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학교 졸업장을 주었습니다

인생 리모델링 - 자연의 법칙을 따라 인정하며 순응하며

by 수정중


매년 이맘때 정원 여기저기 초록색 점들이 올라오는 게 보인다. 며칠 지나면 그 점들이 형태를 갖추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바로 각종 야생화의 새싹들이 나오는 모습이다. 가장 먼저 얼굴을 내미는 게 복수초와 수선화 그리고 튤립 새싹이다. 반갑다.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다시 돌아와서 정말 고맙다. 이렇게 또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


새싹 앞에서 하는 혼잣말이다. 가만히 지켜보면 ‘이번 봄에도 나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왔구나!' 생각이 든다.

출처 픽사베이

야생화가 매년 같은 자리에 다시 나는 것이 참 당연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키워보니 그렇지 않았다. 발로 짓이겨도 다시 살아나는 게 야생화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오면 뿌리가 썩어서 죽었고, 여름 햇빛을 강하게 쬐면 이파리부터 서서히 타 죽었다. 또는 땅 벌레가 뿌리를 갉아먹어서 죽었다. 좀 억울한 것은 벌레가 갉아먹은 야생화들은 비싸게 구입한 귀한 품종이었다. 귀한 만큼 뿌리 맛도 남달랐던 것 같다.


야생화들에게 집중하면서 깨닫고 알게 된 자연의 법칙들이 있다.


첫 번째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다. 이는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는 ‘당연성’ 이치다. 농사의 1차원적인 원리인 수고와 결과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심은 자의 시행착오나 실수가 있거나 적절한 때에 자연의 공급을 받지 못한 ‘변수’라고 하겠다. 농사가 수고한 만큼 결과가 따르지 않는 경우다.

마지막 세 번째는 ‘심지 않았는데 거두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심은 자의 수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성과를 얻는 경우다. 이를 나는 ‘의외성’으로서 누군가 전적으로 도와주거나 적시적 때에 자연의 적절한 공급이 이루어진 것이다. 실제로 우리 집 정원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바람에 날려 온 씨앗이 싹을 틔워 큰 나무로 잘 성장한 경우다. 이는 행운이나 신의 축복에 가까운 것 같다.


제 아무리 야생화 공부를 한다고 해서 책대로 다 잘 되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고 의외의 사람에게서 도움을 받거나 하늘의 도움도 의지하면서 그렇게 겨우 하나씩 키워야 했다. 그래서 땅 위에 돋아나는 새싹 하나도 예사롭지가 않다. 마치 (겨울)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 같기도 하고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순례자 같다. 그만큼 고귀한 생명인 것이다. 이러니 지난해 사라진 야생화가 다시 그 자리에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가족이 건강하게 사는 것, 건강하게 태어났지만 건강하게 살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건강은 당연한 게 아니라 감사한 것이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가 좋은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되겠는가. 이 또한 당연한 게 아니라 행운일 게다.

이쯤 되면 내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전공한 과목이 그대로 직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의외로 많지 않다. 어쩌다 하게 된 일이 평생 직업이 되기도 하고 출근할 때마다 그만두려고 하다가 정년까지 가는 게 태반이다. 드문 경우지만 여행지에서 자신의 직업을 찾아내고 전업을 하는 이도 있다고 한다. 만약,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터가 신의 축복일 것이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과거 내게 야생화와 같은 식물은 집을 꾸미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존재였다. 집 안에는 화분이, 집 밖에는 야생화가 있는 그런 흔한 풍경일 뿐이다. 아침마다 눈을 뜨는 기적도 그저 매일 일어나는 것이고, 자주 만나다 보니 어떤 말을 해도 감흥이 떨어진 가족과 주변 사람들, 먹고살려고 출근하는 일도 역시 그랬다. 이러한 것들 하나하나가 당연하지 않은, 우리 인생을 채워가는 소중한 행운이고 축복인 것을 몰랐다.


50대 주부, 말이 좋아 주부지. 50대 아줌마인 나는 그저 가족 챙기기에 급급했다. 아들이 고3 때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었고 집안 살림을 했다. 집안 살림, 말 그대로 집안을 살리는 일이 전부인 생활이다. 아들이 집에서 대학을 다녔고, 군대도 집에서 출퇴근하는 24개월짜리 군인이었다.


“일어나! 밥 먹고 나가야지. 너 지각하면 탈영이야!”

“여보, 머리 하자. 오늘은 이걸 입어.”

“잡초는 왜 이렇게 빨리 자라는 거야.”


이만저만 손이 많이 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내가 하는 집안 살림을 적어보면 가사도우미, 주방장, 정원관리사, 코디네이터, 운전기사, 비서. 심지어 헤어디자이너까지 했다. '어떻게 헤어디자이너?'라고 물을 수 있다. 나는 미용사로 오랜 기간 헤어숍을 운영하고 헤어 아티스트 그리고 헤어 관련 책을 출간한 작가였다. 그 화려한(?) 경력으로 지금까지도 집에서 가족의 헤어스타일을 책임지고 담당한다. 파마, 커트 염색 등등.


그렇게 나도 살림꾼이 되어 갔다. 바깥일을 안 했을 뿐이지 집안일이 워낙 많아서 세월이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간간이 들어오는 특강은 했지만 이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 가버렸다. 그리고 세월과 함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내 딴에는 열심히 살다 보니 흰머리가 늘었을 뿐이고, 잔주름이 약간 굵어졌을 뿐이고, 노안이 조금 더 심해졌을 뿐인데. 정말 나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내 주변은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아직 남아 있는데!”

출처 픽사베이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내게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다. 성은 ‘빈’이요, 이름은 ‘둥지’였다. 애지중지 키우는 맛에 제법 보람 있던 아들은 대학원 연구실 일이 새벽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아예 기숙사에 입소했다. 더 이상 내 손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빈 둥지에 혼자 덩그러니 남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흔히 말하는 50대 엄마들이 겪는 중병(?)에 걸려 있었다. 바로 ‘빈 둥지 증후군’이다. 검색하면 중년 여성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으로 자녀가 대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직, 결혼과 같은 이유로 독립하게 되었을 때 부모가 느끼는 상실감과 외로움이라고 나온다. 이와 비슷한 '공소 증후군'도 있다. 역시 중년의 가정주부들이 남편과 자식이 자신의 곁을 떠났다고 느끼고 정체감의 상실과 공허함을 느끼는 경우다. 나는 어느 증후군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느 날부터 이 증세가 뚜렷이 나타났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비켜(?) 갈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정면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기분을 표현하면 이렇다.


‘정말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남은 게 없다’

‘후회는 없는 데 앞이 막막한 건 뭐지’

‘밥을 많이 먹었는데 왜 이렇게 속이 허할까’

‘잘 살아온 것 같았는데 오히려 잘 못 살아온 것 같아’


그동안 이 빈 둥지가 한 일을 떠올려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지만 내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여기에 남아 있다. 지난날 잘못 살아온 모든 회한과 후회 그래도 다시 잘 살아보겠다는 각오와 의지, 그리고 몸을 다해 바친 사랑. 구구절절 가슴이 아리지만 이 모든 것을 둥지에 남기고 내가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이 결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내가 나에게 <빈 둥지 졸업장>을 주었다.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 살림꾼이지만 그동안 "애썼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는 이 둥지에서 가족의, 가족에 의한, 가족을 위한 살림의 전 과정을 마쳤기에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후회 없이 당당하게 50 이후 삶은 나를 위해 사셔도 됩니다.”라고 새겼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꼭 죽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죽을 것 같으니 죽을힘을 다해 내 인생 리모델링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때, 매일 메모하는 수첩 맨 앞 장에 쓴 글이 눈에 들어왔다. 매 년 1월 1일 새로운 수첩을 구입하여 한 해 다짐을 쓰는 의식 행사 같은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면서 달라진 내일을 꿈꾸지 말자!"


생각은 모든 결과의 출발점이다. 생각을 바꾸어 보니 이제 <집안 살림꾼>에서 <내 인생 살림꾼>이 되는 방향이 보였다. 그리고 그동안 집안 살림하느라 바빠서, 게을러서,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하고 가지 못한 것을 우선순위에 담았다. '지금부터, 작은 것부터' 남이 보기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도전하고 변하기로 했다. 그렇게 내 둥지를 버리기 시작했다.


그 마음을 먹었을 때,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 중 한 시구가 떠오른다. 감히 비교하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작은 인생이지만. 내 헛헛한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시구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나 역시, 내게 남은 아들 하나를 키우기 위해 봄부터 나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