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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Mar 30. 2019

글쓰기 표절에 관한 이야기

배워야 겸손한 글쓰기가 된다


   

 표절의 문제는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그러나 내가 일하는 분야에 국한해서만 말하고 싶다.

  자신의 경험만 쓰는 에세이나 여행기는 표절이 금방 드러난다. 그것은 자신의 주관적인 표현, 경험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정보를 다루는 여행 가이드북은 애매한 부분들이 많다.  역사적 사실이나 관광지의 수많은 정보는 자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남의 것’을 참고한다. 그런데 어디까지 밝혀야 할까? 일일이  ‘이건 내가 어디서 참고한 것’이고, ‘저건 내가 어디서 참고한 것’이라고 다 밝힐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어디서 보고 들은 것을 다 ‘아는 척’ 하고 쓰기에는 또 미안한 감도 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이드북에서는 논문처럼 주석을 달아가며 쓰지를 않는다. 


 상상마당에서 나의 강의를 듣던 사람들 중에 가이드북을 쓴 작가들이 있다. 가이드북을 쓰면서 그런 부분들이 고민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니까 남의 것을 대충 각색해서 쓰기에는 마음이 좀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람들이었다. 

 가이드북 작가들은 많은 자료를 참고하게 된다. 자료란 남이 쓴 것들이다. 숙박, 교통, 식당 등의 실질적인 정보는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것이기에 직접 당당하게 쓰면 되는데, 역사와 유적지의 문화적인 이야기를 쓸 때는 여러 자료를 참고한 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적당히 각색하며 자기 식대로 표현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다. 가이드북은 학술 논문이 아니기에 주석을 달아가며 참고문헌을 밝히지 않는다.

 이 책 저 책, 이 정보, 저 정보를 취합하고, 취사선택하는 가운데 작가의 주관적 의견이 들어간다. 글발 좋은 사람이라면 멋진 글들이 나온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것일까? 표현은 자기 것이지만 자기가 직접 취재한 정보가 아니라 남의 정보를 사용한 것이라면 순수하게 자기 것은 아니다. 즉 정보는 남의 것, 표현은 자기 것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표현한 글을 이제 또 다른 사람이 참고했다고 하자. 그걸 ‘그대로’ 갖다 쓰면 ‘남의 표현과 정보’를 표절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 정보를 적당히 각색해서 자기 말로 바꾸면 그것은 또 다른 사람의 ‘자기 것’처럼 보인다. 물론 출처를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해서 표현을 바꿔 가며 계속 복제, 복제, 복제.... 되는데 가면 갈수록 처음의 정보와는 다른 이야기도 생겨나게 된다. 심지어는 잘못 쓴 정보를 그대로 갖다 쓰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대개 가이드북 저자들은 수많은 책들을 참고하게 된다. 관광청 팸플릿, 신문, 잡지. 단행본, 인터넷 정보, 백과사전, 남의 가이드북, 남의 여행기, 블로그 등 수많은 것을 보고 비교하면서 적절하게 추려내는 경우가 많다. 더 필요하면 학술적인 논문을 참고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일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참고하는 자료들이 완벽하게 진실에 가까울까? 아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글과 말들은 100% 정확하지 않다. 주관적, 한계에 쌓여 있거나 오류도 많다. 예전처럼 ‘신문에 나왔대’, ‘책에 나왔대’라는 것이 기준이 되는 세상이 아니다.

 매스컴의 기사, 뉴스 자체가 신뢰성이 없어졌다. 사실은 옛날부터 그랬다. 그러나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믿어주었다. 지금은 믿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믿을 수 없는 신문 기사, 인터넷 기사들을 보고,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다른 '정보'를 생산해내는 세상이다. 이 세상의 많은 지식과 정보가 너덜너덜한 넝마처럼 보이는 이유다.

      

 세상을 더 오래 살고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허구적인 요소’가 드러난다. 세상 전체가 그런 요소가 있다.

    

 그럼 내가 쓴 여행기, 여행 에세이는 어떨까?

 여행 에세이의 경우는 남의 표현을 표절하지 않는 이상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비록 남의 영향을 받았다 하더라도 자기 안에서 녹아 나오면 표절의 위험은 없다. 어딘지 영향받았다는 소리는 들어도. 

 그런데 여행기는 좀 다르다. 여행기를 쓰다 보면 역사적 이야기, 문화적 이야기가 들어간다. 자신이 공부한 것, 혹은 현지에서 구입한 책자를 통해 풀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럼 그것이 정확한가?  아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오류를 전파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내가 요즘 들어서 여행기, 예를 들면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나, ‘도시 탐독’, ‘여행 작가 수업’ , '중년 독서'등의 대중서에 주석을 달고, 참고문헌을 밝히는 이유다. 즉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를 구분하고, 내가 이런 책을 참고했으니 관심이 있거나 의심이 들면 확인해 보십시오.’라는 겸손한 의미다.


 우리 사회에는 아주 잘못된 관행이 있다. 그건 학계에서 죽 있어 왔는데 남의 것, 특히 외국 자료를 참고해놓고 그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마치 자신이 밝혀낸 것처럼 으스대는 풍토. 그거 옛날에 아주 고질적이었다. 그것이 요즘 들어서 탄로가 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태도가 이제는 학계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넓게 퍼져 있다. 인터넷 세상 아닌가? 심지어는 남의 글을 갖다가 자기 것처럼 각색해서 자기 블로그를 꾸미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세상에서 표절과 저작권은 무엇이며 그것을 피하기 위한 인용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것만 잘 알아도 글 쓰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당당하게 자료를 인용하고 밝히는 가운데 자신의 글의 세계가 넓어진다. 이런 자세, 태도, 방법을 모르면 남의 것을 갖다가 쓰면서 출처 숨기고 각색하는 가운데, 뻔뻔한 사람이라면 그것이 ‘자기 것’인 것처럼 착각하고 오만해지고(그런데 그게 어디서 온 건데?) 반면에 순수한 사람은 어딘지 찜찜한 기분을 느끼며 마음이 편치 않게 된다.

     

 이런 훈련을 대학에서도 하지 않는다. 우리 교육의 크나큰 맹점이다. 나도 대학원에 가서 논문을 쓰는 가운데 확실하게 훈련받았다. 물론 그것도 훈련받지 못해 논문을 표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방법을 알면 당당하게 남의 자료를 인용할 수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자기 것이 대개는 없다. 남의 것을 참고로 한 후 거기다 조금 자기 생각을 얹는 것이다. 그래서 배울수록 겸손해진다. 또한 배워야만 겸손한 가운데 당당하게 쓸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의 지적인 행위이며 거기에도 예의와 법도가 있다. 사람 홀려서 물건 파는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대중서는 학술 논문이 아니다. 여행 가이드북이든 여행기든. 현실적으로 주석을 달기가 힘들다. 출판사에서도 원하지 않고 대중들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럼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건가? 적당히 각색하여 '자기 것'처럼 얘기해도 되는가? 자기가 창조한 게 아닌데? 그 부정확성은?  그 겸손하지 않음은? 

 그렇다고 일일이 밝힐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또 자기 것과 남의 것의 경계선이 그렇게 분명한가? 

 나는 25권의 책을 쓰는 가운데 그런 고민을 많이 했었고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냈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표절, 저작권, 인용 문제를 먼저 쓰게 된다. 문득 충동이 일어서 그렇다.

 사실은 내가 요즘 인간사, 세상사를 보며 거대한 허구성을 느껴서 그렇다.

 우리의 언어, 언어로 만들어지는 세계가 허구라는 느낌. 그 허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존재도 사실은 허구.

 또한 그 허구적인 존재의 불확실한 미래, 운명...

 세상 뭐 하나 확실한 것은 없다.  

 절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을 철저하게 각성할 때 차라리 희망이 보인다.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또 서로가 서로의 생각과 글을 참고하고 영향받고 살아가는 가운데, 

 예의와 법도는 필요하다는 생각에 표절과 인용에 관한 글을 써본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 매거진에서 그런 얘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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