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함께

섞어 쓰기 좋은 삶의 도구 중 하나

by 결 디자이너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깝게 살아가기 위해 약간의 도움을 받은 것이 있다면 ‘술’이다. 일종의 윤활유와 같이 내 삶에 마찰이 생길 때 그 맞닿은 부분이 얼지 않게 해 주었던 삶의 도구라 할 수 있다. 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생활, 엄마로서 나의 성장기 안에서 술을 적당히 섞으며 막힌 곳을 뚫어주기도 하고 감정의 순환이 잘 되게 해주기도 했다. 술을 딱히 좋아한다라고 말하기는 그렇다. 좋은 사람들이랑 좋은 분위기에 마셨을 때야 좋지만 나쁜 상황에서 마실 때는 원망스럽고 답답한 마음은 술로 해결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족하면 인간미가 없고 넘치면 독이 되는 술이기에 삶의 마찰을 덜기 위해 섞어 쓰는 정도로 애용하기 좋다.


술을 처음 먹었던 것은 고 3 때이다. 학교 앞 독서실에 종일권을 끊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집으로 가지 않고 바로 독서실로 갔다. 엉덩이의 힘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데 집중력이 없었던 것인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서 답답해했다. 수능 즈음에 긴장이 많이 되었는지 독서실을 같이 다니는 친구와 이름 모를 맥주캔을 사서 독서실 옥상으로 가서 한 모금 마셨다. 그때의 맥주 한 모금의 톡 쏘는 알싸함은 불안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맛이었다. 친구랑 나는 몇 모금도 채 다 마시지 못하고 피식 웃으며 다시 내려왔다. 어디로든 튀고 싶지만 용기도 없었고 술 한 모금이 내가 원하는 대로 변화시켜주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챘다. 그런 잠시 잠깐의 일탈은 적당히 내 마음을 취하게 했고 뭔가 그 순간 자유를 누렸다는 판타지를 심어주었다.


입시를 탈출해 성인이 된 자유의 상징은 대학 캠퍼스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나는 대학교만 가면 내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열정은 가득해서 사람도 많이 만나고 뭐든지 하고 싶어 했는데 마음과는 달리 낯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술자리는 마다하지 않았고 항상 조용히 마시는 편이었다.


타고난 내향적 성격은 술이 취해도 잘 바뀌지 않았다. 나는 술 마시면 오히려 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스타일이다. 아마도 어색한 관계에서 마음을 내놓지 못하고 긴장을 하며 먹어서 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내향적인 성격에 불만을 품고 있던 반면 동아리 선배였던 신랑은 내가 대책 있게 술 마시는 스타일이었다고 기억했다. 조용하고 의리가 있고 낄낄 빠빠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말은 없는데 해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보여 주는 쪼끄매서 귀여운 후배였다고 말한다. 타인의 눈을 통해 나를 발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소주부터 맥주, 막걸리를 섭렵하며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나를 그 관계 속으로 밀어 넣어 주었던 것이 술이다. 영하의 온도에서도 얼지 않게 해주는 냉동 윤활유처럼,


소주 같은 사람, 맥주 같은 사람, 막걸리 같은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며 물타기를 했던 것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는 ‘나’라는 사람보다 ‘관계 속에 속해 있는 나’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어디에 속해야 하나. 어떤 인연을 만나야 하며 나쁜 인연은 피하고 싶고...' 이런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겹쳐있던 시기였다.


회사를 다니면서는 양주를 처음 먹었는데 그 휘발유 같은 냄새부터 나에게 참 맞지 않았다. 나는 유흥만을 위한 회식을 참 싫어했다. 술주정, 술냄새가 싫기도 했지만 그 분위기에 푹 빠져 잘 놀지 못하기에 존재감 없이 인식되는 것도 싫었다. 가끔 술에 의지해서라도 나를 깨고 실컷 놀았으면 할 때가 있었다. 팀장 때였는데 모처럼만에 팀워크가 잘 맞는 실장님, 부장님을 만나 디자인실의 분위기가 한껏 좋았던 때이다. 사장님을 회동하여 회식을 하고 2차로 룸을 빌려 단란주점 같은 곳을 갔다. 너나 할 것 없이 다 나와서 춤을 추고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 앉아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도 민망해서 박수를 치며 나왔더니 사람들이 나를 앞으로 밀었다.. ‘나는 왜 이렇게 분위기에 취해 못 놀까... 그냥 확 놀아봐~지르라고~‘ 내 속에서는 이렇게 외쳤다. 전 회사에서 잘 노는 디자이너가 술상에 올라가서 놀던 임팩트 있던 모습이 떠오르며 난 소파에 올라가 펄쩍펄쩍 뛰고 술상에 다리 하나를 걸치고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탔다. 키가 작으니 소파에 올라가나 술상에 올라가나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사장님은 그런 나를 보고 놀라 자빠질 뻔 “정 팀장 아주 잘 놀아!!!” “팀장님 완전 춤 귀엽게 잘 춰요~~”


그다음 날 회사에서는 나의 그런 획기적인 모습이 두고두고 회자되며 일할 땐 일하고 진상 안 부리고 잘 노는 팀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사회생활의 한 끗은 이런 건가! 놀라 자빠질뻔한 용기 엔진을 작동시키는 윤활유로서의 술값을 톡톡히 치렀다.


인간관계에서 이 용기 엔진을 가동하기 위해 얼마나 시동을 오래 걸었는지. 휘청거려도 창피함 보다는 어색한 관계의 벽을 뚫은 것 같은 시원함을 맛본 후 항상 꼿꼿하게 서있어야 나를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은 다시 재정의가 되었다. 사회에 나와 호랑이한테 물려가는 것도 아닌데 실수하지 않으려고 바짝 정신 차렸구나. 첫인상이 차갑다는 얘기는 외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그 뒤로 회사 생활을 하며 그런 도전적인 회식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오히려 나는 호기심 있었던 스윙댄스 동아리에 가입을 하며 끼(?)를 발산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신사동 어묵 바에서는 와인을, 용산 투다리에서는 청하를 마시며 작은 만남을 더 즐길 수 있었다. 실수를 해도 안도할 수 있는 공간을 자연스럽게 찾은 건 아닐까.


행복한 인간관계의 비결에 대해 <인간 본성의 법칙>을 쓴 로버트 그린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그냥 존재하고 모두 제각각이고 삶을 풍부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존재일 뿐이다. 사람들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면 저항하거나 바꾸려 들지 말고 연구 대상으로 삼아라.’


같은 동네에 살던 회사 친구와는 따뜻한 사케를 마시며 친해졌다. 퇴근길에 묻거나 따지지 않고 '거기서 만나' 하면 동네 이자카야에서 만났다. 하는 일도 비슷하고 같은 나이 딸을 키우며 서로의 마음과 시간을 내주며 이야기를 나눈 친구이다. 술이 따뜻할 수 있다는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은 밥 먹을 때나 맥주 한잔, 와인 한잔 정도, 한주의 수고, 하루의 수고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마신다. 내가 흑맥주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고, 가볍게 먹고 싶을 때는 달달한 과일 맥주를 고른다는 것, 저녁을 혼자 먹게 될 때는 첫맛은 달고 뒷맛은 씁쓸한 와인에 손이 간다는 것. 마음에 따라 다양하게 손이 가는 술처럼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 모습이지 않을까 한다.


사람들을 만나며 속상하고 좌절하는 일 역시 인간관계의 일부이다. 관계를 두려워하거나 겁내어 뻑뻑하게 두지 말고 잘 맞는 윤활유를 이용해 부드럽게 섞어 본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타이밍이 있다


'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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