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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 디자이너 Jan 27. 2021

내 삶에서 직업이 자리하는 위치.

새롭게, 또 다르게 바라보는 일의 중요성


면접 때 반짝반짝 생기 있던 신입 소재 디자이너가 입사하고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에 생기는 없어지고 마음도 숭숭 구멍 나고 거칠어지는 듯하다. 내가 심사숙고해서 뽑아 잘 키우고 싶었던 신입 디자이너가 8개월 만에 "이 일이 내일이 아닌 것 같아요. "하고 퇴사 선언을 했다.


힘들게  취업을 했는데,  분명 소재 디자이너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서 공들여 뽑은 건데 첫 회사의 적응이 왜 이렇게 어려웠을까 생각해 봤다.

내 결론은 제대로 직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입사를 하면 직무 트러블이 올라오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의 트러블의 흑 역사도 브랜드를 처음 입사를 하고 시작이 된다.

의류학과를 복수 전공으로 졸업하고 컨버터를 거쳐 27살에 처음 브랜드 대기업에 취업을 했는데 작은 회사인 컨버터의 친밀한 분위기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브랜드의 소재 막내 디자이너의 일은 소재를 본다기보다는 샘플 챙기기, 메인 핸들링이 주요 업무였고 혹시나 원단이 바뀌어 디자이너에게 전달되거나 늦어지면 안 되는 델리에 압박이 많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왜 그렇게 긴장했을까 되돌아 생각해보니 나는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고 브랜드의 직무를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분위기 좋은 작은 회사에서 우쭈쭈 대접(?) 받으며 일하다가 막상 대기업에 들어오니 나는 너무 작은 존재였고 막내로서 제 역할을 빨리빨리 쳐내 주는 것이 중요했다. 왜 자꾸 스타일 디자이너 언니들이 원단을 두세 번씩 신청하는지, 발주서를 쓸 때 QC도 같이 신청하면 좋다는 것인지, 왜 막내는 방긋방긋 웃는 게 좋은 것인지.


무슨 의미의 일인지 알고 시작하는 것과 전혀 내가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고 시작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나의 존재가치를 그렇게 작게 스스로 생각해 버리니 내성적인 나는  마음을 열지 못하고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지 못했다. 아마 그 당시 누군가가 나를 일깨워주려고는 했을 것이다. 다만 내 눈과 귀가 무감각했다.


실장님뿐만 아니라 디자인실 언니들, 회사 사람들의  시선을 따뜻하게 느끼지 못하고 매서운 눈초리로 느꼈던 것 같다.  나의 얼굴엔 그늘진 미소가, 나의 마음은 수증기의 물처럼  응결되어 흘러내렸다.



        누구에게나  
한데 엉키어 뭉쳐서
응결하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요?



회사와 나. 같이 일하는 팀원들의 온도차는 응결되어 물방울이 된다.





의류학과를 졸업했으니 전공에 맞는 전문직으로 가고 싶다, '나는 소재 디자이너를 해야지 ' 그 이상을 생각하지 못했다. 졸업하면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니 직업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 나에게는 일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찾으라'라는 말은 전공에 잘 맞는 직업을  고르는 것인 줄만 알았다.


'왜 하고 싶을까?' 이런 질문은 그 당시 너무 황당스럽고 사치스러운 질문이었다.


27살 때 가 제일 안타까운 부분이 이 부분이다. 그리고 더 과거로 돌아가면 시키는 대로 중고등 시절 내내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성적에 맞춰 가정관리학과로 입학한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뭐가 하고 싶은지 몰랐고 어떻게 그것을 찾아 나가는 건지 몰랐다. 그때의 70년생 교육이 다 그랬을까. 나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


지금의 교육과 시대 환경은 그때와는 매우 달라졌다. 중학생이 딸을 키우고 있지만 진로검사, 적성검사 표도 나눠서 준다. 하지만 이 표로 내가 하고 싶은 일, 원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기보다는 검사도구에 불과하다. 이 표를 가지고 진지하게 대화를 해주는 어른도 없고 종이만 날아온다.


그 직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있을까?


회사에서 신입사원 직무 교육을 해주는 곳은 정말 훌륭한 회사이다.

그러지 않는다면 스스로 나와 회사의 온도차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신입사원이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회사에 적응 못하는 것이 꼭 나의 성격 탓만은 아니다. 신입사원에게  그 회사의 비전, 목표를 심어주고 공유하고 교육하는 문화가 있어야 하는데 웬만한 대기업 몇 군데 빼고는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직접 알아보고 들어가야 한다. 후배들에게  그 회사와 나와 맞는지, 회사의 비전, 목표를 꼭 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나는 어떤 비전과 목표를 갖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단 한장의 인생설계도>

                           



인생의 설계도를 먼저 그리고 사회생활의 첫출발을 해야 하는데  졸업과 동시에 우리는 너무 해진다. 내 삶에서 직업이 자리하는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이다.


돈벌이로서의 직업

나는 전공에 맞는 직업을 찾아 돈벌이로 시작했으니 실수를 하거나 실장님한테 혼날 때마다  '돈값을 못한다'라는 나란 사람에 대한 자존감은 바닥을 찍었다. '왜 이것밖에 안되지~~' 나는 너무 완벽하고 싶었다.


한 번은 동대문 시장에 가서 스와치를 쫙 수거해오라고 임무가 주어졌다. 아침 10시에 나가서 동대문을 2층부터 4층까지 우리 브랜드에 필요할 만한 스와치를 꼼꼼히 수거했다. 동대문시장은 매일 다니던 곳이니 자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낑낑 봉지를 끌고 들어왔는데 나는 '고생했네. ' 칭찬받을 줄 알았다.


" 야, 지금이 몇 시냐? "


시간을 보니 4시였다.

보통 10시에 나가면 2시 정도에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냐며 실장님이 소리를 치셨다. 너무 꼼꼼히 본 나머지 시간이 그렇게 흐른지도 모르고 몰입(?) 해서 스와치를 수거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2시에 들어오라고 하시지,,,'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대로 얼음이 되어 아무 말도 못 했다. 나는 꼼꼼하고 완벽하고 싶었던 것인데 실장님 입장에서는 미련 곰탱이처럼 보인 게 아닐까 지레짐작하고 나는 또 자존감의 바닥을 찍었다.  


나는 잘할 줄 알았다. 초심자로서 배우려는 자세가 아니라 실패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려웠다. 실수할 때마다   "쟤 뭐야?' 하는 눈초리로만 느껴졌던 것이다.  는 지금도  '야'라고 부르는 걸 매우 싫어한다.


내가 후배들에게 말하는 신입의 역량 중에 '실패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갖기 '라는 말은 사실은 나의 흑 역사에서 나온 깨우침이다. 신입 디자이너가 업무를 받을 때는 왜 이 일을 하고, 상사가  원하는 결과물과 기간에 대해 반드시  짚고  일을 해야 한다.


텍스타일 분야의 신입 디자이너와 경력 디자이너에 대한 연구를 보면 신입 디자이너는 시각적인 면에만 집중하고 아이디어를 직조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인 제작 측면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 디자이너의 일과 생각


신입은 당연히 보는 안목이 좁을 수밖에 없고 그걸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막내를 우쭈쭈 하며 일을 가르쳐주진 않기 때문에 내가 스스로 간의 크기를 키워야 한다.

더 큰 맥락을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그 본질을 알았더라면....



경력으로서의 직업

그렇게 신입의 흑역사는 계속되고 빨리 팀장을 목표로 경력을 쌓기  위한 열망으로 일에 접근하게 된다. 팀장을 빨리 달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었다. 나에겐 터치받기 싫어하고 자율성이 몹시 중요한 사람이란 걸 스스로 깨달았던 모양이다. 5년 만에 팀장이 되고 열심히 달린다. 겉 테두리만 화려해 보이는 속 빈 강정이다.


어떻게 되었을까?


둘째를 임신하고 안면마비에 걸린다.

찬바람이 쌩하니 불던 밤에 창문을 열었는데 몸이 으스스하다. 그리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입가와 눈가가 떨리고 이상한 것이다. 신경 쓰지 않고 일하다가 둘째 날 뭔가 얼굴이 당긴다, 입가에 힘이 안 들어간다 싶어 신다. 그래도 그냥 일한다.

셋째 날, 입은 내 맘대로 안 움직여지고 눈 깜박이는 게 힘들다. 이상하네, 괜찮아지겠지, 그리고 일한다.


넷째 날, 나의 얼굴은 나와 가정을 돌보지 않고 일에 대한 책임감과 아픈 인내심으로  응결되어 있었다.  


그래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그 신호를 못 알아차린다.

회사를 그만두고 쉴 법도 했는데 경력단절이 두렵고 아무것도 안 하는 나를 바로 볼 수 없었다. 임신한 배를 붙잡고 약도 못 먹고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한 달을 고생했다.


고생을 해도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한 보람이라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경력을 위한 일을 했던 것이다.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일이 되어 있었다.


후배들에게 고생을 보지 말고 가능성을 보라고 얘기하는 것은 더 큰 너의 목적을 보라는 것이다.  깨어있는 상태로 나를 봐야한다.

쓰임이 견딤을 결정한다는 말은 무조건 견디라는 것이 아니다.

대장장이가  무엇을 위해 칼을 가느냐고 묻는 것이다.



성취로서의 직업

나의 일에 대한 강력한 열정과 성취감은 팀장이 되고 몇몇의 좋은 디렉터를 만나며 그분들이  힘들게 소재를 고르게 하고 싶지 않다에서 시작이 된다.

그럼으로써 나는 일을 통해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것을 나 혼자 찾지는 못했다.


이곳에서 발화가 된다.


"강점이 뭐야?"


실장이 되고 회사일로 순조롭게 돌아가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자꾸 갑갑했다. 계속 이렇게 사는 게 맞나? 그때에 루다 코치의 강점 코칭을 통해 나의 강점이라는 것을 처음 생각해 보게 된다.

그다음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건 진짜 무엇일까?"를 따라간다.


소재 디자이너로서 일하는 것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좁게는 디렉터, 넓게는 소비자들)  좋은 사람들과 협업하고 발굴하고 연결한다는 것이 나에게 중요한 가치임을 깨닫게 된다. 소재 디자이너만의 철학이 있다면 숨겨진 보물을 찾는 탐험가이자, 인생의 날실과 씨실을 짜는 창조적인 예술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직업에 철학이 생기니 삶에 활력이 생겼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이 질문을 진지하게 20대 때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흔에 직업의 의미를 찾는 일을 시작하다니.


소재 디자이너 직무의 본질을 이해하고 꾸준히 초보자에서 전문가로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만난 패션 업게 취업생들을 위한 직무 부트 캠프를 이미 계획된 나의 일처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꼭 해야 할 일을 만나는 것처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임하는 것이 나의 결을 따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필요로 하는 곳에서 능력을 발휘해 주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쓰임 받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다.







당신을 통해 표현되고자  하는 창조적인 에너지가 있음을 기억하세요.
당신의 작품이나 자신을 쉽게 재단하지 마세요
-아티스트 웨이. 줄리아 카메론


소명으로서의 직업

성취로서의 직업과 소명으로서의 직업 어딘가 중간쯤 내가 서 있는 것 같다. 신입이던 팀장이던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대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일을 한다.

한낱 신입 소재디자이너 막내에게도 직업에 대한.삶에 대한 이해는 이토록 중요하다

예전엔 몰랐다.


지금은 내가 진정하고 싶은 게 뭘까? 그 질문만을  붙잡고 가진 않는다.  

나의 강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디일까

작은 수직을 짜보며 만들어 보고 있다. 수직들이 모이면 자신있게 개발을 한번 던져보려고 한다.


*수직 : 소재 개발할 때 A4만 한 크기로 미리 짜보는 것


그저 6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바라봤을 때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 세상을 떠날 때 내가 지금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 것인가? 를 생각한다.


새롭게, 또 다르게 바라보는 일의 중요성




엉키고 뭉쳐서 응결하는 순간과  아름다운 눈의 결이 되는 순간



그 순간들을 경험하기 이전과 이후 삶의 온도차를 느낀다. 그 온도차가 그려낸 결들을 천천히 만져본다. -2012 서울 국제 뉴미디어 페스티벌 상영작, 결 condensation 차미혜


삶의 온도차가 나는 어떤 결이든 의미와 가치를 두면 나의 아름다운 무늬가 된다.

특히나 20대는 흘러내리는 응결의 의미를 찾는 시기여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와 가치를 계속 생각하며 일을 한다면 온도차는 극복할 수 있다. 벽돌공이 벽돌을 나르는 사람이 아니라 큰 성전을 짓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견딤을 생각해야 한다.


내 삶에서 직업이 자리하는 위치.

올바른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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