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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거 전부 얼마예요?"
"아니 무슨 말이야. 내가 받은 게 얼만데!"
앞집 언니와 나눈 대화다. 얼마 전 언니가 미국을 다녀왔는데 가기 전에 내가 부탁한 게 있었다. 약국에서 진통제를 좀 사다 주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언니가 그 진통제를 주면서 돈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언니 말이다.
"애 아빠가 그러더라. 여태 받아먹은 게 얼만데. 이거라도 선물로 주라고."
"아! 많아서 드린 건데요..."
이런 말을 듣게 된 이유를 말하려니 친정엄마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부끄럽지만 나는 친정엄마 도움으로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며 거의 키우다시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이 엄마가 퍼 주는 사랑이 있다. 바로 택배에 실어 보내는 엄마의 농산물이다.
"엄마, 시금치랑 배추랑 잘 받았는데, 누가 먹을 거라고 많이도 보냈네?"
"그 옆에 사람들이랑 나나(나누어) 무라고(먹으라고)."
"요새 사람들도 안 만나는데..."
"그러모(그러면), 이웃 사람들 주모(주면) 되지!"
감자, 고구마, 가지, 오이, 호박, 양파, 시금치와 배추. 적어보니 종류가 훨씬 많아 보인다. 매번 느끼지만 엄마는 택배 최대 용량은 다 채우는 것 같았다. 택배비 아깝다고 한꺼번에 많이 보내는 것인데 우리 가족이 어차피 다 먹지 못하는 양인 것이다. 멀리 사는 사람을 일부러 찾아가기보다 주변 이웃들을 아무래도 더 챙기게 되고 자주 나누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그동안 나누었던 농산물 때문에 앞집 언니가 진통제를 선물로 주는 것 같다.
'나눈 것'이 '선물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공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 이야기다. 1년 반 동안 일찍 일어나기 위해서 새벽기도를 나간 일부터 나름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코로나 시국에 사람들을 안 만나고 못 만날 때, 매일 책 한 권을 읽었고 하루에 신문 5개를 읽었다. 매일 아침 동네 앞산을 오르내렸고 집에서 일을 해 보고자 연습 삼아 요리수업도 진행했었다. 총선 선거 참관인도 했고 베이비 시터도 했고 마을 통장 아르바이트 그리고 공장 아르바이트를 한 것이었다. 모두 코로나 기간(?)에 한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정말 많이 놀랄 것이다)
'너, 도대체 왜 그러냐!"(시아버지와 남편이 잘 쓰는 말이다)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다시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 내가 스스로 다시 태어나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날 때는 '응애' 한마디만 된다. 산고, 즉 아기가 태어날 때 고통은 오롯이 엄마가 대신 아파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다시 무언가를 도전하거나 새롭게 시작할 때는 엄마도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가 없다. 자신이 선택한 대로, 선택한 만큼, 선택한 대가를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수도 없이 했지만 그 답은 글이나 책에서만 찾을 수는 없었다. '열 번 생각하는 것보다 한 번 몸으로 부딪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사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게 상책인 것 같다. 이는 주부들이 마음이 답답하고 화가 날 때 하는 대청소, 대청소를 하고 나서 느끼는 맑은 정신도 같은 원리다. 이렇게 몸을 혹독하게 사용하면 '내 안에 잠든 거인이 깨어나듯이' 홀가분한 정신이 들 때가 있다.
예상은 주효했다. 현장에 그 답이 있었다. 바로 내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공장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다르기 때문에 나이와 세대, 직업 상관없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고정직 알바를 하는 주부가 가장 많지만 20대 남녀 대학생 또는 취업준비생, 학원 원장, 목사, 뮤지컬 배우, 웃음치료사, 강사 그리고 음식점 주인도 더러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진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많이 힘들어 보이시는데. 좀 쉬셔야 할 것 같은데요."
"쓰러지실 것 같은데..."
30대 젊은 뮤지컬 배우가 내게 한 말이다. 네온사인 공장에서 같이 일했다가 대형 커피 물류센터에서 또 만났다. 아마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티가 많이 났던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같은 공장에서 일하다가 다른 공장에서 또 마주치면 그래도 반갑게 인사도 하고, 우리(땜빵)끼리 서로를 챙기기도 했다. '일하다 만난 사이'라고.
여기서 일하다 만난 사이는 달랐다. 내가 공장에서 일하다 만난 사이는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이하고는 많이 달랐다. '서로 잘난 척, 많이 아는 척, 많이 가진 척'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는 다 똑같은 입장이었다. 대부분 코로나19로 인해 월세를 내기 위해서, 직원 월급을 주고 자녀들 학비를 벌기 위한 즉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는 현실 앞에 서 있는 사람들, (신랄하게 말하면) 땅에 코를 처박고(!) 처절하게 울어 본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제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하지 없고 내일 어떻게 살지 생각할 겨를도 없다. 단지, 지금은 어떻게 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어제 뭉친 피로도 풀지 못한 채 오늘도 일당바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은 하루하루 차곡차곡 그냥 살아갈 뿐이다.
그렇게 보았다. 하루하루 공장 기계가 돌아가는 대로 기계를 따라 물건을 오르내리고 기계처럼 일하면서 내가 보였고 그 사람들을 보았고 세상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쓰고 있던 두꺼운 가면이 벗겨 나가는 홀가분한 기분을 느꼈다. 이 일과 일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속 깜냥, 능력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를 깨달았다.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난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진짜 나'였다.
혹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카드 명세서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카드 명세서는 내가 쓴 돈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돈이 가는 곳에 가장 마음을 많이 빼앗긴다. 그래서 명세서만 잘 보면 어디에 마음을 뺏기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눈대중이 나올 것이다.
카드를 사용하면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일리지 적립 제도이다. 기업이 고정 고객을 확보하고 판매를 촉진하려는 의도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고객은 이용 실적에 따라 점수를 획득하고 누적된 된 점수가 화폐 즉 돈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내가 쓴 만큼 포인트가 적립이 되고 다시 돈으로 쓸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인생도 카드 마일리지와 같다. (내가) 살아온 대로, 살아온 만큼, 살아온 대가로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생은 쌓은 대로 돌려받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가 하나도 헛된 날이 없다. 매일 아무런 느낌도 없이 반복하고 살아서 무의미해 보이지만 처음을 생각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처음보다 분명히 지금이 나아졌을 테니까 말이다.
콩나물은 시루에서 키운다. 시루는 밑에 큰 구멍이 나 있다. 시루에 물을 매일 부어 주면 물은 그대로 빠져나가 버린다. 그래서 콩나물이 자라지 않는가? 아니다. 콩나물은 계속 잘 자라고 있다.
바로 이것이다. 어느 때보다 <지금>이 중요하다. 어제도 내일도 일단 접어 두고 오늘 하루, 일당바리처럼 집중해서 살아나가 보자. 누구도 헛되고 헛된 인생은 없다. 그래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도 (당신도) 오늘 무엇인가 차곡차곡 쌓아두면 반드시 선물처럼 인생의 마일리지를 쓰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