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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in Jan 10. 2021

달팽이의 별, 나는 오늘도 사랑을 배운다.

이승준 감독 작,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 

극 초반 영찬과 순호가 전등을 갈아끼우는 시퀀스에서 비로소 제목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느릴 뿐인, 그들의 우주를 보여주는 다큐라는 것을 말이다. 당연한 일상의 장면 중 하나인 전등 갈아끼우기, 설거지하기, 밥 먹기, 책 읽기 등이 그들에게는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을 치르듯 혹독하거나, 힘들게 그려지지 않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속도가 모두 다르듯이 다큐는 천천히 그들이 살아가는 속도를 담아낸다. 서로가 답답해 하지 않고 천천히 전등의 위치를 맞춰나가는 것을 보며 이 둘의 세계가 그동안 어떤 방식으로 바르게 또 아름답게 맞춰졌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로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하고, 클로즈업을 많이 사용하여 조금 더 영찬과 순호의 일상에 스며들 수있게 된다. 이러한 기법은 관객을 다큐멘터리를 관조하는 타인의 위치에 두기보다 그들이 사는 달팽이의 별에 초대받은 손님의 위치에 두게 한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보니 연출되지 않은 우연한 순간에 카메라를 켜고 그것을 원하는 구도와 샷사이즈에서 포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감독과 더불어 촬영을 도맡았던 이승준 감독이 얼마나 출연진과 라포를 잘 형성하고 그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었다. 


영화 내내 순호는 영찬의 눈과 귀가 되어준다. 그래서 순호와 영찬이 함께 있을 때에는 사운드가 명확히 들리는 반면 영화의 클라이 막스, 잠시 순호와 영찬이 떨어지는 순간은 차의 문이 닫힘과 동시에 사운드가 점차 줄어들고 멍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이렇듯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운드 편집이 관객에게 커다란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영찬은 시청각장애이다. 달팽이와 같이 촉각을 통해서만 소통을 해나갈 수 있다. 현재 국내에 시청각장애에 관한 지원법률이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복지 법상 15개의 장애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의 경우 헬렌켈러법이 1967년에 제정되면서 장애 유형에 시청각 장애인이 포함되고, 지원체계까지 확립했지만 국내에는 시청각장애가 수면위로 올라 주목을 받은 본 작품이 상영된지 약 1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관련 법이 발의되었거나, 무산되었거나, 계류 중인 상태이다. 그러한 면에서 영화라는 장르 상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져야하는 주제를 가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무언가를 극복해서 성공한 장애인을 그려낸 것이 아니라, 그들의 달팽이 별을 고요히, 멀리서 동시에 가까이서 담아냈다는 것이 해당 작품의 가장 큰 가치일 것이다. 자신을 우주인이라 칭하는 영찬의 글과 나레이션이 조금 더 내밀하게 그들이 사는 별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가치관, 내면까지 잠시나마 여행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하여 결국은 관객이 시청각 장애라는 사각지대 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소통이란 무엇인가, 소통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는가, 더 나아가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성찰하게 만든다. 나는 그들에게서 배운 가장 큰 가치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극복하고, 성공하기 위해 수단으로 삼는 사랑이 아닌, 그저 인간 본연의 감정을 나누고 함께의 가치를 만끽하기 위한 귀한 사랑. 나도 어쩌면 누군가가 보았을 때 나만의 달팽이의 별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항상 남들보다 더 천천히 나아가는 것 같고 누구보다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고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영찬의 친구가 영찬과 순호를 부러워하는 장면에서 영찬이 따끔하게 한마디 하듯이. 부러워하지말고, 각자의 달팽이의 별에서 가장 크게, 온맘을 다해 사랑하면 된다. 

달팽이의 별을 본 하루 나는 조금 더 천천히 세상과 자연을 감각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영찬씨와 순호씨의 달팽이의 별을 응원함과 동시에, 오늘 처음으로 나만의 달팽이의 별을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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