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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Mar 17. 2019

오키나와 맛집? 자유와 우연이 더 좋아

오키나와에서 라멘을 먹으며

(이전에 발행한 것이 제가 잘못하여 삭제가 되어 버렸네요 ㅠ.ㅠ...그래서 다시 똑같이 복구합니다. 이전 글에 대해 라이킷을 눌러 주신 분들의 흔적이 모두 사라져서 미안합니다.)



맛집이 누구에게나 맛집인가     


 오키나와 나하,  국제거리 근처의 어느 길에 늘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라멘집이 있었다. 항상 그랬다. 그런데 대개 한국인과 중국인들만 있었다. 원래 줄 선 곳은 잘 안 가는 나지만 도대체 얼마나 맛집이길래 이토록 사람들이 늘, 많이 기다리나? 그리고 왜 일본인은 하나도 없고, 중국인과 한국인만 이렇게 줄을 서나? 그게 궁금했다.

  하루는 시간이 많아서 줄을 선 적이 있었다. 줄이 구불구불 이어졌고 사람들도 엉겨 있는 형태가 되자 식당에서 젊은 사내가 나와 줄을 반듯하게 서달라고 부탁했다. 사내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보기에 혼란스러워서 그런다기보다는 몇 자리가 났으니 몇 명 들어오시오, 혹은 한 자리가 났으니 혼자 온 사람 들어오시오, 하는 식으로 안내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은 줄을 맞추는 것 같았지만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호떡집에 불난 것 같은 중국어 소리, 자갈 굴러가는 한국어 소리가 뒤섞인 채, 같이 온 사람들이 비스듬히 옆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갑자기 줄에 서 있던 중국 아이가 도망치자 엄마가 소리를 지르며 쫒아갔다. 젊은 종업원은 그걸 보며 얼이 빠진 채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간판을 보니 규슈 라멘 무슨 대회에서 1등을 먹은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일본 사람은 없고 중국인과 한국인만 있을까? 아마도 외국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세계에서 유명한 집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무려 40분 정도를 기다린 후 들어갈 수 있었다. 안은 좁은 곳이었다. 중앙의 주방에서 라멘을 만들고, 그 주변에 10여 명이 죽 둘러앉아 먹는 구조였다. 자판기에서 직접 표를 뽑아야 했는데 내 앞에 선 젊은 한국인 남녀 네 명이 헤매고 있었다. 자기 먹을 것을 자기 돈 내고 뽑으면 간단한데, 돈을 모아서 한 사람이 표를 뽑기 시작했다. 각자 먹을 것을 분명하게 정하지 않아서 고민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한참을 그러다 버튼을 잘못 눌렀다. 한 남학생이 취소한다고, 바쁘게 일하는 종업원을 찾아가 말했다.  한숨을 내쉬는 종업원의 얼굴에 짜증이 배어 있었다. 표를 뽑자마자 한국 학생들이 빈자리에 앉으려고 하니 종업원이 제지를 했다. 아직 치우지 않은 자리였기 때문이다. 한국 같으면 별 흠이 될 것은 없지만 일본 분위기에서는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약간의 문화 충돌이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나는 미리 생각한 게 있어서 자판기에서 쉽게 뽑았고 눈치를 보며 기다렸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은 후, 자리에 앉으니 주방의 나이 든 요리사가 표를 주었다. 거기에 매운 것, 면발 등을 표시해서 제출하는 것 같았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나지만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속 편하게 다 중간에 표를 했다. 그런데 옆에 앉은 한국 청년이 ‘잉글리시’ 하며 다른 표를 요구하자, 면 만들던 노인이 영어로 쓰인 표를 주면서 째려보았다.

 하하. 난 이런 상황이 좀 웃겼다. 그러니까 한국 젊은이는 당연히 할 말을 한 것이지만, 워낙 바쁜 상태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노인도 피곤하겠지.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먹어야 하나?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잠시 후, 파와 참깨가 듬뿍 들어간 라멘이 나왔다. 




             

  좀 짜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고소하고 맛있었다. 글쎄, 나는 입맛이 둔해서 평가를 잘 못한다.  ‘아주’ 맛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내 옆에 앉아 있던 한국인 일행은 5분 정도 되자 나가 버렸다. 젊은 남자는 반만 먹다 말았고 여자는 거의 입에 대지 못했다. 종업원들이 그걸 보면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입맛이란 다 다르다. 평소에 일본 라멘을 좋아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낯선 이국땅의 '라멘 맛집'이 자신의  입맛을 항상 만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가이드북, 인터넷, 신문에 올라오면 일단 믿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누가 올리는가? 사람이다. 사람 입맛은 다 다르다. 특히 외국 음식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쓰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입맛이 다르고, 먹는 사람끼리도 다르다.

 그런데 여행 가서 '맛집'을 찾는 이유는 물론 '맛'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문나면 남들 먹는 것을 해보아야 한다는 '초조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걸 먹지 못하고 오면 손해 보는 느낌. 특히 비싼 비행기 타고 나온 낯선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평범한 것들, 예를 들면 햄버거를 먹는다면  "아니, 여기까지 와서 그걸 먹어?"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당연한 심리다.  그런데 요즘은 정보가 너무도 난무한다. 특히 맛집은 더욱 그렇다. 미식가가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들도 너도나도 정보를 올린다. 일단 거기에 사람들이 쏠리면 정말 '맛집'처럼 보인다. 맛 이전에 남들이 다 가는 유명한 맛집을 자신이 왔다는 사실에 더 성취감을 느낀다. 자랑도 하고 싶다. 사진을 찍고 sns나 블로그에도 올린다. 맛없게 느껴져도 '아니오' 하는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혼자서 그렇게 생각해도 sns나 블로그에 솔직하게 적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물론 모든 맛집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진짜 맛있고 누구나 칭송하는 맛집들도 있다. 그런데 어떤 소문, 이미지에 의해 탄생되는 맛집들도 많아 보인다. 요즘 서울 시내 다니다 보면 매스컴 탄 '맛집' 간판이 수도 없이 보인다.    


       

복제된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하는 사회


 남미의 작가 보르헤스는 이런 우화를 인용한 적이 있다. 어느 제국의 지도 제작자들이 땅과 정확히 일치하는 정밀한 지도를 만들어 영토를 덮어버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지도는 닳아 없어지고 몇몇 조각들만 폐허 위에 나뒹군다.  즉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아름다움은 썩은 고기처럼 부패하여 흙이 된다. 이 이야기는 지도가 아니라 원본, 즉 흙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 철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장 보드리야르는 이 보르헤스의 우화를 변형시켜 '현대에는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며, 지도는 건재하고 오히려 영토의 조각들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즉 이미지가 현실을 지배하고 현실은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제 정말 맛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 이전에 - 물론, 그건 평가할 수 있는 것이지만, 또 애매모호한 부분도 많다. -  이미지화되어 유포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더 선행된다. 현실이 이미지에 지배당하는 것이다. 이제 여행자들은 정보, 이미지, 기호에 의해 어떤 나라에 오기 전부터 보아야 할 것, 먹어야 할 것들의 궤도를 만든다.  여행은 정보가 없던 예전처럼 우연이 이끄는 불확실한 모험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궤도'를 따라가는 행위가 된다. 무엇이 볼 만하다고 소문나고, 무엇이 먹을 만하다고 텔레비전에서 방송되면,  가봐야 할 곳, 먹어야 할 것이 되면서, 안 하면 억울한 느낌이 들어버린다. 남들 다하는데 자기만 쳐지는 것 같은 초조함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도 사진을 찍어 이미지를 유포하고, 정보를 확산하며 거기에 동참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     

 장 보드리야르의 말에 의하면, 이제 현대는 원본 없는 복제된 이미지, 즉 시뮬라크르가 현실을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도망갈 곳도 없다. 이렇게 글을 쓰는 나 역시 그런 정보, 기호, 이미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완벽하게 거기서 벗어난 시선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 머릿속의 정보와 이미지가 다 주변의 매스컴을 통해서 온 것들이기에.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좀 피곤해진다. 피하는 방법은 정보나 이미지를 거부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 것이다. 적절하게 이용하되 포기하고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동안 국내에서 매스컴에서 소개한 맛집을 찾아다니며 실망도 많이 했기에 훈련을 많이 했다. 이제는 소개된 곳이든 아닌 곳이든,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치면 간다.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안 가고. 내 자유롭고 우연한 여행에 방해를 하는 것은 가차 없이 버린다.


 오키나와 나하의 라멘 집, 맛을 찾아서라기보다는 시간이 많아서, 또 궁금해서 우연히 들어가 본 곳이었다. 내 입맛에는 괜찮았다. 줄이 너무 길어서 피곤했지. 그러나 일부러 다시 찾아가고 싶지는 않다. 길을 가다 우연히 들른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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