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버스 안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얼마 전 버스에서 친구를 만났다. 평소 버스를 잘 타는 편이 아니어서 이렇게 우연히 친구를 만나는 게 참 신기했다. 전업주부인 내가 어디 출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바깥 활동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어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집 밖을 나서질 않는 집순이라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니 어쩌다 한 번 탄 버스에서 만난 그 친구가 더 반갑게 느껴졌다.
더구나 나는 가끔씩 이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다. 그만큼 '잘 지내는지?' 안부가 궁금할 정도로 좋은 감정을 가진 친구였기 때문이다. 죽마고우는 아니고 내가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 알게 된 사이다. 그러니까 다 늙어서 만난 사이로 사회친구인 셈이다. 우스갯소리지만, 나는 ‘사회친구’하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학교 동창(옛날친구) 아니면 사회친구는 늘 조심하는 게 좋아!”
이 말은 그 옛날, 소위 나를 좀 애정(?)하는 사람들이 한마디로 나를 아껴서 해 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말을 자꾸 듣다 보면 소심해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데 미리 걱정을 하거나 가끔 저돌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면 신경이 예민할 정도로 지나치게 조심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정작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도 주저하게 돼서 나중에는 깊은 사이가 되지 못했다. 물론, 그런 티를 안 내려고 하지만 내 마음 자세가 그러니 어지간해선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말도 들었다.
“야! 서울에서는 눈 한 번만 잘 못 감아도 니 코 베인다! “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동안 내가 닳고 닳아서 그런지 이제는 그냥 한 번 웃고 넘길만한 말이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내가 이런 말을 자주 들은 이유가 있었다. 내가 지방 출신으로 시골에서 막 올라온 생초짜였기에 그랬던 것이다. 그러니 서울사람 즉 도시사람들 누가 보아도 사회생활에 대해서 너무 아는 게 없으니 좋은 말로 순수한 것이지 얼마나 멍청하게 보였을까 싶다. 한 번은 당해도 크게 당할 것 같은 진짜 얼뜨기 같아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도시사람들이 해 주는 말을 믿었고 사회친구를 만나는 걸 극도로 조심하며 지냈다.
그러나 기우였다. 내 경우는 오히려 그 말들과 정반대였다. 가령, 나에게 아주 오랜만에 연락을 해와서 집으로 찾아온 친구도 있었고 강연장에서 만난 고향사람도 너무 반가워서 한참을 반갑게 만나기도 했다. 그러다 한 번은 기업체 강의장에서 나를 본 학교 동창이 강사 대기실에 찾아와서 만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바란 따뜻한 추억 속 고향친구나 옛 친구가 결코 아니었다. 그러니까 ‘밥 한 번 먹고 웃으면서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지는’ 간단한 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선뜻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을 했고, 가면 갈수록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지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 ‘뭐 좀 사라! 이것 좀 팔아 달라’, ‘개업하니 와 달라’, ‘주변 사람들 소개 좀 해 주라’ 등이었다. 결국, 그 부탁을 들어주거나 팔아주면 얼마 못 가서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내 경우는 옛날친구(?) 보다 사회친구가 훨씬 더 좋았다. 더욱이 내가 이 동네에 산 만큼 사회친구들을 만난 세월이 쌓이고 쌓여서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들이 되었다. 멀리 살아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보다 자주 만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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