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까지는 무엇을 하며 살지가 최대 고민이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어떻게 사는게 잘 사는 걸까 고민을 시작했다.
지금 오십을 바라보며 직업이라는 것에 대해 완전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지 고민할 때 , 누구와 어떻게 고민을 털어놔야 할지 막막했다.
너무 다른 삶이 되어 버린 마흔 후반의 친구들은
각자의 주어진 삶이 너무나 달랐고 고민의 주제도 달랐다.
고민을 털어놓는다기보다는 같이 해결해나갈 수 있는 동역자가 필요했다.
나는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했다.
직업은 목적이 아니라 사명을 담는 그릇이다.
다만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보다 “주님, 무엇을 통해 주의 뜻을 드러낼까요?”로 질문이 바뀔 때,
그 길이 보인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마 7:7)
이 말씀의 본질은 ‘소유를 얻으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구함으로 마음이 변하라’는 초대이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요?” →
“내 안의 은사와 열정이 그분의 형상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요?”
“안정적인 삶을 원해요.” →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명을 품고 싶어요.”
“하나님, 저에게 맞는 일을 주세요.” →
“하나님, 저를 통해 하고 싶은 일을 알려주세요.”
그 일을 통해 나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고 있는가?
Calling (부르심) –
그 일이 내 안의 은사를 하나님 나라의 목적과 연결시키는가?
Contribution (헌신) –
그 일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이 더 풍성해지는가?
이 세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
‘하나님이 여시는 문’이다.
“하나님, 제가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하소서.
직업이 사명을 삼키지 않게 하시고,
예술로 사람들의 마음이 새로워지게 하소서.”
예술로 사람들의 ‘형상을 새롭게 짜는 일’,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