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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Mar 19. 2019

글쓰기가 잘 안 되는 여행

여행 후의 글쓰기가 힘든 까닭


 “여행 때는 정말 좋았는데 돌아와서 글로 표현하려면 잘 안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왜 그럴까?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인도나 실크로드 여행은 아주 오래 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들을 쓸 수 있다. 반면에 일본은 5, 6개월의 여행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쓸게 없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그중의 가장 큰 것은 기록을 했는가, 안 했는가였다. 기록이 없으면 글이 잘 안 나온다.   


기록해야 나중에 글이 잘 나온다.


 사람의 기억이란 한계가 있다. 일주일 여행했으면 그 기억과 감상이 일주일 가고, 한 달 여행했으면 한 달 가고, 두 달이면 두 달 간다. 이때 기록해 두지 않으면 돌아와서 쉽게 잊고 만다. 나는 첫 장기 여행이었던 6개월 동안 동남아, 일본 여행에 대한 일기를 별로 쓰지 않았었다. 어디서 자고, 뭘 먹고, 버스비가 얼마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등의 정보들만 요약해서 적었지 현장의 묘사, 나의 느낌, 생각 등에 대해서는 안 썼었다. 밤이 되면 피곤하기도 하고, 술 마시며 놀다 보니 일기 쓸 여유가 없었다. 지금 그 시절의 여행은 어렴풋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 후 인도, 실크로드, 시베리아, 아프리카 여행은 물론, 여러 번 간 수많은 나라들에 대해서도 매일 2시간 정도씩 일기를 썼다. 그 일기장을 보면 지금도 글이 나온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할 때 기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기억으로만 남겨 두었다가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남는 인상적인 기억만 갖고 글을 쓴다고 한다. 그의 여행에 관한 글이 대개 수채화 같은 에세이류인 까닭이다.  물론, 그것도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글솜씨가 탁월하거나, 관찰력이 뛰어나거나, 기억력이 좋다거나, 이미 세상에서 좋은 평판을 얻은 이들이나 그렇게 글 쓰고 책을 낸다. 그래도 출판사에서 환영하고 많은 이들이 사준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들이 그렇게 글을 쓰면 과연 쉽게 환영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글을 쓰다 보면 기록이 아쉬울 것이다.  


  여행 경험이 너무 많아져도 글쓰기가 힘들다.     


  나는 다섯 차례에 걸친 약 1년 반의 인도 여행 경험을 ‘슬픈 인도’라는 에세이로 냈는데 매우 힘들었다. 책 한 권에 수많은 경험을 배낭 여행기 식으로 풀자면 책 열 권으로도 모자랐다. 결국 수없이 쓰고 버리는 가운데 수채화 같은 에세이가 나왔다.

 그 외에 베트남 여행기 ‘호찌민과 시클로’, 캄보디아 여행기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와트’, 터키 여행기 ‘길 위의 천국’,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 홍콩 여행기 ‘도시 탐독’ 등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몇 번씩 갔다 와서, 혹은 한 군데 두세 달 정도 머물면서 썼다. 한 권의 책에 실타래처럼 얽힌 경험을 어떻게 풀어 넣을까가 고민이었다. 글 쓸 거리가 너무 많아 고민이었다. 양도 방대하고, 결도 다 달라서 단순히 ‘본 대로, 느낀 대로’ 쓸 수는 없었다.

 이렇게 경험을 묵히면 깊이 있는 것은 나올 수 있지만 글쓰기는 힘들어진다. 물론 풍부한 경험 속에서 잘 맞는 방식을 잘 잡아내면 좋은 글이 나올 가능성이 많지만.    



 여행 기간이 너무 짧고 바쁘거나 즐겁고 편안해도 글이 잘 안 나온다.    

 

 너무 짧은 일정에 바쁘게 돌아다니면 정보, 혹은 여정을 평이하게 나열하는 글이 나오기 쉽다. 자신에게는 소중할지 모르지만 이제 이런 경험이 너무 흔한 사회가 되었다. 천천히 여행하거나, 한 군데 좀 오래 묵으면 감성과 경험이 가슴에 고인다. 그럼 글쓰기가 쉽다. 그렇지 않고 바쁘게 휙휙 돌아다니고 떠나면 그런 것이 고일 여유가 없다.

 또 여행 자체가 평범하면 글이 잘 안 나온다. 남과 다른 경험을 가져야 본인이 글 쓰고 싶거나, 말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해외여행 초창기에는 정보나 경험이 희귀했기에 짧은 여행 경험 갖고도 얘기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런데 요즘처럼 여행이 보편화, 대중화된 시대에는 특별하지 않으면 글 쓸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뭐, 남들도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일 텐데’라는 마음이 들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안전한 패키지여행, 친구들과 어울리는 즐거운 여행은 별로 글이 나오지 않는다. 좀 고생도 하고, 갈등도 있고, 슬프기도 하고 혹은 미치도록 즐거워야 글이 잘 나오는데 적당하게 즐겁고 안전한 여행은 여행 자체는 만족스러워도 돌아오면 별로 쓸게 없다. 아니 써도 남이 별로 관심 없는 글이 나오기 쉽다.  


  글 쓰는 연습이 안 되었을 때 글이 안 나온다.     

 

 사람들은 ‘테크닉' 있으면 금방 글이 나올 줄 알지만 천만에,  글은 습관적으로 써야만 잘 나온다. 경험 속에서 형성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자기 나름대로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단한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다.     


 대략 이것과 반대되는 여행, 반대되는 행위를 하면 글이 잘 나오는 편이다.

 즉 기록을 하고, 적절한 기간, 적절한 방식의 여행을 하고, 약간 힘든 여행을 하고, 혼자서 하고, 잘 맞는 글의 방식을 찾아내면 글이 잘 나오는 편이다. (기록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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