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등의 단행본에서 출처를 표시하는 방법
어떤 방식의 출처 표시를 택할까?
출처를 밝히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학회마다, 학교마다, 출판사마다 약간씩 다르다.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나는 논문에 이런 방식으로 내주를 썼다. 나의 논문 「상상력의 관점에서 본 노마디즘 - 여행자 의식 분석을 통하여」에 나온 것을 예를 들면 이렇다.
“아무리 신비한 영적 체험과 사상도 일상에 뿌리박지 못하면 허약하며, 뿌리를 하늘로 뻗는 나무는 본 적이 없다”(이지상, 2003b:236)라는 표현도 발견된다. 최영미는 “삶은 때로 우리를 속일지라도 생활은 우리를 속이는 법이 거의 없으며, 그것은 때맞춰 먹여주고 문지르고 닦아주기만 하면 결코 우리를 배반하지 않기에 일상은 위대하고, 뻐근한 일상의 무게가 없으면 삶은 제자리를 찾지 못해 영원히 허공을 떠돌 것이다.”(최영미, 1997:14)라고 얘기한다.
이렇게 본문에 내주를 달고 논문 뒤의 참고문헌에 이렇게 밝힌다.
이지상, 2003b 『여행가』, 북하우스
최영미, 1997, 『시대의 우울』, 창작과 비평사
‘이지상, 2003b’라고 표시한 이유는 『길 위의 천국』이란 터키 여행기가 똑같이 2003년도에 출간되어서 그것을 2003a로, 여행가는 2003b로 내가 구별했기 때문이다.
본문을 읽으며 “이지상이란 사람이 2003년도에 쓴 책의 236페이지에서 나온 글이구나”를 알 수 있고 그 책이 뭔지 더 알고 싶으면 논문 뒤의 참고문헌을 보면 된다. 참고문헌에서 연도를 뒤로 빼기도 하는데 일관되게 하면 된다. 이것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한국어 단행본을 표시한 것이며 영문판, 번역판, 논문, 저널 등 수많은 자료를 표시하는 방법이 약간씩 다르다.
반면에 한국 정치학회의 내주 방식은 약간 다르다. 사회학 방식으로 쓸 때 본문에서 (이지상, 2003b:236) 이라고 했다면 정치학회 방식은 (이지상 2003b,236)이다. 또 역사책에서는 내주가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각주를 쓰기도 한다.
박지향,『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기파랑, 2006) 220-223.
그럼 박지향 교수가 2006년도 기파랑 출판사에서 낸 『너무나 영국적인』이란 책의 220~223페이지에서 인용했다는 얘기다.
주석을 어디에 쓸까?
주석이 달리는 위치에 따라 내주, 각주, 미주(후주) 등으로 불린다.
내주는 위에서 본 것처럼 본문에 괄호를 치고 표시하는 것이다. 각주는 책의 밑줄 밑에 조그맣게 쓰고, 미주는 책 뒤에 번호를 매겨 일괄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각주나 미주에 출처가 아니라 더 깊은 내용, 해설을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내용주라 부른다.
그런데 한글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입력’으로 들어가 ‘주석’을 클릭하면 각주, 미주 등이 나온다. 이것을 클릭하면 형식이 나온다. 다른 워드 프로그램에도 주석을 다는 기능이 있으니 이용하면 매우 편리하다.
논문에서는 인용한 책들을 주석과 별도로 책 뒤에 참고문헌 목록을 통해 일괄적으로 밝힌다.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통일시키는데, 본문에서 인용한 책들만 밝히는 게 올바른 태도다. 인용하지 않거나 읽지도 않은 책들을 과시용으로 전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단행본, 여행기에서 어떻게 출처를 표시하나?
학계의 논문에서 쓰이는 출처 적는 방식이 대중서에 그대로 사용될 수 있을까?
특히 여행기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가독성을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본문에 저자나 책 이름을 밝혀주면서 인용한다. 이것만 해도 윤리적으로 부끄럽지 않다.
그런데 남의 이야기를 밝히지도 않고, 슬쩍 자기 것처럼 쓰는 경우 이건 분명히 표절이다. 그런 예들이 대중서에서는 종종 발견된다.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게 관행이었던 과거에는 그냥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모든 게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관행이 모든 것을 합리화시켜주지 않는다.
지금, 학계와 문학계에서 생기는 표절 문제도 20, 30년 전에는 별로 문제 되지 않던 관행이었다. 그렇다면 대중서, 여행기에서 현재 출처를 안 밝히는 관행이 20, 30년 후에는 문제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학계의 출처 밝히는 방식을 길게 얘기한 이유는 앞으로 대중서에도 그게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중서에서 학계의 방식을 따르기도 쉽지는 않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방식을 정했다. 즉 학계에서 밝히는 '취지'를 살리되 여행서의 현실에 맞게. 단, 이것도 출판사와 협의를 해가면서 했다. 여행서에 각주, 혹은 미주를 다는 것은 너무 생소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의 의견을 출판사에서 어느 정도 받아 주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나는 에세이나 배낭여행기에서는 출처를 본문에 간단하게 언급하는 정도로 끝냈지만, 문화 탐사기나 철학적․사회학적인 이야기를 녹이는 여행서에서는 조금 더 밝혔다. 1990년대 후반 『혼돈의 캄보디아, 불멸의 앙코르 와트』와 베트남 여행기 『호찌민과 시클로』를 쓰는 과정에서 정치, 문화, 역사 등 수많은 영어 원서와 번역서, 한국 책들을 수십 권 읽었는데 출처를 안 밝히면 도둑질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또 내가 대단한 학자, 탐험가처럼 오해받을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여행기임에도 불구하고 뒤에 '참고문헌'을 달았다. 이 책들은 나오기까지 2, 3년을 표류했는데 너무 무거운 내용은 물론 참고문헌 밝히는 형식조차 출판사에서 부담스러워했다.
가장 좋은 것은 본문에서 그때그때 밝히는 것인데 사정상 뒤에 참고문헌 밝히는 것으로 끝냈다.
그 후 타이완 여행기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후에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라는 개정판을 출간했다.)를 쓸 때는 각주와 참고문헌을 썼다.
그리고 홍콩·마카오 여행기 『도시 탐독』에서는 각주가 100개가 넘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편집자의 얘기에 의하면 너무 각주가 많아서 독자들이 읽기 힘들어할 것 같다는 것. 맞는 말이었다. 여행기 등의 대중서는 학술 논문처럼 정확성, 책임감만 내세우면 가독성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본문에 녹이고, 본문에서 출처를 밝혀가면서 꼭 필요한 것만 미주로 돌렸다.
어쨌든 출처를 표시하는 원칙을 세우고 그 틀 안에서 지식을 풀어 넣으면 떳떳하다. 그런 방식을 모르면 늘 ‘이거 표절 아니야’ 하는 불안감이 감돈다.
이런 과정에서 나는 '나만의 방식'을 만들었다. 우선 본문에서 저자나 책을 소개하고 간접 인용방식, 즉 내 식대로 내용을 푸는 방법이 있다. 내가 쓴 홍콩, 마카오 여행기 『도시 탐독』에서 예를 들면 이렇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마페졸리가 얘기했듯이 사회적 삶은 ‘에세이들’의 무한한 연속일지도 모른다. 에세이는 논리적이지 않고 결론이 없으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글쓰기다. 즉 삶은 논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필연과 우연, 의도와 충동이 뒤섞여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의미 없고 결론 없는 행위들의 무한반복처럼 보일 때도 있다.
‘사회적 삶은 에세이들의 무한한 연속’이라는 짧은 마페졸리의 말만 소개하고 나의 이야기가 이어질 경우에는 학자를 밝히는 정도로 끝냈다. 매우 특별한 문장, 용어라면 주석으로 책, 논문 등의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겠지만 간단한 말만 인용했기에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반면에 자세하게 인용할 경우에는 번호를 붙이고 각주, 혹은 미주로 출처를 밝혔다.
이주노동자들을 다룬 목포대학교 역사문화학부 윤형숙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홍콩에서는 1980년대 서비스업의 발달로 중산층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늘면서 집안일을 도와줄 가정부가 필요해졌고……. 1)
이처럼 이주 노동자들 문제, 정확한 사실, 구체적인 자료가 계속 이어지는 경우는 각주나 미주 처리를 하여 책 뒤에 정확한 출처를 밝혔다. 각주나 미주를 다는 방식은 학계 것을 참고로 하되 간략하게 하기로 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1) 이순탁,『최근 세계 일주기』, 학민사, 1997, 49.
2) 이순탁,『최근 세계 일주기』, 학민사, 1997, 49-55 참조.
3) 이순탁,『최근 세계 일주기』, 학민사, 1997, 참조.
49페이지의 어떤 문장을 '직접 인용'했다면 1) 번 방식을 쓰면서 정확하게 49페이지를 명시한다.
여러 페이지에 걸친 내용을 읽은 후 내 식대로 요약하여 표현했으면 2) 번 방식을 쓰면서 '참조' 했다고 밝혔다.
책 전체 중에서 어디를 꼭 집어내지 못하고 전체적인 내용을 내 식대로 간단하게 요약했다면 3) 번을 쓰기로 했다.
위의 방식들은 CMS 방식, MLA 방식 그리고 한국 사회학회의 참고문헌 수록하는 방법과 비슷한데 변형시킨 것이다. 지금 소개한 것은 매우 간단한 국내 단행본 위주인데 영문판, 번역판, 논문, 인터넷 자료 등은 약간 다르다. 그것들도 학계의 것을 참고로 하되 응용해서 쓰기로 했다.
그러나 만약 출판사 나름대로의 정한 방식이 있다면 거기에 따른다. 어떤 것을 택하든 합리적이고 일관되며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초고를 쓸 때 정확한 출처를 각주로 단다. 이것은 매우 필요하다. 각주 처리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그 책의 출처를 찾으려면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중에 변형하더라도 초고를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자신이 참고한 책을 찾기가 쉽고 정리가 되기 때문이다.
대중서, 여행기에 주석을 달거나 참고문헌을 밝히면 ‘지적 허세’를 피우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밝히는 이유는 표절을 피하고, 원저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며, 수많은 자료를 건드릴 수 있는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또한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서비스의 의미도 있으며 겸손한 태도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말만 그럴듯하게 바꾸면 표절을 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태도들이 '지적인 세계'를 혼란시킨다. 거기다 각색까지 하면 나중에는 진실과 허위가 다 뒤섞여 버리고 출처 불명의 이상한 글들이 떠돌게 된다. '눈 밝은 독자'들은 이것을 잡아 내고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 논쟁이 붙을 경우, 출처를 정확히 나름대로 밝혀 놓지 않으면 이젠 저자조차도 자신이 어디서 그 글이 나왔는지를 모르게 된다.
가끔 자기 글을 누가 베꼈다고 흥분하는 저자들을 본다. 사실은 그의 글도 다른 사람의 책이나 자료를 인용하면서 말 좀 바꾼 정도가 많다. 자기만의 표현이 아닌, 사실과 정보의 경우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남의 것을 참고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기는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적당히 말을 바꿔 쓴 상태에서, 남들이 '자기 것을 인용했다'라고 흥분한다면 이것은 뭔가? 자신이 도둑질한 '장물'을 남에게 또 도둑질당했다고 하는 것밖에 안 된다. 조금 변형시켰다고 해도 장물은 장물이다.
자기가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것은 '벤치마킹'이고, 남이 '자기가 베낀 누구의 글'을 사용하면 '표절'이라면서 흥분한다면 이것을 '내로남불'이 되는 거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이런 예를 종종 본다.
가끔 내가 블로그에 쓴 글, 혹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갖다가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다른 데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누구의 글, 누구의 책에서 참고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얘기하면 쪽 팔려서일까? 심지어는 나의 블로그 글을 마치 '자기 글'처럼 그대로 자기 블로그에 쓴 것도 보았다.
지금 여기에 쓴 글들도 그렇다. 나는 내가 참고한 책들의 출처를 밝혔고 거기에 '나의 생각'과 '나의 방식'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런 나의 방식과 나의 생각을 어디 가서 '자기 이야기'처럼 떠든다면 그건 '나의 생각, 표현'을 도둑질하는 것이다. '누구의 책에서, 누구의 브런치 글에서 참고했다'라고 밝히면 되는데 그걸 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당히 각색해서 쓰면 자기 것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중에 논란거리가 된다.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성실하게 출처를 밝히는 것이 좋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기의 의지도 태도의 문제지.
이런 방식을 익혀 두면 이제 당당하게 글을 쓸 수 있다. 출처를 밝히기만 하면 남의 것을 인용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이나 경험을 끌고 가면서 남의 글을 '조금' 인용해야지, 자기 생각 없이 이 책 저 책 끌어다 '짜깁기'로 만드는 경우, 아무리 출처를 밝혀도 이것 또한 표절로 비난받게 된다. (이것은 나중에 좀 더 쓸 것이다.)
짧은 글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어떤 학설, 역사적 사실 등을 쉽게 쓰는 것은 어렵다. 완전히 이해한 후 자기 말로 요약 혹은 해설을 곁들여야 한다. 그건 인용의 수준을 넘는다. 읽는 사람은 쉬워도 쓰는 사람은 힘들다. 그래서 덜 익히거나 잘못 이해한 내용을 자기 식대로 쓰다 보면 오류가 발생한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자료를 두루두루 섭렵하고 고민해야 한다. 책 하나 달랑 보고 글재주로 녹이는 태도는 많은 오류를 생산할 수가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각자의 선택이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지 일관되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점에 나가면 논문 작성법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으니 참고하면서 자기 방식을 만들면 된다. 내 마음대로 한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학계의 방식을 소개했는데 대중서가 논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출처를 밝혀주어야 여행서, 대중서 분야가 발전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 표절을 피한다고 아예 남의 책 인용을 기피하거나 아니면 몰래 도둑질하면서 숨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설의 어떤 문장, 시 등을 실을 때, 출처를 밝히고 약간의 구절을 따오는 정도는 문제가 안 되지만, 많은 양, 혹은 시 한 편 등을 실을 경우에는 그것을 낸 출판사에 연락해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냥 허락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몇십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때도 있다 한다. 저자가 사망하고 그 책이 절판되었다면 문제가 다르겠지만 현재 진행형인 경우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자가 직접 연락할 수도 있고 출판사에서 처리할 수도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내가 쓴 책 '여행작가 수업'을 보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