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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Apr 10. 2019

오키나와 아메리칸 빌리지와 미야기

미야기 해변에서 맛본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




아메리칸 빌리지     


 아메리칸 빌리지를 낮에 처음 갔을 때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 커다란 대 관람 차가 하늘 높이 우뚝 서 있었고 미국풍의 건물과 알록달록한 색깔의 상점들이 들어선 그곳은 관광지스러웠다.


 그러나 두 번째 갔을 때 근처 언덕 위의 어느 카페에서 행복한 순간을 맞았다. 드넓은 태평양을 바라보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훈훈한 바람을 맞으며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하와이 풍의 음악을 들었다. 마치 하와이 근처의 어느 섬에 온 것 같았다. 아까 남자 종업원도 몸집이 큰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을 닮았다.  일본어를 쓰지만 일본인이 아닌 느낌.  오키나와에 앉아 멀리 떨어진 다른 세상을 상상했다. 잠시 시간을 잊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원래 미군이 쓰던 비행장을 개조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공군기지들이 있다. 오키나와 본섬 면적의 20%가 미군기지로 사용되고 있고, 주일 미군의 46%가 주둔하는데도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부대와 비행장이 내륙 안쪽에 있고 관광객들이 그곳으로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개의 여행자들은 아메리칸 빌리지 근처의 영어 간판들을 통해서 미군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세 번째 갔을 때는 멋진 일몰을 보았다. 아메리칸 빌리지는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미야기 해변     

 

 미야기 해변은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다. 첫 여행 때 예약한 숙소가 여기였기에 갔을 뿐이다.

 처음에 가서 방파제에 올라서는 순간, 탁 트인 파란 바다 앞에서 탄성을 내 질렀다. 와아! 



 예약했던 바닷가의 숙소의 4층 방은 작은 방이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창밖으로 수평선이 보였고 욕실에서도 바다가 보였다. 물 마사지까지 되고 헤어드라이기, 온풍, 냉풍이 다 되는 에어컨 등 좁지만 있을 것은 다 있었다. 창문을 조금 여니 파도 소리와 상쾌한 바람이 몰려들었다. 나는 고급 호텔보다 이런 곳이 아늑해서 좋았다.    


 그 후 두 번째, 세 번째 왔을 때도 나는 이곳에 묵었다. 휴대폰으로 재즈 음악을 듣고, 노트북에 글을 썼다. 늘 파도 소리가 들렸고 낮이고 밤이고 나는 방파제에 나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일몰이 시작되고 있었다. 멀리 바다 한가운데를 미끄러지는 사람이 보였다. 배가 아닌 평평한 보드를 타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였다. 바다에서 솟아난 여신처럼 보였다. 황홀했다. 운이 좋았다. 장마철에 이런 일몰과 이런 풍경을 보다니.




 다음 날 낮에 그 보드를 탔던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남녀가 함께 섞인 그룹으로 그들은 낮에도 보드를 타고 있었다. 나이는 50대 정도로 영어권 사람들이었다. 물어보니 그들이 탄 것은 ‘스탠드 업 패들 보드(stand up paddle board)’라고 했다. 미야기 해변은 수영할 수 있는 비치가 아니다. 스노클링, 보드 서핑 등을 즐기는 해변이다. 그리고 나처럼 방파제에 걸터앉아 풍경을 감상하는 곳이다.


 미야기 해변에는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오키나와 현지인, 관광객, 다이버들, 일본인, 대만인, 미군 가족, 싱글들, 커플들 그리고 숙소, 가정집, 식당들이 공존했다. 아메리카 빌리지처럼 고급 리조트 호텔, 비치, 상점가들이 모인 곳이 아니었다. 여행자들의 낭만과 현지인들의 일상이 함께 했다.


 나는 이런 분위기를 좋아한다. 하나가 일방적으로 지배하지 않고 모두 살아남는 곳을. 식당들도 다양했다. 일본 전통 소바, 초밥, 피자, 그리스 음식 기로스, 카레라이스, 피쉬 앤 칩스, 술집, 바 등이 있는데 대부분 작았다.

 

그중에서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하마야 소바집. 지금도 그 맛을 잃지 못해 소바 앓이를 하고 있다. 물론 이곳에서는 오키나와 소바도 판다. 




 이곳에서 별로 할 것은 없었다. 할 일 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들었다. 최고의 순간이었다.





밤이면 방에서 눈을 감고 파도 소리를 들었다. 

철썩철썩. 반복되는 리듬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나는 내가 가끔 우울한 이유를 잘 안다. 

너무  바쁘거나, 사람을 안 만나고 살아서이기도 하지만 어느 집단 혹은 가치관에 소속되지 않은 자의 운명이다. 세상을 여행하며 그 모든 것이 주관적, 상대적, 시대적 한계에 쌓인 허상, 껍질이란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그 속에 안주하기 힘들다.

 

그래서 자유롭고 약간은 허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접속하여 살아야 하는 현실. 

그것이 우울의 시발점이다. 나의 우울은 내 안의 원심력과 세상의 구심력 사이에서 파열하는 자아에서 왔다.


균열하는 나를 위로해준 것은 무한한 자연이었다. 

파도 소리, 바다 바람, 밤의 적막……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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