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한 사람들, 그를 못내 미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
뮤지컬 <그날들>은 대한민국이 사랑한 영원한 가객, 故김광석이 불렀던 노래들로 구성된 주크박스 형식 창작 뮤지컬이다. 2013년 초연을 시작으로 올해 3번째 공연을 올렸다. 제 4회 서울 뮤지컬 페스티벌 흥행상, 제 10회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 딤프 어워즈 <올해의 스타상>, 제 7회 더 뮤지컬 어워즈 <올해의 창작 뮤지컬상>, <극본상> 등 초연 당시 2013년 전 시상식을 휩쓸며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았다. 라이선스 뮤지컬이 다수인 국내 뮤지컬계에 뮤지컬 <그날들>은 창작 뮤지컬로서 독보적인 행보를 걸어왔다. 사연이 더 기대되는 뮤지컬이다.
청와대 경호원이 된 ‘정학’은 자신과는 다른, 자유분방한 동기 ‘무영’을 만나다. 신입 경호원 중 최고의 인재로 꼽히던 ‘정학’과 ‘무영’은 때론 라이벌이자 친구로 우정을 쌓아간다. 한중 수교를 앞두고 그들에게 내려진 첫 임무는 신분을 알 수 없는 ‘그녀’를 보호하는 일. 그런데, 갑자기 ‘그녀’가 사라졌다. ‘무영도 함께.
2012년, ‘그 날’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행사가 한창인 청와대. 경호부장이 된 ‘정학’에게 전해진 다급한 소식. 대통령의 딸 ‘하나’와 수행 경호원 ‘대식’이 사라졌다. 마치 20년전 ‘그 날’처럼. 그들의 행방을 쫒는 ‘정학’ 앞에, 사라졌던 ‘무영’과 ‘그녀’의 흔적이 하나 둘 씩 발견되는데.
뮤지컬 <그날들>은 지켜주지 못한 사람, 그리고 그것을 못내 미안해하는 사람, 모두를 위한 위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마음을 청와대 경호실을 배경으로 경호원들의 삶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20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극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건을 쫒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극 중 ‘정학’의 안경은 시간적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는 안경을 착용하고, 과거에는 안경을 벗으며 극의 특이한 전개에 도움을 준다.
‘정학’역 유준상 배우이전에 보았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 유준상 배우의 연기와 노래가 정말 인상적이여서 다시 한 번 유준상 배우 캐스트 회차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는 무대 위에서 그 자체로 ‘정학’이 된 것 같았다. 특히, 마지막 2막 9장 “남은 자들을 위한 위로”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부를 때, 연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무영’역 손승원 배우<청춘시대>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알게 된 손승원 배우를 무대 위에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유준상 배우와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던 것 같고, 내가 상상했던 ‘무영’과 비슷한 이미지를 보여줘서 정말 좋았다. 손승원 배우의 또 다른 뮤지컬을 보고 싶어졌다.
‘그녀’역 신고은 배우처음 알게 된 배우인데, 목소리가 정말 예뻐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아련한 목소리가 ‘그녀’와 잘 어울렸고, ‘정학’, ‘무영’ 역의 유준상, 손승원 배우와 함께 하는 넘버에서 특히 잘 어울렸다.
‘대식’역 김산호 배우뮤지컬 <젊음의 행진>에서 처음 알게 되고,<막돼 먹은 영애씨>,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를 통해 호감을 갖게된 김산호 배우를 ‘대식’이라는 캐릭터로 만나게 되어서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다. 뮤지컬이 끝난 뒤 로비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는데, 싸인도 해주시고 사진도 찍어주셨다. 평소에 호감을 갖고 있던 배우라, 이번 관람에도 그의 연기를 집중해서 보았는데, 아마 난 팬이 된 것 같다.^^
‘정학’ 역의 유준상, 이건명, 오만석 배우는 초연, 재연에 이어서 이번 삼연에도 출연했다. ‘무영’ 역의 오종혁, 지창욱 배우도 초연, 재연, 이번 삼연에도 합류하였다. 사연에서도 이들을 계속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故김광석의 노래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인 만큼,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나 같이 좋은 노래였지만, 장면과 가장 잘 어우러지고, 나의 감정을 자극한 몇 가지 넘버만 소개해 보려고 한다.
그대는 기억조차 못하겠지만이렇듯 소식조차 알 수 없지만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눈물이 흐르곤 했었던 그날들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대를그렇듯 사랑했던 것만으로그렇듯 아파해야 했던 것만으로그 추억 속에서 침묵해야만 하는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날들
이 뮤지컬의 제목과 같은 노래이다. “지켜주지 못한 이들과, 그를 못내 미안해하는 이를 위한 위로의 이야기.”라는 주제와 딱 맞는 가사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 넘버는 ‘정학’ 역의 테마곡으로 지켜주지 못한 ‘무영’ 과 ‘그녀’ 에 대한 그리움, 가슴 아픈 그날들과 결국은 이별하고 싶은 안타까움이 잘 드러난다. 곡의 가사와, 극의 아련하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겹쳐 나의 눈물 샘을 자극 했던 곡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속에서 조금한 읊조림은 커다란 빛 나의노래는 나의 힘나의노래는 나의 삶
신나는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으로 뮤지컬이 끝나고 나서도 한창을 흥얼거렸다. 극에서 중요한 매개체인 ‘음악,노래’ 의 주제를 정확히 담고 있는 가사가 돋보인다. 따라하기 쉬운 율동과 함께 커튼콜을 마무리 했던 곡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
비가 내리면 음-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음-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난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가장 마음에 울림을 준 곡이다. 이 노래는 내가 처음 접한 故 김광석의 노래인데, 듣자마자 가슴이 먹먹했다. 가장 마지막 장면에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한중 수교식에서 모두가 부르는 노래이다.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 죄책감, 그들과 함께 행복했던 시절로의 추억, 이 모든 것이 이 노래에 함축되었다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선율과 모든 배우들의 목소리가 한데 합쳐져 감정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뮤지컬이 끝나고 나서도 이 노래를 들으면 이야기의 안타까움과 뮤지컬을 보았을 때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어 절대 잊을 수 없는 노래이다.
뮤지컬 <젊음의 행진> 이 후로 주크박스 뮤지컬은 <그날들>이 두 번째이다. 사실, <그날들>을 보기 전에는 故김광석의 노래들을 어떻게 이야기를 연결시켜 뮤지컬에 접목 시켰을까,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그날들>에서 그의 노래는 하나의 ‘가요’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가 되었다.
나는 이번 뮤지컬<그날들>을 보면서 故김광석의 노래에 다시 한 번 빠지게 되었을 뿐 만 아니라, <그날들>의 가슴아픈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또 그를 못내 미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라는 말이 너무나 가슴 아프면서 감동적이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지켜주지 못해 떠나갔고, 그들에 대한 빈자리에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세월이 흘러가도 사무치는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을 간직해야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말 아련하고 애절한 매력 있는 스토리인 것 같다. 이전에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가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가사가 하나씩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을 보고 나니 다시 한 번 그의 노래를 가사에 집중해서 듣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 김광석은 자신의 노래를 통해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그리움, 그들과의 추억, 후회를 노래하고 있었다.
또한, 이 뮤지컬은 창작 뮤지컬로 한국의 정서를 그대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우선 김광석의 주옥같은 노래들로 채워진 뮤지컬 넘버와 청와대 경호실이라는 배경. 라이선스 뮤지컬이 난무하고 외국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뮤지컬이 많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뮤지컬 <그날들>은 신선한 느낌과 함께, 특별한 감정을 전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