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과 기다림

부름, 기다림, 응답

by 이준서

바닷가의 수도승,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1808-10



실연을 겪은 이가 과거의 연인을 붙잡기 위해서 오직 부름이란 노력밖에 할 수 없다. 상대와 물리적, 정신적 거리의 단절이 일어났기에 말-부름이라는 시도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대를 호출한다하여 즉각적인 응답을 기대할 수는 없으며, 우리는 그칠 줄 모르는 기다림의 과정에 진입하게 된다. 응답이라는 기다림의 종결이 도래하기 전까지. 이를 시적 산문으로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

나는 너의 이름을 외친다. 나를 봐달라고. 말해진 것은 네게 곧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네가 지각하기까지, 네 인식의 장에 내 부름이 속할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기다림은 그칠 줄 모르는 파도와 같다. 시간의 흐름 속 풍파는 나의 세계를 깎아내린다. 하얀 물거품을 보며 무용한 아름다움을 관조하거나, 파도를 멈추려는듯 온 몸으로 막아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다. 어차피 내가 무엇을 하든 세계의 법칙을 거스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채. 주체적으로 행동한다한들, 기다림이란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행위의 반복 속 너의 응답이 도래하게 된다. 기다림의 과거가 화살이 되어 너의 응답을 통해 현재에 이르렀을 때. 그 때, 파도는 멈췄지만 바뀐 세계의 흔적은 분명하다.

부름과 응답의 간극속에 내재된 공허함은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을까. 현재는 현실의 투영이라기에, 너의 부재라는 비현실이 스산하게 느껴진다.

*

실연과 기다림에 대한 철학자의 기술(記述)은 죽음에 대한 논의와 다를 게 없다. 죽은자는 말이 없다라는 격언처럼, 실연을 고한 당신또한 내게 말을 건넬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자를 완전히 죽게 하는 것은, 어떠한 부름에도 응하지 않는 것이다. 헤어진 연인을 완전히 헤어지게 만드는 것 또한 이와 같을까.

다만, 기다림이라는 심연 속 한 줄기의 빛이 도달하는 그 시점은 우리가 인간이기에, 살아있는 존재기에 겪을 수 있는 구원이다. 따라서, 실연의 고통 속 우리는 구원받길 기도하는 연약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가슴이 찢어진다라는 표현은 자아의 해체속 부모의 손길을 바라는 어린아이를 발견하는 과정의 함축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 당신 입술의 떨림을 기다리는 나는 - 눈을 감은채 당신의 입맞춤을 기다린다. 그때 제 생명의 숨결이 내 몸에 깃든다는 것을. 실연을 고한 당신은 평생 모른다는 비극적인 구도 속에서.

철학자는 비극을 철학의 언어로 읊조린다. 무덤덤한 위로가 비극의 폭력에 대한 해설이 될 수 있도록, 당신과 한 발치 떨어져 조언을 건넬 뿐이다. 연민의 감정은 제 무고함을 증명하려는 욕망과 맞닿아있기에, 연민이 아닌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당신의 고통을 헤아리는 윤리적인 말하기이다. 철학자에게 실연은 죽음에 준하는 고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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