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길은 정해져 있습니다!

아무나 생각은 하지만 행동은 누구나 못합니다.

by 수정중


"자전거와 동전의 공통점은?"


이 문제는 내가 특강을 시작하자마자 청강생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다행히) 십중팔구는 내가 의도한 대로 정답을 못 맞힌다. 사실 일부러 못 맞히길 바라면서 내는 문제다. 언뜻 보면 쉬운 것 같은데 머리를 좀 쓰면 알쏭달쏭하게 꼬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다 한 두 사람이 정답을 맞힌다.


"강사님,... 굴러가요..."

"맞습니다. 다 같이 저분께 박수를!"


내가 의도한 답이다. 자전거와 동전은 '누군가 끊임없이 굴려야(돌려야)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전거는 페달을 지속적으로 밟아야 앞으로 나간다. 동전(돈)도 굴려야 경제가 순환하고 그렇게 세상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두 가지 다 움직여야 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 우리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현상과 본질의 차이'다.


출처 픽사베이


사람도 인생도 매 한 가지다. '부단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정지 상태에 놓일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은 허물어져 무너지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뭐든지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비록, 어떤 일이든 남들이 인정하지 않거나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매일 신문 5개를 읽는 습관이 있다. 오래전 칼럼을 쓰고 강의가 본업이 되면서 시작된 습관들이다. 글 쓰는 이에게 신문 읽기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또, 강사가 세상 돌아가는 판을 읽지 못하면 세상 말을 할 수 없기에 신문을 통해 공부한다. 신문을 많이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폐지(쓰레기)가 많이 쌓인다.


우리 집은 십 년 넘도록 폐지를 가져가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일주일치를 모았다가 할머니가 초인종을 누르면 수레(카트)에 실어주면 된다. 할머니는 다른 날에도 가끔 들르시곤 했다. 직접 만든 고추장을 갖고 오시거나 함께 살던 시아버지께 드릴 요구르트도 사 오셨다.


"할머니, 이게(폐지) 얼마나 된다고. 자꾸 갖고 오세요!"

"내 마음이지."


그렇게 시아버지와 말동무도 하고. 우리 가족에게는 친척 할머니쯤 되는 사이로 지냈다.


어느 날, 동네 사람이 지나가며 말을 했다.


"그 신문 할머니한테 신문 주지 말아요."

"네?"

"할머니가 엄청 부자래요. 저기 저 동네 상가 건물에다 외제차에 자식들도 아주 부자래요!"

"아, 네..."


나는 할머니가 92세, 요양원에 가실 때까지 신문을 계속 드렸다. 할머니가 부자든 아니든 나에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속사정은 잘 모르지만 할머니는 폐지 수입 전부를 이웃에게 작은 음식으로 선물하셨다. 무엇보다 나는 몸이 성한 그날까지 부지런히 움직이신 할머니가 존경스러웠다. 지금은 시아버지도 할머니도 다 돌아가셨지만 매일 쌓이는 신문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난다.


"그 신문 할머니는 여유가 있어서 운동 삼아, 놀이 삼아, 그렇게 살았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렇다면, 아무나! 폐지를 주우러 다닐 수 있을까?


"아무나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랜만에 아들 친구 엄마를 만났다.


"어떻게 지내요?"

"곶감 빼먹고 살고 있지요."


그녀 말이다. 남편은 50대 증권투자 전문가다. 그녀는 코로나19와 상관없이 현재 남편 수입이 매우 좋다고 했다. 때문에 몇 년만 더 남편이 잘 벌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은퇴 후 노후는 현재 수입을 잘 모아두었다가 여행을 다니며 살고 싶다고 했다.


"하나씩 하나씩 곶감을 빼먹듯이 여행 다니면서 살라궁!"


동네 공원에 산책하다 보면 흥미로운 광경을 보게 된다.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산책 중에 이웃집 어르신을 만나서 인사를 했는데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대학교 교수였다. 그분은 내가 반가웠던지. 그기 모인 분들을 한 분씩 소개해 주었다. 군인, 교수, 목사, 직장인, 은행원, 페인트 가게 사장님 그리고 "나는 노가다(막일)!"라고 큰 소리로 말하시는 한 어르신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어서 은퇴하면 다 똑같구나’라고 말이다. 나이 들면 어디서 출발해서 어떻게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한 장소에 모여서 지나간 세월 이야기도 하고 나랏일 걱정도 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었다. 마치 "곶감 빼먹듯이" 살아온 이야기 하나씩 하나씩 풀어가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큰소리치던 '막일(노가다) 어르신'을 통해 본 것이 있다.


"내가 어제도 저어기(저기) 가서 일을 했는데 말이야."


출처 픽사베이


그 어르신은 지금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목소리가 컸던 것이다. 아직도 현역이니까. 목소리가 크면 자동으로 그 무리에서 대장(?)이 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제일 말을 많이 했다.


가만히 듣기만 하는 어르신들은 (이야기가) 뻔하다 싶으면 졸았다. 막일 어르신이 "왜, 졸아"하면 눈을 떴고, "가자"하면 다 같이 따라 일어섰다. 마치 살아있는데 살아있는 게 아닌 것처럼 생기가 없어 보였다. 반면 막일 어르신은 생기가 넘쳤다. 또, 다른 어르신들과 확연히 다른 게 있었다. 바로 걸음걸이다.


8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힘 있고 기운차게 걸었다. 그것도 맨 앞에서.


"저기 새로 빵 카페가 오픈했거든. 어서 가보자고들. 내가 오늘 쏠 테니!"




“미안한데, 친정에 일이 있어서 이번에 못 만나겠어.”

“괜찮아요. 잘 다녀오시고 다음에 만나요.”


지인이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다는 연락이 왔다. 지인의 설명이다. 친정아버지를 도와주는 간병인이 있는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쉰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친정아버지는 80대 후반 고령인 데다 친정어머니가 함께 계시지만 연로해서 혼자 아버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지인은 당장 비행기를 타고 지방으로 급히 가야 했던 것이다.


지인 아버지는 꽤 유명한 목사였다. 유명세에 다른 교회에 초청을 받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대접을 받는 일도 많은 데다 그때마다 대부분 차량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걷는 횟수가 줄게 되었고 운동을 따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걸을만한 거리조차 차를 타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지인 아버지는 걷지를 못한다. 이미 오래전 일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이동은 가족들이 휠체어에 태워서 하고 있다. 그래서 24시간 간병인을 의지하며 살고 있다.


'걷지를 않아서 걷지 못하는 몸이 된 것이다.’


출처 픽사베이


나는 6년 전 갑상선 수술을 했다. 주변에도 갑상선을 제거한 사람들이 몇 있는데 나는 그들에 비해 후유증이 다소 심한 편이었다. 그중에서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약 한 알을 먹는데 그러면 몸이 움직일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쩌다 눈이 번쩍 뜨이는 날은 꼭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드문 경우지만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에 눈이 번쩍 뜨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다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가령, 주말에 온 아들을 일찍 깨워 보내는 월요일 아침에 눈이 번쩍 뜨인다. 남편이 새벽에 나가는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을 해줘야 하는 부담이 있을 때도 그렇다. 또, 아침 약속이 있는 날이다. 이렇듯 ‘아침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있거나 갈 곳이 있을 때’는 자동이었다.


이러니 갑상선 호르몬 영향으로 (가끔은) 일어나기가 힘든 날도 있겠지만 못 일어난 것보다는 안 일어난 게 더 맞는 셈이다.


'할 일이 없거나, 갈 곳이 없어서'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어서'


더욱이 코로나 시국에는 '오라는 곳도 없고 갈 곳은 더 없는' 것이다.


이런 몸(?) 또는 정신으로는 다시 일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기'를 시작했다. 처음 한 것이 새벽기도에 나가는 것이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걸어서 30분 거리다. 날씨와 컨디션이 좋으면 걸어 다니기도 했다. 가끔 빠지기도 하면서 1년 동안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일찍 일어나는데 차츰 적응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아침에는 동네를 무작정 걸었다. 동네 산을 오르내리고 산 입구에 있는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있기도 했다. 서점에 가서 하루 종일 책 구경(?)만 한 날도 있다. 7시 오픈하는 동네 카페에서 혼자 미친 척(?) 커피를 연거푸 마신 적도 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내는 이 시간을 돈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면'


"내 인생이 얼마나 길다"고. 그냥 흘려보내듯 가버리는 시간이 아까웠다.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 마음먹은 것이 또 금방 와해될 수 있으니 무조건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 처음 일이 (이전 글에 나온) 네온사인 만드는 공장인 것이다.


이렇게 1년을 지나면서 내가 달라졌다. 아침에 벌떡 벌떡 일어난다. 일을 하러 공장으로 나가야 되기 때문이다. 공장 일이 매일 있는 일도 아니지만 일의 강도가 고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동안 축 처졌던 내 걸음걸이를 바삐 움직이게 만들었고 활력과 생기를 되찾았다. 또 오래 묵은 습관도 퇴치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었다. 이러니 내가 '아침에 나갈 곳이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사실 힘든 것이 아니라 어쩌면 엄청난 축복인 것이다.


몇 년 전 영국에서 ‘행복’에 대한 연구조사를 했다. 그 조사 결과 ‘나는 아침에 일하러 나갈 곳이 있는가’가 1위를 차지했다. 아침에 일을 하기 위해 나갈 직장 또는 장소가 있다는 것이 <행복의 조건에 가장 우선으로 꼽는 조건>이었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 정도를 잘 알 수 있다.


"아침에 나갈 곳이 있습니까?"

"당신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까?"


질문의 답은 당신 걸음걸이에서 얻을 수 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이미 정해져 있다. 우리도 언젠가 60대가 되고, 70대가 되고 그렇게 갈 것이다. 우리 엄마가 간 길, 우리 아버지가 간 길. 그 길은 우리도 가야 할 길이다. 그 길 여정에 얼마든지 쉬어야 하고 정지할 만한 일은 많을 테니. 부단히 무엇이든지 자신을 굴려서 엄마, 아버지가 간 길에 섰을 때 '살아있음의 본질'을 느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미 길은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