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모델링 - 내성을 잘라내야 내력이 생깁니다.
"여보, 약사가 이 약을 누가 먹을 거냐고 물었어!"
"아!"
“이 약은 마지막에 쓰는 약 이래!"
"..."
피부병(?)을 앓은 지 15년이 되었다. 유명한 병원과 명의를 찾아다니며 진료를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고 아직도 이 병은 진행 중이다. 증상이 심할 때는 고통스럽기 짝이 없다. 내 몸 세포 하나하나에 수만수천 개 바늘이 꽂히는 통증이 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피부병은 온몸을 돌아다니며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위에 있어서 그나마 위로가 된다. 또, 함께 사는 가족에게 옮기는 병이 아니라서 고맙기까지 하다. 나 혼자 아프고 나 혼자 버티면 되는 것이다.
이 병은 자가면역질환이다. 사전에 의하면 자가 항원에 대한 병적 반응에 의한 질환으로서 비정상적인 면역 반응이 염증과 세포 손상을 일으킬 때 주로 발생한다고 나온다. 자가 면역 반응의 표적이 자가 항원이라는 것으로 '자기가 자기를 공격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병이 오래되다 보니 먹은 약도 많고 그 종류도 참 다양하다. 갈수록 부작용이 심해서 (간혹) 지독한 약을 먹어온 느낌이 든다. 약을 처방받을 때마다 ‘제발 이전보다 부작용이 적고 더 순한(?) 약이길’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의사의 말이다.
“내성이 생겨서 약이 듣지 않습니다.”
“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반대로 억제를 시키는 약을 먹으면서 경과를 좀 봅시다.”
“네.”
내성이란, 중독의 핵심 증상 중 하나이다. 중독에서 종전과 같은 만족을 경험하려면 더 강한 강도나 지속 기간의 자극을 필요로 하는 것을 내성이라고 한다. 물질을 반복해서 사용해 일어나는 신경생리학적 변화다. 그래서 내성이 생기게 되면 사용령이나 활동의 강도 그리고 빈도를 증가시켜야 한다. 이전과 동일한 사용량이나 활동으로는 종전과 같은 효과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 처방이 나왔다. 이번에는 치료에 진전이 없어서 약을 바꾼 것이다. 새로 처방받은 약은 면역 억제제였다. 남편이 그 처방전을 약사에게 보였더니 ‘누가 먹는 약인지’ 물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쓰는 약이란 말에. 남편은 그때 처음으로 ‘이 사람이 많이 아픈 거였구나’하고 느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면역은 강한(?) 것이 좋다고 알고 있다. 면역이라는 것이 외부 인자 즉 항원에 맞설 수 있도록 방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역을 키우는데 좋은 영양제나 주사를 맞기도 한다. 면역을 키우는 음식도 인기가 많다. 그런데 자가 면역 질환 치료에는 그 반대 치료법을 쓰기도 한다. 자기를 공격하는 면역세포 활동을 강제로 억제시키는 것이다. 이렇듯 면역을 살리는 게 아니라 거꾸로 면역을 죽여서(?) 염증과 통증을 줄여 나가는 방법인 것이다.
도무지 듣지 않는 내성, 이 내성을 이기기 위해서는 거꾸로 져 주는 식이다.
“자기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를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이모, 요새는 뭐 해요?”
“과수원 일이 시작돼서 좀 바쁘지.”
“지금 2월인데, 바쁘다고요?”
“그럼, 겨울에 가지치기를 해야 하거든.”
이모는 충주에서 사과와 복숭아 과수원을 하고 있다. 오래전 부모님은 벼농사를 지었는데 농한기인 겨울에는 그나마 쉬던 기억이 있다. 이모 역시 겨울만큼은 농사일 안 하고 편히 쉴 줄 알았다. 전화를 해보니 사과나무 가지치기 즉 전정작업 중이라고 했다. 이모에게 겨울에 가지치기를 하는 이유를 물어보았다.
“가지를 쳐 내야 햇빛이 골고루 들어서 나무가 잘 자라고 품질 좋은 사과가 열리지!”
반면, 가지가 많으면 햇빛이 골고루 들지 못해 나무가 성장하지 못한다고 했다. 또 나무에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습도가 높아지고 병충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좋은 열매도 얻지 못하고 나무가 고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꽃봉오리가 맺히기 전인 겨울에 반드시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가지가 많아서 나무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쳐내는 것이었다. (더 좋은 것을) 얻고,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는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워킹맘으로 살 때는 몰랐는데, 집안 살림을 하면서 오히려 살림살이가 늘었다. 하다못해 요리 한 가지를 할 때마다 필요한 게 있었다. 또,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 필요에 따라 (자주 사용하지 않지만) 밥그릇까지 인원수대로 구입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구색 맞추기식 살림까지 늘다 보니 사용하는 물건보다 모셔 둔 게 더 많아져 이른바 장식품이 되었다. 이렇게 불어난 밥그릇 하나하나, 살림살이마저도 내게는 사방으로 뻗은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간해서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 다른 사람 말과 세상 소리들, 살아온 나이만큼 드세진 고집, 게으름과 나태함, 고질적인 습관들, 편안한 것만 추구하려고 하는 안주함 등. 나를 둘러싼 이 모든 곁가지들이 '내면 깊숙이 단단한 성'으로 쌓여 내성이 된 것이다. 내성은 내 삶에 중독된 것이었다. 자세히 보면 나를 겹겹이 둘러싼 많은 것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알게 모르게 내성에 길들여져 살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러니 어떤 기막힌(?) 약을 처방해도 반응이 없는 것이다. 웬만큼 지독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 여태까지 하던 걸 다 누리면서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그런 일은 없으니까. 세상에 그런 법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그러니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게 내성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일 테니 말이다.
이 뿐만 아니다. 코로나19 역시 우리에게 내성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나만 느끼는 현상일까?
“코로나 때문에 못하는 거지.”
“코로나만 아니면 당장 시작하지.”
“코로나가 빨리 끝나길 기다려야지.’
코로나19는 우리 앞을 가로막은 위기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위기’라는 단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합해진 단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디에 시선이 더 쏠리는지 궁금하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실패한 사람들은 위기 속에서 위험을 먼저 보고 (하던 일을) 중단하고 반면 성공한 사람들 75%는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서 도전한다. 결국,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하나를 얻고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내성을 이겨내는 비결인 셈이다.
나는 내성을 이겨내기 위해 세 가지 리스트를 만들었다. 바로 미니멀 리스트와 골든 리스트 그리고 인맥리스트이다. 미니멀 리스트는 말 그대로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 물건들을 정리하려는 의도이다. 매일 사용하는 데이(day) 용, 가끔 쓰는 장식용, 아예 쓰지 않는 것은 휴지통으로 정해서 **마켓에 팔거나 동네 행정복지센터에 갖다 주어 필요한 사람이 재사용하게 했다. 다음 골든 리스트는 내가 '하고 싶은 것'으로 다시 일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 즉, 꿈을 이루기 위한 목록을 적은 것이다. 가령 일찍 일어나기(나는 갑상선 기능이 없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게 아주 힘들다)부터 운동, 여행 그리고 매일 출근하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등 이런 순으로 적은 것이다. 차츰 자세한 내용을 공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맥 리스트인데 내가 굳이 정리를 안 해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 경우다.
지인이 한 말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못 만나는 사람은 나중에 안 만나도 되는 사람이 아닐까?”
이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할 것이다. ‘혹시나'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감염될 수 있어서 못 만났고,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서 모이지 못한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관점을 좀 바꾸었다.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고 시간을 버는 데 좋은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평소에도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지낸 절친 몇 명만 (각자 집을 돌면서) 만났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고립'의 시간을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독립'의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살림살이는 제법 가벼워졌다. 팔아서 돈도 벌었다. 이전에 비해 게으르고 쌩쌩(?) 하지 못한 몸과 주눅이 든 자신감도 닥치는 대로 해 온 외부활동(?) 덕분에 어느 정도 회복이 되고 자신감도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이렇게 내게서 넘치는 것들, 불필요한 것들, 저해하는 것들을 차츰 가지치기를 해보니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내 안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 '내력'이 생기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한 곳만 똑바로 보고 살아보니 다른 게 눈에 쉽사리 들어오지 않았다. 설사 유혹이 와도 '내가 볼 곳은 그곳이 아니야' 하고 (잠시) 머리 한 번 흔들면 제정신이 돌아왔다.
예전에는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었던 내 모습이었다. 사람들 말 한마디에도 금방 무너졌고 세상이 안 되는 시기라고 하면 가만히 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기회를 찾지 않고 겨우 현상유지를 택한 것이다. 또, 입맛마저도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게 좋아서 단골 맛집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다. 심지어 내가 보기에 처음 보는, 낯선 일을 해내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부류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그렇지 않다. 웬만한 것은 '퉁'하고 반사시켜 버린다.
이것이야말로 '내력'이 아닐까 싶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대사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지금 새로운 일 앞에 선 사람들,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내력>이 아닐까. 무슨 일이 있어도 버텨 낼 수 있는 힘.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힘 '내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 보자. 기억하자. 내력을 키우려면 당신이 가진 내성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한꺼번에 쉽지 않겠지만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가지치기를 해 나가면 된다. 장담하건대 이제껏 느끼지 못한 내면의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당신의 숨은 힘, 내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