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청년팔이 사회>, 김선기 리뷰
(정관용) 진짜 청년세대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한번 잘 좀 연구해서 보여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김선기) 같이 해주십시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2019년 7월 23일 방송)
청년은 청년이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에서 그들이 호명하는 기준에 따라 이용되고 대상화된다. 이런 청년팔이 사회를 지적하고 있으면 그들은 앞선 정관용 진행자의 말처럼 잘 노력해서 청년이란 무엇인가 잘 보여주란 주문이 돌아오곤 한다. 해당 방송의 가장 핵심은 이 마지막 한 마디에 있다. 열심히 노력해달란 기성세대의 주문에 이젠 ‘같이 해달라’는 역주문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력과 열정이 없다면 생존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고도의 경쟁시스템인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가면 취업이란 초고도의 경쟁시스템에 투입된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겪고 있는 노력과 기성세대가 주문하는 노오력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더 나아가 청년들이 진정 원하는 노력은 무엇이며 그 노력을 위해 모두 함께 노력해나가야 할 점은 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노력에 대한 탐구는 김 연구원이 책에서 제시한 세대론이란 강력한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기성세대의 노력 ≠ 청년의 노력
노오력이란 단어는 이미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사진처럼 기성세대들은 더 큰 노오력을 주문한다는 점에서 청년세대가 비꼬는 말로 시작되었다. 책의 2장 도입부에 인용한 글들을 살펴보면 어느 시대든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노오력하지 않음을 꾸짖는다. 이것은 현대 사회 젋은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의 청년들이 세대론이란 강력한 프레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면 꼰대가 되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다. 기성세대의 말마따나 ‘사회전반에 대한 관심이 없고 끈기 없는 청년들’은 한강의 기적이나 민주화를 이뤄내야 하는 거시적인 노력이 필요한 환경에 처해있지 않다. 지금은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사회이고 그들이 생각하는 노력과 질이 다른 개인주의적인 노력을 혹독하게 치러내고 있다. 문화평론가 정지우는 ‘이 시대엔 더는 조언이 없다’고 선언했다. 생존이 가장 우선 가치가 되어버린 현대 사회가 어떻게 흐를지 앞서 생을 살아온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단지 자신들이 했던 노오력을 청년들에게 주문할 것이 아니라 변화한 현재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함께 불합리한 사회 속에서 청년들이 그들이 말하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행동할 수 있게 함께 노력해줘야 한다. 그저 주문만 한다면 ‘꼰대’라는 명칭과 세대주의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주체-주체로 함께
세대론에서 벗어나 청년을 소비하는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주체의 자리에 세우고 함께 노력해나가야 한단 책의 결론은 매우 바람직하나 보도자료, 언론의 프레이밍에 주안점이 맞춰져 구체적인 현실과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점, 더불어 책의 특징상 시의성이 다소 부족해 2020년 현재를 담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청년당사자운동과 같이 청년 활동에 관한 언급이 자세하나 책에서 주장했듯이 청년 문제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닌 만큼 그들만의 그라운드에서만 존재하기보다 사회 전체가 공유하고 청년과 기성세대 주도권자들과 함께 순환돼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방송에서 정 진행자는 유럽 쪽에선 깜짝 놀랄만한 젊은 정치세력들이 등장하는데, 우리는 못하고 있다, 이거 청년들이 좀 나서야하는 부분 아니냐 질문한다.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를 최전선에서 낼 수 있는 건 결국 정치다. 젊은 청년 당사자의 목소리가 주류가 되고, 청년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수면 위에 끌어올리려면 주류에서 주체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주류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적극적인 청년팔이가 이뤄지고 있다.
여야 청년대변인 인터뷰 영상을 보면 정치 또한 마음만 먹고 열정으로 뛰어들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주류에 내보내는데에도 큰 벽들이 존재한다. 박성민 더불어민주당 전 청년대변인(현 최고위원)과 문성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청년 부대변인들은 모두 투잡을 뛰거나, 따로 수입을 얻지 않은 채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이 꼽은 가장 큰 어려움은 돈이 없으면 기득권과 돈 많은 정치 지망생들을 뚫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정치 고령화와 청년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경험이 줄어드는 현상이 기성세대가 외치는 청년의 ‘노오력’ 부족 때문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20년 9월 국민의힘이 당 내 당인 청년의 힘 출범예고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는 현재 10월 먼지처럼 사라지고 있다. 국민의힘 청년위원회 위원들이 청년감성에 맞췄단 B급 포스터가 논란이 되며 청년 정치인 박결이 청년위원장을 사퇴하면서다. 포스터에 쓰인 표현들이 굉장히 미숙하나 당 내부에서 오히려 이들을 극우로 몰며 벼랑끝으로 내몰았다. 박결 전 위원장은 청년위원회는 당 상설기구지만 재정지원도 사무실도 없었다며 일을 하는 청년들이 자기 시간과 비용을 들여 당을 발판 삼아 청년들의 보수 목소리를 담으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 사건에 관해 김종인 비대위장은 인물이 없고, 청년들에게 새로움과 파이팅이 없다고 질책했다. 잘잘못의 판단도 무시해선 안되지만 이 발언에서 풍기는 ‘요즘 젋은이들은 노오력을 안한다.’의 뉘앙스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ibosik/2020/10/19/QKBUOPAC3VAS5BCXD2MQ74PVJY/
진보 진영의 기득권층인 86세대의 논리도 청년들을 포용하는데 역부족이다. 청년세대 핫이슈인 ‘공정’을 통해 역시 허공에 청년팔이를 시도할 뿐이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진보진영의) 기성세대는 사회적 연대, 평화통일과 같은 자신들의 가치를 지나치게 강요하는데 청년들이 이에 호응하지 않으면 ’경쟁에 익숙하고 보수적인 집단‘이라 매도한다.’고 답했다. 민주화, 다원화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태어난 이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합리적 판단을 내리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내 쓴소리를 일삼는 젊은 정치인들에게 역으로 거센 비판과 윽박, 댓글테러 등으로 현실화되며 집단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청년층의 주요 이슈인 공정에 관해 정치권에 반영될 공간이 부족한 건 현실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많은 정치인이 청년들이 우리에게 일관된 요청을 하지 않는다, 이기적이다’ 라고 한다며 기성 정치세력이 청년을 유의미한 유권자 집단이라 보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과연 주류에서 젊은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2714370004820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092714260002704
https://www.fnnews.com/news/202006221841114610
‘같이 노오력’의 패러다임
지금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기성세대들이 어림잡아 내놓는 뜬구름잡는 청년 정책이 아니라 청년들의 정치, 즉 메시지 전달일 것이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그룹짓기보다 하나의 사회문제이자 사회의 독립된 주체로 상정하고 이들이 힘을 가져 기성 정치인들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과 기반적인 지원을 제공해야한다. 이는 단순히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에게도 더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는 로드맵으로 작용할 수 있다. 청년세대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지는 첫 번째 세대’인데, (역시 기성세대의 대상화 관점에서의 해석이다) 파이낸셜뉴스외 3개의 단체가 공동으로 진행한 ‘20대가 생각하는 한국경제’ 설문조사에서 ‘본인은 부모세대보다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77%가 ‘있다’고 답한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이 또한 하나의 일반화가 될 수 있지만 청년들은 기성세대의 언어처럼 무기력하거나 의지가 없는 청년만 있는 건 아니란 걸 보여준다. 행복한 미래를 위해 오늘도 파이팅하고 있는 청년들도 많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과 글로벌리서치의 청년세대, 기성세대의 가치관 비교 설문조사를 보면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에 비교할 때 연대, 협력보다는 경쟁, 자율을 우선시하고 경제적성취보단 삶의 질에 가치를 둔다. 사회 변화에 따른 가치관 변화를 자신들과 다르다고 매도해선 안 된다. 이젠 기성세대의 입맛에 맞게 청년들이란 단어를 요리조리 굴려 파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에 맞게 살아온 시대의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함께 해나가야한다. ‘같이 노오력’의 패러다임의 시작은 일방적으로 젊은이에게 노오력을 주문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