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날들에 대하여

2025. 8월의 서랍에서 꺼낸 글

by 결 디자이너



2025년 8월 브런치 서랍에서 쓰다만 글을 발견했다.

철학이 물성이 되는 것에 대한 글들이 여기저기 휴지처럼 발견된다.

2025년 12월 1일 이 글을 다시 오늘의 시점에서 다듬으며 이 애틋했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불안을 다시 새로운 질문으로 바꾸면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의미로 바뀐다는 것을,

내가 지금 물성을 만들고 있을거라고는 8월엔 상상도 못했지.


나에 대한 지식으로 가르치기 보다 창업자 스스로 자기다움과 삶의 이유를 발견하도록 돕는 공간을 갖고 싶었다. 3년전 권민대표님과 진행하는 자기다움의 프로젝트가 처음엔 나도 설레었고, 기도처럼 간직하며 3년을 걸어왔다.

쓰임, 창조, 성장. 이 세 가지가 나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믿었고 변하지 않는 가치라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정작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결과를 말하라면 보여줄 물건도, 겉으로 드러나는 업적도 아직 없다.
내 마음의 속도와 현실의 시간은 늘 엇박자였고, 무형의 작업만 쌓이는 듯한 날이 많았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고개를 든다.
“나는 철학 타령만 하는 사람일까?
자기다움을 외치기만 하는 메뚜기 강사 같을까?”
리랜서라는 이름 아래 흔들리는 불안을 나는 어떻게 견뎌야 할까.

나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이 질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건드린다.


그런데, 질문을 바꿔보면 어떨까.

“나는 왜 아직 아무것도 못 했지?”
이 질문 대신 “지금까지 내가 지켜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멈춰 선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나는 늘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감정의 결을 읽고, 어린아이들의 세계에서 배웠고,
누군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 색을 연구하고, 드로잉을 붙잡고,
내 언어를 찾기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이건 결과가 아니라 흐름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메뚜기 같을까?” 이 질문 대신
“내가 뛰어오른 곳들 사이에는 어떤 연결이 있을까?”

돌아보면, 나는 많은 현장을 지나왔다.

감정의 숲, 마음의 실험실, 기억의 의상실, 컬러다이어리, 감정결어, 디깅 플랫폼,
엄마는 크레용구급사,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책들까지.

여기저기 흩어진 것처럼 보였던 점프들은 사실 모두 “나라는 사람의 언어”를 찾아온 여정이었다.


“나는 무엇이 문제인가?” 이 질문도 이렇게 바뀐다.
“나는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는가?”

너무도 간단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질문이다.

지금의 나는 ‘멈춤’이 아니라 다음 결을 세우기 직전의 고요 속에 있다.
창조 직전의 정적, 방향이 바뀌기 직전의 숨 고르기,

오래 걸어온 사람이 잠시 굽어보는 시간. 나는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는 아직 되기 위해 계속 살아가는 중이다.


이 길을 선택한 것도, 흔들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도,
누군가에게 작은 색 하나라도 건네고 싶었던 마음도 모두 나의 결을 이루는 조각들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겉으로 보이지 않더라도,
내가 정성껏 건넨 철학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색으로 남아 있을지 모른다.

나는 지금 문제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다음 모양으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전환기의 흔들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이렇게 말해본다.

나는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쓰임과 창조와 성장을 향해
내 결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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