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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in Oct 15. 2017

바람처럼 살아갈 것.

첫 산문 끄적이기,,

언제였는지, 어디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조그만 기억의 한 조각이 여기 있다. 가벼운 옷차림에 볕은 강렬했지만 불쾌하지 않았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던 날이었다. 어디선가 잔잔한 기타의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었고 풀들이 바람에 몸을 맡겨 쏴아-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누구와 함께였더라-아, 그와 함께였던 것 같다. 그와 함께 풀 사이 들리는 옛날 기타 선율의 길을 따라 한없이 걷기만 했다. 바람결이 우리를 끝없이 간질였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걸으며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해내지 않았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황홀할 만큼 행복하지는 않았으나, 처절할만큼 괴롭지도 않았다.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가벼운 존재로 있을 뿐이었다. 우리를 빛내주던 강렬한 빛이 산을 넘어 자취를 감추며 보랏빛 하늘과 입 맞추고 있었고, 그 하늘과 청명한 귀뚜라미소리가 우리의 시간을 뒤엎었다. 어느새 한 그루의 나무만이 우뚝 서 있는 언덕에 이르렀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무 아래 앉아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선율과, 귀뚜라미 소리, 풀 냄새가 주는 그 시간의 숨결을 느꼈다. 그러다 이 순간이 꿈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곧 나는 우리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꿈에 대해서. 아무것도 우리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 보라색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 꿈을 저런 스케치북에 그릴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순간의 생각을 붙잡았다. 그러다 갑자기 옆에 있던 그가 말을 걸었다. 

“꿈은 바람 같은 것일 거야.”     

그는 나를 쳐다보는 대신 가볍게 눈을 감고 손으로 바람을 잡으며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우린 꿈을 마치 산 정상에 있는 깃발처럼 생각하지. 미친 듯이 매달리고, 살이 찢기도록 노력해. 그런데, 난 오늘 꿈이 지나가는 바람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     

왜냐고 이유를 물어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끝내 그만 두었다. 어쩐지 그의 독백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그를 따라 눈을 감고 바람의 냄새를 맡으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기로 했다.      

“꿈은 잡아도 다시 내 손아귀를 벗어나가. 바람처럼. 잠기 전에는 나에게 과분하고 엄청난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은 영원한 내 것이 아니야. 나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지. 나와 꿈은 또 다시 바람처럼 흩어져. 그렇게 우리는 매순간 또 다른 꿈을 꾸잖아. 그래서 나는 바람이 불면 참 좋아. 잊혀져갔던 나의 꿈들, 내게 왔던 꿈들, 앞으로 이뤄나갈 꿈들을 만나는 것 같거든. 그래서 애틋해.”     

나도 그의 말이 애틋했다. 이상하게 바람이 꿈같다는 말이 나를 위로했다. 꿈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라는 말에 깊게 파인 상처가 아무는 것만 같았다. 그의 말의 빈자리에 바람의 소리가 채워져 가고 나는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느끼며 그에게, 내 앞에 놓인 이 하늘에게, 손을 스쳐가는 바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다면 나는 바람처럼 살아갈게. 얽매이지 않고. 내가 지치지 않게. 바람처럼, 꿈처럼 살아갈게.”     

눈을 뜨니 그가 감던 눈을 뜨고 살며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그래, 지나간 것에 연연하지 말고, 다가올 것에 조급해하지 말고, 그렇게.”     

그날의 기억은 여기서 끝이 난다. 읽던 책을 접어 책갈피를 가만히 꽂아두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느낀다. 그날의 기억이 어쩌면 꿈일지라도.                          

_

바람에 욕심을 씻기고

안일함을 버리고 꿈에

대한 허위를 버리고

바람에 다시 한번

몸을 맡긴다.          






학교 백일장에서 나름 산문부분 장원에 올라간 글이다. 백일장은 나가본 적도 없고, 문학적인 글쓰기에는 영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던 터라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책을 많이 읽어본 티가 난다고 하셨다고 한다. 음, 그런가. 앞으로 자만하지말고 가끔씩이라도 끄적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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