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는 날의 무늬에 대하여

감정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다정한 안부

by 결 디자이너

감정이 느껴지지 않을 때조차도 존재를 기록할 수 있다는 다정한 선언

놀랍도록 다정한 철학,

감정이 없다는 말마저 감정으로 받아들여주는 세계,

당신이 지금 그 문을 열고 있어요.


감정이 없어지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말할 감정도, 꺼낼 말도 없던 날,

내 손끝에 남은 건 미세한 질감 하나였습니다.

감정은 사라져도, 그 결은 남더군요.

이 글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날의 기록이며,

그럼에도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고립 은둔 청년들을 위한 <감정결 도감> 일부를 브런치에 올립니다.



마음은 실로 짜여있다.




감정이 사라졌던 하루, 그 손끝에 남은 결 하나

어떤 날은, 마음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언가 속상한 것도 아닌데
몸 안 어딘가가 아주 천천히 비워지는 느낌.
말하자면, 그날의 나는
잘 접힌 흰 종이 한 장 같았다.


사람들은 그런 날을 공허하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그보단 ‘말없이 숨 쉬는 상태’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숨은 쉬지만 살아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하지만 분명히 사라지지도 않은 상태.
그럴 땐 감정이 아니라, 손끝이 먼저 반응했다.


창틀에 손을 얹었다.
살짝 미끄러지고, 다시 닿는
바스락거리는 먼지의 결.
그 촉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마치 감정은 없는데,
마음은 그 결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아무 표정을 짓지 않았고

어떤 말도 마음에 머물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후가 지나고,
저녁이 깊어질 즈음
내 안에 조용한 결 하나가 남아 있었다.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하루를 살진 않았지만,
살다 보니 남는 게 있더라.
바람에 날린 커튼의 움직임,
손가락으로 종이 귀퉁이를 만지던 습관,
창밖의 노란 불빛 같은 것들.

감정이 없던 하루에도
몸은 그 하루를 받아 적고 있었다.


말없이, 색 없이,
그저 무늬 하나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문장들도
사실은 그때의 감정이 아니라
그때의 감각을 더듬는 일이다.
무게 없는 하루를 무늬로 남겨보는 일.

그날 나는 살아 있었다.
그저 조금 말이 없었을 뿐이다.


“감정이 없던 날에도,
마음은 무늬를 남긴다.”



감정 없는 오늘이 당신에게도 있었다면
이 질문을 조용히 따라 해 보세요.


오늘 내 마음은 무슨 색이었나요?

손끝에 남은 감정이 있다면, 어떤 질감인가요?



말하지 않고 남기고 싶은 무늬 하나,
지금 그려보셔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