 할머니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허리 고부장한 할머니 역시 사내들을 남자로 보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교토의 대중탕에서도 그랬었다. 다 벌거벗은 남자들 사이를 아줌마가 돌아다니고 있었고 남탕과 여탕 사이의 경계선에 앉아 표 받는 아줌마는 벌거벗은 아저씨와 하나도 이상하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그 시절 교토 대학 유학생이었던 사촌 형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당연하게 역긴다는 말을 했었다. 

 겨울, 시베리아 횡단 중에도 그런 광경을 보았었다. 아바칸이란 도시에서 대중탕에 들어갔는데 남자 탈의실과 욕탕을 노파가 거리낌 없이 돌아다녔다. 탈의실도 허름하고 욕탕에는 탕도 없고 샤워기만 있어서 을씨년스러웠다. 결국 그냥 나오고 말았는데 그런 나를 보고 청년들이 낄낄거리며 웃자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쳤다.


 문화란 게 이상하다. 남들이 다 그러면 또 그런가 보다 한다. 금기, 경계가 쉽게 무너진다.  온천탕에 들어갔다 나오니 온몸이 녹는 것 같았다. 벌거벗은 채 탕 옆의 벤치에 앉아 창밖에 걸린 어둠을 바라보니 비몽사몽. 3개월 전으로 돌아온 것 같고, 한국을 떠난 지 3개월이 된 것도 같았다. 눈을 감았다 한참 후에 떠보니 이미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장화 신은 할머니가 앞에서  온도를 재고 있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할머니도 나도 무심했다. 

      

==========================================================================


이것에 관한 이야기와 국제거리에 관한 이야기는 팟빵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0775

매거진의 이전글 일본 속의 이방인, 오키나와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