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타자의 억압과 솔직함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우리는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은 진솔한 고백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그럴싸한 의견이다. 마치 인성 면접에서 예상 가능한 답변을 말해야 좋은 평가를 얻듯, 자기소개서 역시 사회가 바라는 모범답안을 적는 공간이 된다. 이 과정에서 솔직함은 미덕이 아니라 배제의 이유가 되고, 부적절하다는 낙인이 찍히곤 한다.
예를 들어 “공동체 내에서 다툼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행동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갈등을 중재하고 화해를 이끌겠다고 답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주의적 태도를 가진 이에게 이는 기만적이다. 나와 직접 관련 없는 다툼이라면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맥락에서 개인은 자신의 신념을 감추고, 체제가 요구하는 태도를 따라야 한다. 이는 교육 현장에서부터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며,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
솔직함을 감추는 태도는 반윤리적인 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대타자―법, 질서, 권력―로부터의 억압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이러한 억압이 문명과 사회 체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솔직함에 대한 문제의식은 특히 사춘기 무렵 크게 체감된다. 사춘기는 자아의 영역이 급격히 확장되는 시기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리자면, 리비도라는 욕망의 에너지가 ‘나’에서 ‘타자’로 향하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이상 자기 안에 머물지 않고 외부로 뻗어나간다. 이때 ‘나’와 ‘외부’의 경계가 혼연해지고,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뒤따른다. 그리고 우리는 답을 내리기 위해 '나'의 윤곽을 그리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솔직하다는 것은 '나'의 윤곽을 명확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하지만, '나'의 윤곽은 타자에 의해 그려지고 특히 밑바탕이라 불릴만한 선은 대타자의 억압으로부터 형성된다. 따라서, 솔직한 나를 드러낸다는 것은 자아에 새겨진 대타자의 억압을 분절시키는 과정이다.
'솔직함은 무기이다'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솔직함은 사회와 문화를 구성하는 기본구조를 칭하는 "상징적 질서(Symbolic order)"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무기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개인의 솔직함은 규범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적 비난과 불편한 시선을 감수해야 하며, 많은 경우 솔직함은 불이익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상징적 질서를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마땅히 지켜야 할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철학적인 용법 하에, 대타자의 억압은 존재론적 구조를 규정짓는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구조에 대한 의심을 품지 않기에, 솔직함을 기반으로한 타인의 행동에 낯설고 불쾌한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솔직해져야 하는가? 솔직함이 나에게 효용을 줄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은 명확하지 않다. 정신분석에서 분석가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질문을 던지며, 개인이 삶의 문제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그것을 마주하도록 돕는다. 라캉의 윤리학이 말하듯, “답 없음”은 무책임함이 아니라 가장 윤리적인 태도일 수 있다. 따라서 자기소개서에서조차 솔직함을 온전히 드러낼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답변 뒤에 가려진 나 자신의 목소리를 묻는 일, 그것이야말로 솔직함이 남기는 윤리적 가능성일 것이다.
* : 실제 프로이트에게 사춘기와 나르시시즘에 대한 이론은 이보다 훨씬 복잡하니, 관련 문서를 찾아보는 것을 추천. 필자 또한 정신분석학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라,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