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통, 실존주의의 유행

by 이준서


AY8qaFd0h2ze28e-mQxpCiAetvmGK5PPpp9GECu5Sb-2-_gFadmaHG-Rv1Rxjcjg91iHdwmEpzhdpg-ri2i6YQ.jpg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젊은 청년층들에게 어느정도 지지를 받았던 실존주의는 현대사회에서도 꽤 주목을 받고 있다. 반항정신이 계기가 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개인을 꿈꾸기 위한 철학 사조를 탐색하다보면 실존주의가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의 존재로 태어나 '무'의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나는 존재하고 그것이 전부이다. 덧없고 공허하다는 인상을 주는 이러한 실존의 설명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안겨주는가?



우선 가치란, 이것의 이론적•학술적 중요성을 떠나 개인의 실천적 삶에 있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철학에서의 가치는 예술•문학•도덕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것이 어떤 진실의 차원에서 기능하지 않더라도, 허구적인 것에 자신의 안식을 맡기는 인간의 특성상 행복한 삶 전반에 있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글에서 가치란 개인적 행복의 수단으로서 작동한다는 관점을 채택하려 한다.



실존주의 철학은 초기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무정부주의적, 허무주의적 담론이라는 비판을 주로 받았는데 특히 사르트르는 이에 대해 변론하는 입장의 세미나를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인간은(특히 실존주의자는) 그렇다면 항상 불안해야만 하는 것인가? 적어도 이 글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우울한 결론을 내리기 보다 '왜 이런 우울한 사상이 사회적인 각광을 받았는가'를 조금이나마 다뤄보려 한다.




실존주의는 자유라는 가치를 매우 명료하게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유란 기본적으로 문명이 형성되면서 필연적으로 축소되는 개념인데(법과 같은 질서로 인해) 현대사회의 복잡성 속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실존주의를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자유를 개인의 '주체성이라는 감각'을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해보면, 사회의 억압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실존주의가 큰 위안이 될 수 있음은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기형도 신드롬이 왜 과거 젊은 세대들에게 널리 퍼졌는가 - 이 물음의 본질적 해답은 결국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과 같은 스산함이 느껴지는 기형도 시인의 문체는 특히 그 당시 우울한 시대를 위로해줄 수 있는, 우울을 우울로서 치료해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대의 사랑>의 최승자 역시 기형도 시인과 같은 시대를 살았고, 두 시인 모두 세상의 덧없음을 시를 통해 노래한다고 여겨진다. '불안'이라는 감각이 시의 서정을 이루는 본질이라는 점에서 최승자와 기형도 모두 실존주의자라 해석하기도 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불러도 삼월에는 주인이 없다

동대문 발치에서 풀잎이 비밀에 젖는다.


늘 그대로의 길목에서 집으로

우리는 익숙하게 빠져들어

세상 밖의 잠 속으로 내려가고

꿈의 깊은 늪 안에서 너희는 부르지만

애인아 사천 년 하늘 빛이 무거워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우리는 발이 묶인 구름이다.


밤마다 복면한 바람이

우리를 불러내는

이 무렵의 뜨거운 암호를

죽음이 죽음을 따르는

이 시대의 무서운 사랑을

우리는 풀지 못한다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사랑이라는 아이러니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 시대의 사랑>은 한편으로 사랑과 죽음 간의 전치를 통해서도 읽힐 수 있다. 요컨대, 사랑과 죽음을 바꿔 읽어보라는 말이다.



밤마다 복면한 바람이

우리를 불러내는

이 무렵의 뜨거운 암호를

사랑이 사랑을 따르는

이 시대의 무서운 죽음을

우리는 풀지 못한다



이 시대의 무서운 죽음은 '존재와 무'를 연상시킨다.



다시 철학으로 돌아와, 실존주의가 제공하는 또다른 가치 - 특히 개인 심리와 관련한 의료적 효용 -는 실존주의가 '불안'에 대한 이론적 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20•30대가 신경증적 증상을 호소하는 요즘 사회에서 실존주의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구조로부터 많은 억압을 받으며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시간을 잘 갖지 못한다. 그리고 이들은 신경증을 호소하게 되는데, 두 사실[억압과 신경증] 간의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실존주의를 자발적으로 채택하게 된다. 예컨대, 현재 나의 불안이 무엇때문인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결론이 '실존으로 인한 불안'이 되버린다는 것이다.



수많은 텍스트가 정보 제공이라는 명목으로 쏟아지는 사회에서 '무엇이 사실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교육에서 또한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다. 즉, 사유-이성을 통한 현상의 설명이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뜻이기도 한데, 개인의 불안 역시 설명되어야 할 대상이 되버린다는 점이 실존주의의 유행에 대한 원인 중 하나이다. '불안'을 철학적 용어로 규정짓는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존주의자의 존재적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불안을 존재의 성질이 아닌 심리적 현상쯤으로 취급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다음 글 - 존재의 구조와 메멘토모리 - 에서.



+. 존재적 고통(=존재통)을 느낀다고 실존철학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병원을 가보거나 취미를 만들던지...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다. 꼭 철학이 아니더라도.







고독은 비처럼

바다로부터 저녁을 향해 올라온다.

멀리 외딴 벌판으로부터 고독은

언제나 외로운 하늘로 올라가서는

처음 그 하늘에서 도시 위로 떨어져 내린다


모든 골목길마다 아침을 향해 뒤척일 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육신들은

실망과 슬픔에 젖어 서로를 떠나 갈 때,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사람들이

한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그 뒤엉킨 시간에 비 되어 내리는

고독은 냇물과 더불어 흘러간다.


릴케, <고독>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을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