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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작가 이지상 May 06. 2019

출처를 밝혀도 표절이 될 수 있는 것

출처를 밝힌다고 항상 표절이 아닌 것은 아니다

출처를 밝히고 인용해도 표절이 될 수 있는 것     


출처를 표시한다고 표절의 혐의에서 무조건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저술을 이것저것 너무 인용해서 ‘짜깁기’ 식으로 논문이나 책을 만들 경우 이것은 저작권법 제28조의 ‘정당한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 표절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나라의 여행기를 쓰면서 그 나라에 대한 여행기, 가이드북 열 권을 앞에 갖다 놓고, 이 내용, 저 내용, 이 표현, 저 표현을 갖다 쓰며 ‘짜깁기’로 책을 만들 경우, 아무리 출처를 밝혔다 하더라도 표절이다. 자신의 얘기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 약간 참고해야지 남의 글들을 짜깁기해서 뭔가를 만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가 기준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보이지 않는데 요즘 문학에 패스티시(pastiche) 기법, 즉 원본에서 따온 것을 복제하거나 수정해서 짜깁기하는 기법 등이 있다. 이 책 저 책에서 남의 글을 따다가 자기 글처럼 발표한 것인데 출처를 밝히지 않아서 심사위원들이 다 속았던 예가 한국에서 1990년대 발생했다.


 독일에서도 얼마 전 이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한겨레』 신문을 인용해 소개한 사건을 보면, 독일의 어느 젊은 작가가 다른 블로그, 다른 책들의 문장들을 모아서 작품을 발표했는데 출처를 밝히지 않아 나중에 논란이 되었다. 그러자 작가는 ‘처음부터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불찰’이지만 ‘도대체 왜 이 난리들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 후 이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처럼 표절과 창작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인류 사회에서 언어, 지식, 작품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타났기에 창작의 경계가 모호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 황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그걸 발표한 후, 거기서 발생하는 경제적 수익을 그가 표절한 블로거들, 저자들에게 배분해 주고 그것을 ‘지적 유희’로 즐겼다면 멋지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런데 ‘남의 것’을 이용해 자기의 부와 명에를 축적한 후, 원래 세상이 그렇다고 말하는 태도는 얄밉고 한심해 보인다.


 옛날 사람들은 지식, 작품을 자기의 부와 명예를 위해 이용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를 동양이나 서양에서는 천하게 보았기에, 자기 것을 만들면서도 이름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또 남의 것을 인용해도 그걸로 수익을 챙기지 않았다. 그래서 ‘작자 미상’의 작품들이 많다. 그런데 현대는 다르다. 저작권, 표절에 대한 문제가 요즘 불거지는 이유는 그걸 통해 ‘돈과 명예’가 집중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윤리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 그 독일 작가의 글들을 이용해 ‘똑같이’ 조립해서 돈과 명예를 획득했다면? 그리고 정작 그 작가는 잊히고 소외당했다면 그의 심정이 어떨까?
 그가 지금처럼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다’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모르겠지만, 작가들은 에고가 강하다. 그렇게 쉽게 세상을 놓고 초탈하기는 아마도 힘들 것 같다. 자기가 당할 때는 또 다르게 생각되지 않을까?


그래도 남는 의문들      


표절, 저작권법, 출처 인용에 대해 조사하면서 계속 생기는 의문이 있었다.

남의 것을 인용할 때 저자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출처를 표시한다는 것만으로 모든 인용이 법적으로 가능한 것인가? 표절은 피한다 해도 허락받지 않고 글을 실으면 저작권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까?


2011년 7월 1에 개정되어 시행된 저작권법 제28조에 의하면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해서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고 한다.


논문의 경우에는 교육, 연구에 해당하기에 이 법조문에 해당된다. 하지만 대중서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내용이 ‘비평, 교육, 연구’적인 성격을 띤다고 해도 책의 형태로 서점에서 거래된다. 이것에 관련된 법조문을 찾으려 해도 명확한 것이 없어서 뭐라 명쾌하게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럼 저자의 허락을 받아야 법적으로 인용이 가능한 것인가?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몇 줄의 글을 인용할 때마다 출판사, 저자에게 허락받고, 외국 원서는 외국에까지 연락해서 허락받아야 하나?

 실제로 다른 책에서 일정 분량을 혹은 시 한 편을 전부 인용할 경우, 출판사와 저자의 허락을 받거나 돈을 내고 있다. 저작권법이 강화되고 있기에 요즘에는 그렇게들 하고 있다.

그럼 그 양은 어떻게 결정하나?

 

미묘한 문제들이 전개된다. 적절한 인용에 대해 출처를 밝히면 표절은 아니겠지만 이처럼 저작권법 문제가 남는다. 물론, 현실에서는 적절한 인용과 출처를 밝히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법적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서로 좋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 자신의 글에 내 글을 밝히고 인용하면 고맙게 여길 것 같다. 그 자체가 나를 알려주는 것이고 인정해주는 것이며 그런 과정을 통해 문화는 발전한다.


 그런데 언젠가, 저자의 허락 없이는 인용도 하지 말라는 글이 써진 책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런 책은 법적인 것을 떠나서 인용하지 않는다. 저자가 원하지 않는데 굳이 인용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그건 그 저자를 위해서도 손해다. 책과 저자를 다른 이들이 인용하는 가운데 같이 발전하는 게 아닌가? 나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저자들은 겸허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저작권법은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지 편협하게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도 자기 책에 수많은 자료를 인용했다. 그는 다른 저자들에게 그 모든 것을 허락받고 인용한 것일까?)


저작권법 제1조는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즉 저작권법은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지만 그 궁극적 목적이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통한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이다. 이 법이 대중서의 인용 문제에 어떻게 법적으로 작용할지 모르지만, 대중서를 쓰는 사람이 직접 인용이든 간접 이용이든 그 수많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인용할 경우, 저자와 출판사 허락을 받고 쓴다면 정말 힘들어진다. 저작권법이 편협하고 배타적으로 행사된다면 오히려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게 된다.


나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갖고 있다. 인용을 하고 출처를 밝히되 가급적이면 양을 많지 않게 하고, 그 내용을 이해한 후 내 식대로 표현하면서 간접 인용을 한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인용하면서 출처를 밝힌다. 법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저작권법이 대중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현실 상황을 고려하고 양심에 비추어 그렇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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