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눈이 퉁퉁 부어서 나갈 수도 없었다. 얼마나 오래, 많이 울었던지. 얄쌍한 내 쌍커풀이 땡벌에 쏘인 것처럼 빨갛게 불룩 솟아올랐다. 그러다 점차 부기가 눈두덩이 전체로 퍼지더니 쌍꺼풀이 여러겹으로 주름이 졌다. 누가 봐도 엉엉 울어서 퉁퉁 불어터진 눈이었다.
'어차피 2차 요리수업은 다음 주 수요일이니까, 그때까지 쌍꺼풀이 제자리로 돌아가기만 하면 돼...'
요리수업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 마음이 진흙탕인데 가짜로 웃으며 만날 수 없었다. 더욱이 아무 탈없이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들을 만나면 내 속은 말하지 못하겠지만, 분명히 나 스스로 내가 사는 모습이 그들과 비교되서 더 비참해질 게 뻔했다. 그러니 나 홀로 집구석에 틀어박혀서 삭이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문제는 집안의 냉기였다. 아들이 있을 때는 그럭저럭 평상시처럼 보였다. 아들이 학교나 도서관에 나가면, 집안은 냉랭해졌다. 나는 남편 밥을 챙기지 않았고 먹든말든, 굶어 죽어도 모른다는 정도로 상대하지 않았다. 남편 소리가 나면 아예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 나는, 나조차 나를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아마도 마음 깊숙이 꾹꾹 짱박아둔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어 닥쳤던 것 같다.
'왜, 이렇게 서러운지'
'왜, 이렇게 절망감을 느끼는지.'
'왜, 이렇게 다 내려놓고 이제 그만 끝내고 싶은지'
나는 한없이 남편을 기다려 주었고 기대했다. 언제라도 남편이 뭐라도 찾아내서 꼭! 일을 할 줄 알았다. 그걸 믿고 참았다. 매끼니를 따뜻하게 차려냈고, 속옷과 티셔츠, 바지 주름까지 칼각으로 다림질 해서 입혔다. 아무리 실업자로 돈을 못 번다고 해서 남편이 후줄근한 건 내가 보기 싫었다. 그런 건 힘들지 않은데, 일이 없는 남편을 보는 건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이 기간이 어서 끝나기를 매일매일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살아온 게 지금 몇 년째인지 언뜻 생각도 안날 정도다. 남편은 내가 먹고살기위해 발버둥치는 걸 보면서도 단 한번도 일을 찾기 위해서 시도하지 않았다. 일할 생각조차 없던 것이었다. 아주 가끔, 남편이 외출을 하면 '혹여나'하고 기다렸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것도 나중에 남편 카드빚이 터졌을 때 알았다. 그냥 집에서 불편해서(?) 잠깐씩 바람 쐬러 나갔고 내 눈치를 피한 것 뿐이었다.
매일 아침, 눈물이 아른 거리고 말 못하는 서러움에 울렁거리는 속을 누르며 지내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남편을 바라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이 죽어란 법은 없었다. 천만다행인 것은 내가 오래전 일할 때 모아 둔 예금, 약간의 여유돈이 있었다. 그걸 매일 조금씩 곶감 빼먹듯이 야금야금 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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