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복이 없지만 저를 만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본질에 대하여...

by 수정중

내가 들은 말 중에 가장 모진 말이 있다.


너는 참 복이 없다! 딸이 없어서...”


16년 전, 친정엄마가 내게 한 말이다. 오죽했으면 엄마가 딸에게 이런 말을 했을까 싶다. 왜냐하면, 나는 아들에게 이런 말은 못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가 이 말을 할 때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가늠이 된다.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내가 스러지는 것 같다.


그 일이 아니더라도 아주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지척에서 본 이들이 한결같이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어리석은 비교일 테지만 남들은 다 쉬워 보이는 게 나는 근근이 되었다. 한마디로 그저 얻는 법이 없었다. 그래선지 나는 무슨 일이라도 한번 시작하면 집요하게 매달린다. 내가 '복이 없는 사람이라서 죽기 살기(?)로 해야만' 비로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들이 고2 때 중간고사를 본 날이다. 아들이 집에 들어오며 말했다.


"엄마, 저 정말 죽고 싶어요!"

"어... 왜?! 무슨 일 있어?"

"아무래도 저는 돌대가리(!)인가 봐요! 아무리 해도 안돼요!"

"아... 나 닮아서 그래. 너는 대학교 가서 잘할 놈이야. 너는 딱! 그기 스타일 이거든!"


이때 사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아들은 워낙 착하고 성실한 편이라 학교생활이 무난했다. 그동안 힘든 티를 내지 않아서 공부에 이런 큰 부담이 있는지 몰랐다. 더욱이 ‘죽고 싶다'는 말은 상상조차 힘든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론 엄마로서 성적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게다. 그렇지만 '성적 그까짓 거' 보다는 아들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늘 이렇게 말했다.


"야! 괜찮아! 너는 대학 가서 잘 될 놈이야!"


그러면 아들은 못내 수긍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들이 내 말을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아들이 대학교에서 생각도 못한 점수를 받아서 내리 1등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다만 그때는 아들이 공부에 대한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놓길 바랬을 뿐이다. 공부가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사람 목숨과는 비교 따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출처 픽사베이


“4.43? 어떻게 하면 그런 점수를 받는 거야!?"

"그러게. 정말 대단하다!"

"자기는 정말 복이 많다! 그런 아들이 어디 있어"


4.43은 아들이 대학교 1학년 1학기에 받은 학점이다. '이쯤 되면 이 집 아들은 원래 공부를 좀 했나 보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도 너무 놀랐다. 처음 있는 일이다. 아들은 (고맙게도) 대학교 내내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그때 아들 친구 엄마들이 해 준 말이 너무 좋다. 자꾸자꾸 들어도 좋고 다시 또 듣고 싶은 말이다.


"자기는 복이 참 많다! 그런 아들이 어딨어!"




소개소 A이사가 급한 일이라며 전화를 했다. 오늘 또 다른 공장에 가라는 것이다. 이제 내가 전동드릴 다루는 수준이 거의 전문가급(?)인데 자꾸 다른 공장으로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나를 다른 공장에 보내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네온사인 만드는 공장에 일이 없거나 다른 공장에 땜빵(?)이 급할 때이다.


사실, 새로운 공장에 가면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다시 또 눈치를 (엄청)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당바리라도 직장생활과 똑같다. 공장 사람들과 하루를 어떻게든 잘 보내야 하고 일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다음에 이 공장에 또 올 수도 있으니 나름 사회생활도 잘해야 돼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새로운 공장에 가면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이 일은 또 얼마나 힘들까'

'또 오늘은 어떤 센(?) 사람을 만날까'


그 공장은 주부로 보이는 여성 15명이 있었다. 그중 일당바리, 땜빵은 나를 포함 4명이었다. 나중에 들으니 나머지 11명은 정규직이 아닌 '고정직(?) 알바'라고 했다. 고정직은 나와 같은 일당을 받으면서 주 5일 고정적으로 일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땜빵) 보다 항상 우월한 듯이 행동했고 (우리를) 구경하듯이 쳐다보며 끼리끼리 쑥덕대기도 했다.


"뭐해! 빨리빨리 움직여야지!"


어느 공장에나 (어느 직장에서든) 꼭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이 한 명씩은 있다. 고정직 중에서 바로 대장(?)이다. 그 대장은 말을 함부로 했고, 행동도 과격한 편이다. 그래선지 어떤 공장은 일이 힘든 것보다고정직들의 고자세(?) 즉 태도가 더 힘들었다. 이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치를 보다가 그들이 싫어서 그만두기도 했고, 더러 대장과 한바탕 싸우고 나간 사람도 있었다.


"알바? 저기 가서 같이 먹어요!" 고정직이 내게 하는 말이다.


심지어 밥 먹는 테이블도 달랐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편의상 자리를 지정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고정직끼리 앉으려고 우리(땜빵)를 몰아서 앉히는 식이었다. 일도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고 '알아서 보고 따라 하라'는 식이다. 혹, 일머리(?)가 없는 사람에게는 공부도 아닌데 '그 진도 좀 뺍시다!' 소리치고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나처럼?) 일 잘하는 사람을 인정하거나 좋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견제했다.


마치 자기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더 억세고(?) 더 거칠게 말하는 것 같았다.


<고정직>,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출처 픽사베이




16년 전, 한 대학교에서 취업특강을 했을 때 일이다. 여대생 한 명이 질문을 했다.


"강사님, 일이 뭡니까?"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서 6개월 전에 이 강의를 확정했습니다. 대학교 특강은 한 학기 전에 특강 의뢰가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강의는 반드시 해야만 합니다. 이 대학교와 약속했으니까요. 그런데 일주일 전에 갑자기 딸을 잃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정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힘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이 이 일이고 저는 이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왜냐고요? 가족을 읽은 것이 세상에서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한 사람이 떠난 것입니다. 이렇듯 아무도 여러분의 아픔이나 슬픔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안다고 해도 그 슬픔에 누구도 애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내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우리 한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는 일>은 다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만 세상은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운동선수를 보면 박수를 치지요. 왜요? '잘해서'그런 것입니다. 아직도, 그것이 '스포츠'로 보이십니까? 아닙니다. 그 선수가 지금 <하는 일>입니다.


출처 픽사베이


예술이든 요리사미용사든 그리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월급쟁이 직장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과와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입니다. 이것이 진짜 여러분이 앞으로 해야 할 입니다. 일은 당신과 인생을 지금보다 더 가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축복입니다."


나는 한 여대생의 질문에 뼈가 으스러지는 심정으로 답했다. 그만큼 그 강의장에서 만난 모든 대학생들이 소중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두가 내 딸, 내 자식처럼 보였다. 그래서 쓰러질 수 없었고 더 많이 더 강하게 알려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에 그 강의장에 있던 4백 명의 학생들이 함께 울었던 생각이 난다. (16년 만에 처음으로 떠올리고 용기를 내어 글로 써 본다)


요즘 느끼는 행복이 있다. 아들과 도란도란 맥주 한 잔 마실 때다. 내 팔뚝만 했던 아이가 어느새 성장해서 이제 같이 술을 마시고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마음이다. '앞으로도 쭈욱 이렇게 살면 좋겠다'


하지만 이 또한 ‘잠깐’에 지나지 않는 것을 안다. '잃어 보고, 넘어져 보고, 아파 보고, 울어 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내 삶 어느 것 하나, 이 땅에 고정된 자리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은 내가 힘들다고 해서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건 상관없이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죽을 것 같아도 그 일을 해낸다면 그 일 때문에 내가 살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일이 가진 힘>이다.


세상 일은 다 때가 있다. 그러니, 지금 자리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사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겠다. 우리 인생 하나하나에는 씨를 뿌릴 때가 있고, 키울 때가 있고, 열매를 따고, 그 나무를 내쳐야 하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때에 맞추어 다시 일을 한다. 내 몸처럼 키운 내 아들을 이제는 자발적으로 독립을 시키는 때가 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느 때에 서 있는가. 자문해 볼 일이다.


'1년 후, 5년 후, 10년 후에도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답은 바로 <당신이 지금 하는 일>에 달려 있다. 미래 당신이 어느 자리에 서 있을지는 하는 일을 통해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의 가치>다. 그래서 세상에는 우스워할 만한 일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어떤 일이라도.


"아들아, 나 새로운 아르바이트 시작했어"

"그럼 공장은 안 가겠네. 뭔데요?"

"베이비시터. 그래서 월요일 아침에 네가 걸어가야 해!"

"걔가 누군지 몰라도 참 복이 있네! 우리 엄마 만나는 걸 보면."


나는 다른 복은 없지만, 이렇게 말해주는 아들 복은 있다.


"저는 복이 없지만, 저를 만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