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현, 모그 '환영: 실재와 환상의 사이'
현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선 판타지다.
2021.06.06.일
이세현, 모그
갤러리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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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난 4,5월은 마음과 머리의 인풋 없이, 내가 뭘했는지도 모를만큼 정신 없이 지나간 나날들이었다.
내가 쌓인 것들을 잘 활용하긴 했지만, 뭔가 내 안이 텅 빈 느낌이었고 그래서 많이 괴로웠다.
자극을 받고, 가슴이 뛸만한 일을 해야했다.
그럴 때 보통 내가 찾는 것은 누군가의 창작물이다. 누군가가 그리고, 쓰고 만든 것을 보다보면 새로운 세계 하나가 손쉽게 내 안에 들어오는 느낌이 든다.
갤러리 구조의 '환영'은 그런 몸부림 중의 하나였다.
전시를 알게 된 후로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작품들은 강렬했다.
사실 많은 작품을 이미 사진으로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이런 감정이 들었다.
'이걸 사진으로만 보고 지나가면 난 정말 후회하겠구나'
새로운 것에 대한 나의 욕구와 22살을 잘 살아보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과 같은 그 빨강을,
작가가 마주한 규모 그대로 마주보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구조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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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서울특별시 성동구 뚝섬로 419 4층
환영 幻影 : 실재와 환상의 사이장르전시장소갤러리 구조기간2021.05.11. ~ 07.30
갤러리 구조는 성수역 3번출구에서 약 10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다.
대림창고, ADER를 지나 조금 외진 성수동을 마주하고 나면 발견할 수 있다.
1-3층은 더 그라운드로 현재 Edition of Editions 전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니 위의 전시 정보를 눌러 네이버 예약을 하고 방문하면 좋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내가 갔을 당시에는 예약하지 않고 방문한 관람객도 허용했다.)
리플렛은 이렇게 두 장의 a4로 이뤄져있다. 작가 소개와 전시서문을 뒤로 전시 도면과 작품 이름이 안내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이세현 작가의 <between red> 시리즈로 모든 작품의 이름 또한 동일하다.
단순한 재현을 넘어 다양한 회화적 해석의 여지를 주는 요소
갤러리 구조는 탁 트인 창과 높은 층고로 공간 자체가 그리 넓지는 않지만 작품에 규모감을 더해준다. 대형 캔버스 작품이 주를 이루고 관람을 위해 좁은 시야와 넓은 시야가 모두 필요한 이번 환영 전시에 딱 맞는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이 작품들이 조금 낮거나 가로로 긴 공간들에 전시가 되었다면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없었을 것 같다. 공간 또한 전시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 전시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세현 작가의 <Between Red>와 함께 환영을 주제로 모그가 작곡한 2개의 곡을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에 입장하는 순간 공간 전체에 공명하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음악과 함께함으로써 작품은 공간, 음악 그리고 관객의 관람을 통해 완성된다.
(작가 소개 발췌)
이세현은 영국 미술시장에서 먼저 알려지고, 2007년 이후부터 국내 미술시장에 활발히 소개되었다. 작가의 작품은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들에서 전시되었고, 각종 아트페어와 경매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슈퍼 컬렉터인 울리 지그도 이세현의 작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으며, 올해 예정 중인 그의 소장품 순회전에서 대표작으로 소개되었다. 또한 뉴욕의 뱅크 오브 아메리카 본사, 버거 컬렉션, 올 비주얼 아트, 제임스 유 컬렉션, 마이크로소프트 컬렉션 등 세계 곳곳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모그는 201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음악계의 대표적인 음악 감독이다. 그는 정제된 음악의 무규칙적 불협 화음 / 소음이 혼재된 경계를 허무는 음악으로 한국 영화 음악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모그는 <버닝>, <밀정>, <광해, 왕이 된 남자>, <악마를 보았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더 킹> 등의 수많은 영화 음악을 제작하였고 마이애미 영화제 음악상, 아시안필름어워즈 최우수 작곡상 등 다수의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한국의 대표적 음악감독으로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Between Red> 시리즈는 붉은색으로 다양한 현상들을 세밀하게 묘사한 장면 장면들을 콜라주와 유사한 방식으로 접합 시켜 전통 산수의 형상을 연상시키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서양의 극사실화와 동양의 관념산수를 접합시킨 것이다. 이에 따라 작품을 최대한 가까이서 세밀하게 바라보고 또 가장 멀리서 전체를 관조하는 두 자세 모두 필요하다. 가까이서 보면 풍경 하나하나를 그대로 프레임으로 떼어내도 좋을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그저 한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곳곳에 숨어있는 의외의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군복무 시절, 나는 군사분계선 근처 전략 지대에서 야간 보초를 서곤 했다.
그 때마다 야간 투시경을 썼는데, 세상이 온통 붉게 보였다. 나무와 숲이 그렇게 멋지고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 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하지만 절대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풍경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극 사실적인 묘사와 달리 작가가 화폭에 옮겨놓은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우선 한 세계와 저 세계가 밀접하게 물흐르듯이 연결될 수 없다. 거대한 화폭에 연결된 풍경 풍경들은 이어짐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작가가 목격한 현실과 현실이 조각보처럼 이어져 환영성을 띄는 것이다. 사실 환영, 즉 fantasy란 거대한 우주나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 무언가가 아니다. 이 현실과 저 현실을 동시에 볼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환상이다.
현실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선 판타지다. 현실이라는 판타지에 의존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욕망과 충동의 섬뜩한 실재를 간신히 외면한 채 그럭저럭 살아간다. 현실이 유지되기 위해선 말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할 어떤 말들이 있는 것이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환영을 주제로 한 모그의 음악과 함께 비현실이지만 현실같은 작품과 현실이지만 비현실적인 나의 상황을 동시에 관조하게 된다. 무엇이 환영이고 실재인가. 단순한 재현과 회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실 그것은 한끝 차이일수도.
이세현 Between Red 기획의도 (전시서문 발췌)
이세현의 회화에서 입체적 현실의 대상은 평면인 회화로 재현되면서 환영성을 띈다. 실재의 화면은 평면으로 들어오면서 오히려 모호한 확장성을 띠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다양한 회화적 해석의 여지를 주는 요소이다.
전시에서는 다양한 악기 또한 감상할 수 있다. 바로 지금 전시장에 흐르는 음악들을 연주한 악기들이다.
<Between Red>의 의미를 더해주는 모그의 음악은 환영을 주제로 작곡되었으며 우연히 발생한 피드백과 소음들을 조합하여 완성한, 음의 현상적 인식에 대한 전환을 가져올 수 있는 작품들이다. 음악 자체가 '전시'된다는 것은 무언가 낯선데, 이번 전시를 관람하고 난뒤 생각이 바뀌었다.
'왜 안돼?'
음악 자체가 전시되는, 사운드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귀로 뜨는 소리에서는 더 많은 환영이 발생하고는 한다.
때로는 그 환영들이 아이러니하고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오랫동안 음악 작업을 위해 사용해오던 악기와 장비에서 의도하지 않았는데 생겨났던
우연한 발생의 소리와 그 기억을 환영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을 해보았다.
우리는 현실을 얼마나 감각할 수 있을까. 보고 듣는 것만 현실이라면, 우리는 너무 조그만 세상을 현실이라 감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옳지 않아서 바르지 않아서 예쁘지 않아서 흘려보내는 보고 듣는 것들은 현실일까 상상일까. 분명히 존재했지만 살아남을 수 없는 것들이 모인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환영이라 할만 할 것 같다.
모그 MOGW 기획의도 (전시 서문 발췌)
모그의 음악은 특정한 음과 음향의 구조적 형성을 뒤집어놓은 모호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지점은 음의 현상적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두 작가의 작품은 평면의 화면과 사운드스케이프 안에서 실재와 환영이 전환되어 있다. 갤러리 구조는 실재와 환영이 전환된 공간감에 두 작가를 주목했다.
마음에 들었던 작품. 산수화들 사이로 육체의 일부분들과 화산 폭발등의 요소가 숨어있다.
강렬한 빨강은 현실과 실재의 경계 사이에서 경고를 주는 듯하다. 동시에 고풍스러움과 세련됨을 한 껏 전달하기도.
단일 색상을 가지고 이렇게 까지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모든 터치가 세밀하게 구분되는 명암을 구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구가 있었을까..!
세밀한 붓부터 문지르는 부분들까지 눈을 크게 뜰고 세세하게 쳐다보면 정말 다양한 방법이 담겨져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빨강으로 집중되긴 하지만, 사실 이 시리즈에서 흰색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래서 더더욱이 오른쪽 사진 위에 위치한 가장 여백이 많은 작품이 가장 눈에 띄었다.
공간감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 한참을 1,2층을 왔다갔다하며 음악을 듣고 작품을 감상했다. 그리 넓은 갤러리는 아니지만 이세현과 모그가 제시하는 환영과 실재의 공간에 있다보면 내 머릿속에서도 다양한 환영과 실재를 마주할 수 있다. 그렇게 빨강과 하양, 그리고 음악을 즐기다보면 꽤 오랜 시간 갤러리에 머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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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전시는 7월 30일까지 진행된다. 요즘 성수동이 꽤 핫플이니 카페투어나 맛집 투어하다가 들려도 좋을 듯 하다.
작년부터 고민했던 '환상과 실재'에 대한 전시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강렬하고 확실한 아트 인사이트가 필요하신 분이라면 적극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