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엔느가 아니라 ‘아웃라이어’입니다.

대한민국 엄마는 극성이 아니라 근성입니다.

by 수정중

10년 전에 정원을 새로 꾸몄다. 관리가 수월한 야생화로 바꾸었다. 이전에는 매년 봄맞이 행사처럼 날을 정해서 주로 일 년생 화초를 심었다. 많은 양을 한꺼번에 심으려니 그것도 취미가 아니라 제법 큰 일이었다. 문제는 일 년생 화초가 더위에 쉽게 말라죽었고 한여름에는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야 해서 번거로웠다. 장마 기간에는 짓물러 죽는 일도 다반사였다.


이러니 자구책을 낸 것이 일 년 초가 아닌 야생화를 심기로 했다. 야생화는 다년초가 많아서 한번 심으면 여러 해 꽃을 볼 수 있다. 더위와 추위에도 강해서 물이 얼마간 공급되지 않아도 쉽사리 죽지 않는다. 질긴 생명력만큼 번식력이 좋아서 키우기가 쉽다. 그렇게 정원의 절반을 야생화로 바꾸었더니 봄꽃을 새로 구입하는 양이 줄어서 일이 줄었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었다.


10년이 지났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야생화들이 주는 기쁨이 더 크다. 야생화 하나하나가 해마다 씨앗을 뿌리고 거기서 또 새로운 싹이 나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그 싹이 꽃이 필만큼 자란 것이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옹기종기 모여 큰 집단을 야생화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중 한눈에 띄는 것이 있는데, '복수초 군락'이다.


복수초는 다른 야생화들과 함께 10년 전에 구입한 것이. 그때 단골 화원 주인장이 말했다.

“복수초는 워낙 생명력이 강해서 한 포트만 심고 잊어버리고 살면 매년 꽃을 볼 수 있어요”


실제로 복수초는 잊고 산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잊었다고 해서 복수초의 성장이 멈출 리 없다. 내가 못 보았을 뿐이지. 복수초는 매일매일 1 밀리미터씩, 매 계절 1센티미터씩, 매년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확장하며 할 일을 해낸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씨를 바람에 날리어 그 씨앗을 틔워 내고, 줄기와 가지를 조금씩 뻗쳐가며'


오직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서, 그렇게 일했을 것이다. 그러니 순간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장이 돌보지 않았어도 말이다. 10년 전에 심었던 복수초 한 포트가 이제 정원 전체에 퍼뜨려져서 큰 군락을 이루었다. 그렇게 '꼭 10년 만에' 비로소 복수초 명가를 세운 것이다.



“아침 9시 30분에 만날까?’

“그 시간은 사람들이 없겠네요.”

“그럼 9시 30분에 봅시다!”

“네네.”


지인으로부터 호텔로 치면 조식에 가까운 브런치를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딴에는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정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일찍 사람을 만난 적도 없지만 더구나 브런치를 한 적이 없다. 일을 할 때는 감히 생각도 못했고 살림할 때는 가족 아침 식사를 챙기거나 집안 청소하는 시간 대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 버킷리스트에 ‘파리지엔느처럼 카페에서 브런치 먹기’가 있었다. 그래서 버킷리스트 하나를 실행한다는 생각에 상기되기까지 했다.


브런치를 약속한 날이 왔다. 신기하게도 아침부터 약속이 있어서 그런지. 그날은 눈이 ‘번쩍!’ 절로 뜨이는 것이었다. 약간 흥분했던 것 같다. 일어나자마자 남편이 먹을 조식을 준비해 놓고 반사적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파리지엔느들은 롱코트를 즐겨 입는다던데.’


그날은 자발적 옷 투정(?)을 즐겁게 하며 약간의 갈등도 했다. 그런데, 현관문을 열어보고는 그 생각을 금세 접었다. 아직 아침 바람은 코트가 아닌 패딩으로 막아야 했다. 코트는 포기하고 벙거지 모자로 나름 파리지엔느식(?) 단장을 하고 동네 파리 빵집에 도착했다. 지인이 먼저 와 있었다.


“언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줄 몰랐어요. 호호호.”

“무슨 소리야. 여긴 맨날 이래!”


‘아뿔싸! 우리 동네에 이렇게 파리지엔느가 많은 줄이야.’


그곳은 이미 북새통에 가까웠다. 빈자리도 없었다. 학부모로 보이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브런치 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생얼에 후드티를 입은 엄마들이 있었는데 (내 생각에는) 그마저 멋있어서 파리지엔느스러웠다. 지인은 어린이집과 학교를 보낸 엄마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차량에 자녀들을 태우거나 바래다준 뒤 곧장 이곳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다. 10년 전, 아들이 고 3 때 집 근처 백화점 열린 경영위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회의 중에 브런치 메뉴가 있는 식당 오픈 시간을 앞당겨 주기를 지점장에게 제안했었다. 그때만 해도 지역 내 음식점이 직장인들 점심시간에 맞춘 11시 30분이었는데 백화점 브런치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고3 엄마들이라서 그랬는지 자주 만났고 엄마들(주부)이 주 고객인 백화점 매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한 것이다. 지점장은 내 제안이 영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는지 흔쾌히 받아들여 브런치 식당 오픈 시간을 10시 30분으로 조정했고 지금까지 그렇게 영업하고 있다.


10년 전을 떠올려보니 그때의 뜨거운(?) 감정이 다시 올라오는 것 같다. 워킹맘에서 고3 엄마로 입문(?)한 터라 뭐든지 생소했는데 다른 엄마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 입시 상황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그때만 해도 거의 해마다(?) 입시 관련 교육 정책이 바뀌어서 매번 엄마들이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많았다. 겨우 적응하는가 싶으면 그 이듬해 새로운 정책이 발표되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정책에 따라 또 수정하고 결국에는 맞추어내는 것이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고3 엄마들을 '극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러나 자식을 위한 엄마의 마음을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불법이 아닌 이상 '어떻게든', '뭐든지' 해보아서 자식을 도우려는 엄마의 마음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식 인생이 잘 되길 바라는 오직 그 한 마음으로 자신의 시간과 돈과 노력을 다 태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19년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고3 엄마가 된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우리 모두 기억하지 않는가. '정안수(정화수 井華水) 한 그릇 떠다 놓고 자식을 위해 기도하던 우리들의 엄마'. 그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오래전부터 보고, 그대로 배워 온 문화 그 자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극성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엄마들의 근성'인 것이다. 전 세계가 극찬하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마저 감탄한 '세계 최고! 교육열이 바로 대한민국 엄마들의 근성'이다.




'아웃 라이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서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통계적 표본이라고 나온다. 이 용어는 말콤 글래드웰이 쓴 책 제목 '아웃 라이어'로 유명하다. 글래드웰은 아웃 라이어를 '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선 성공을 거둔 사람'으로 확장시켜 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또, '전문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재능뿐 아니라 1만 시간 가량의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1만 시간은 대략 10년 정도이다.


“여보세요. 아르바이트 구하신다고…”

“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네 오십…”

“오십 이후는 안 받습니다.”


“여보세요. 나이 제한 없다고…”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오십…”

“저희는 40대까지 구해요.”


“언제부터 출근 가능해요?”

“내일부터 가능해요!”

“아, 나이가 어떻게?”

“오십…”

“연락처 남기시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해 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전화 한 통에 <거절>을 수도 없이 당해 보면 알게 된다. 내 나이가 몇 살인지가 이렇게 중요한지. 그리고 사회적으로 '50 이후' 나이가 어떤 인식을 주는지를 똑똑히 알게 되었다. 분명히 알바 공고에는 '성별, 나이 제한 없이 초보자 환영'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실상은 많이 달랐다.


그렇다. 이렇듯 세상 일은 원래 <거절>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가령, 보험설계사가 고객에게 딱 한 번 권유했는데 보험 가입에 성공하는 경우는 없다. 새 거래처를 뚫는 것도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이 거절당하고 다시 찾아가기를 반복해야 할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세상 일이 한 번에 다 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다. 그만큼 이 나이에 일을 시작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괜찮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이 나이 먹어서 알게 된 건 좀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괜찮다. 세상 일 모두 처음은 '거절부터 시작하는 것'을 알았다는 것, 세상이란 큰 바다에서 제법 큰 놈(?)을 건진 거나 다름없다.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대한민국에서 자식을 키워 낸 엄마니까’

“그것도 삼십 년을 엄마로서 하루도 허투루 산 날이 없으니까.”


이러니 세상 엄마는 누가 뭐라고 해도 육아와 살림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아웃라이어’ 임에 틀림이 없다. 처음에는 엄마가 뭔지도 모르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육아에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매일 아침 눈뜨자마자 오직 자식들이 잘 커고 잘 되기만을 바라면서 ‘부단히 달려온 1만 시간 그 긴 세월을 견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발 집에서 살림만 한다고 해서 세상 일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이제 접었으면 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집에서 야무지게 일가를 이뤄낸 아웃라이어, 바로 우리 대한민국 엄마들이야말로 (밖에서도) 세계 최고 근성을 가진 일등 일꾼임이 분명한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