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보물을 찾는 능력
<쓰기의 나날>이 던져준 질문을 주제로 2021년 감정들 속에서 ‘올해의 기쁨’을 생각해 본다. 이렇게 2021년을 잘 마무리하는 보물을 찾겠다는 심정으로 이리저리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일주일이 넘게 ‘2021년 기쁨’이 떠오르지 않는다. 글을 써야 하는데 글이 안 써진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내가 노트북을 켤 엄두도 안 내고 있다는 것.
‘기쁨’이라는 감정의 선을 못 잡고 있다. 왜? 2021년 나에게 하나도 기쁨이 없었던 거야? 기쁨이 뭐였지? 급기야 네이버 검색에 이른다. 기쁨이란 ‘욕구가 충족되어 마음이 흐뭇하고 흡족하다 ‘라고 한다. 기쁨조차 내 힘대로 꺼내어 쓸 수 없다니~~~ 다운된 기분에서는 기쁨의 단서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다운된 기분이 모든 감정을 서랍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는다. 어떤 감정인지도 모를 기분 나쁜 우울감으로 깊이 가라앉는다. 뭐가 잘못되었다는 신호이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이 기분은 며칠 전에 1년 전 퇴사한 회사에서 전화가 온 것이 화근이었다. 연봉을 올려주며 파격적인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 “네가 필요하니 다시 와라. 시부모님도 이제 간호할 일도 없고 일해야지. 너만 한 사람이 없다.” 이런 호의적인 말을 했다.
주변 지인들은 이런 좋은 기회가 왔는데 다시 가면 되지 배부른 소릴 한다고, 남편이 돈을 벌고 있으니 아직 사회의 쓴 맛을 못 봤다고 나무란다.
“1년 놀아보니 어때? 너 생각대로 안되지? 월급 따박따박 모아서 종잣돈 먼저 만들어 주말에 네가 하고 싶은 것 하고...”
“회사에 다시 들어간다 해도 내가 일할 수 있는 것이 몇 년 되겠어요. 그때 또 나의 평생 일에 대해 고민할 것을 지금 확실히 정하는 게 낫죠. 어렵게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다니!!!”
“다시 너를 찾아주는 게 쉬운 일이냐? 이건 기회야. 평생 일이 어딨냐? 일할 수 있을 때 일하면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진짜 뭔지 기회를 찾아봐. 주말에 네가 하고 싶은 일 해볼 수 있잖아. 당장 돈은 벌어야지. 돈 벌면서 천천히 네가 하고 싶은 거로 경력을 만들어.”
“....... 그렇죠..... 내가 쓰임 받는 곳으로 인도해달라고 기도했죠.”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시부모님 장례 다 끝나고 좀 정리가 되니까 다시 부른 거라고. 회사에서 너의 능력을 펼치라고. 이건 기회야!!”
“........ 그렇죠......”
나는 말끝을 흐린다. 내가 회사를 가지 말아야 할 이렇다 할 논리와 반박의 말도 없이 나는 KO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심지어 회사를 다시 나가면 더 일을 잘할 수 있는 계획이 머리에 그려졌다. 내 안에 있던 뭔지 모를 심지가 푹 꺼져버렸다.
유일한 한 분, 나의 신앙 멘토님만이 다른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렵게 결정한 것을 돌이킬 만한 이유가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물질을 두고 생각하면 안 된다. 네 마음을 알게 될 때까지 ,
그런데 사실 확실한 근거를 찾기 힘들 거고 '믿음'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
나는 대표님께 이런 카톡을 보냈다.
“주말 내내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집안의 여러 가지 사정상 당장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시간과 돈을 어떻게 현명하게 관리하느냐 중요한 시점임을 대표님 조언을 듣고 또 고민했습니다.
엄마로서의 삶과 동시에 스스로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는 삶을 꿈꾸면서도 지금의 우선순위는 가정의 안정인 것 같아요. 아이들도 곧 방학인데 소중한 분들의 부재로 저희 가정이 지금은 일상의 재정비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방학이 지나고 한숨이 넘어가야 그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아주 모호한 답변인 걸 알지만 내 마음이 아직 모호하다. 아이들의 방학, 일상의 재정비 이런 건 다 핑곗거리일 수 있다. 진짜 잡고 싶은 기회라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다시 하고 싶었을 것이다. 대표님은 회의 중이라며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했지만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다.
애매한 카톡을 보내고 나는 한심한 기분으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기회를 놓친 것일 수도 있고 기회를 분별 못 하는 바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어쩌나... 나는 단순히 이직하고 연봉을 올리려고 회사를 관둔 것이 아니다. 나의 잠재력을 깨우는 일, 힘들어도 영혼을 맑게 하는 나의 일을 찾고 싶어서였다. 그런 일이 있을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날도 어느 누구에게 감사의 카드 한 장 건네지 못하고 지나갔다. 진동벨이 울리는 카톡들은 읽지도 않고 넘겨버렸고 아이들의 아침도 건너뛰었다. 나는 최소한의 상차림, 청소만 하고 잠만 잤다. 나의 무기력은 쉬도 때도 없이 잠으로 온다. 연말을 이렇게 KO 당한 채 실격된 마음으로 보내다니!!!!
나를 일으켜 세우는 마음으로 억지로 집안의 대규모 이동을 시작했다. 집안의 환경이라도 바뀌면 새로운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런데 신랑이 도와주질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구도가 이상하다며~~
"책상을 거실 가운데로 옮기자~. 집에 들어서면 가족이 자연스럽게 다 모일 수 있도록..."
"거실 가운데 왜 책상을 놔, 답답하지~ 이상해."
"일단 옮겨보고... 내 의도는 벽보고 나 혼자 책 읽는 게 아니라 가족이 다 같이 거실에 앉아 있으면 하는 거야."
"다시 옮길 것을 꼭 옮겨야 해??"
짜증이 섞이는 신랑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의도를 이해 못 하는 신랑에게 버럭 화를 냈다.
"하지 마 ~하지 마~~ 그럼 하지 마~아~~~~~~~"
순간 올라가는 고음에 나도 깜짝 놀랐지만 이미 식탁에서 벌어진 일.
옆에 있던 큰 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하고 있던 게임을 계속했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화장대 앞에서 거울을 보며 앉아있는데 부끄러웠다. 거기서 고음불가가 왜 나오냐고. 사실은 내 갈팡질팡하는 마음한테 소리를 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뒤로 꽉 막힌 가슴이 후련해졌으니 말이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니 가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옮겨져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신랑은 저녁을 차려주었다. 오히려 컴퓨터 공간, 밥 먹는 공간, 자는 공간, 책 읽는 공간 등 공간의 역할이 명확해지니 정리 정돈이 더 잘 되었다. 나를 충전시키는 공간을 만드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거봐. 내 말대로 하니까 좋지."
"그래. 바꾸니까 낫네."
우리는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미안하고 고마워한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들도 가구 위치를 바꾸니 다른 집에 온 것 같다고 좋아했다.
"엄마, 목소리 크면 지는거야."
큰딸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각자 방으로 들어갔던 가족은 다시 거실로 모였다.
'하지 마~~~ 하지 마~~~~'는 나를 향한 외침이다. 선택 앞에 당당하지 못하고 누구처럼 잘하지 못하는 나를 비난하고 완벽을 향해 채찍질하는 것을 그만 해라!!! 감사한 기쁨을 모르고 부족한 것에 집착하는 것을 멈춰라!!!! 마음이 고요해져야 기쁨이 나온다.
지금은 나의 어떤 확실한 삶의 철학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 확실한 건 돈의 가치만 보고 회사에 다시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퇴사 후 1년 동안 내가 선택한 크고 작은 행동들이 성공작이던 실패작이던 왠지 순리대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는 것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한번 속이 뒤집혀 깊은 바닥을 치고 오니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사랑의 가치'가 보인다. 그래서 삶은 모순이다. 결핍을 느껴야 만족을 알고, 슬픔을 느껴야 기쁨을 찾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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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북 토크에서 세계에서 150명밖에 없는 희 귀하 소아 조로증에 걸린 16살의 원기는 '가족을 행복하게 꾸려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학장님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냥 제 생각에는 감정이 풍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맨날 행복한 게 아니라 어쩔 때는 싸우기도 하고 어쩔 때는 화내기도 하고
또 울기도 하고 많이 웃기도 하고 감정을 골고루 표현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감정을 꾹 닫고 내가 만든 그림자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기쁨, 슬픔, 화남, 이런 저런 감정들을 다 보여주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다. 나는 지금 '행복한 삶'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싶은 것 같다. 학장님의 질문이 눈에 들어온 걸 보면 말이다.
감정을 서랍 열고 닫듯이 자유롭게 꺼내쓸 줄 아는 능력이 삶의 보물을 찾는 능력이다.
글이 안 써진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글을 쓰려면 깊이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2021년 올해 나의 기쁨은 '좋은 인연'을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던 것이 이루어졌다. 내가 힘들 때 세상과는 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실장님을 나의 인생 멘토로 모셨다. 스물여섯에 만난 그렇게 무서웠던 첫 직장 상사가 나의 인생 멘토가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오늘 마음이 흐뭇해졌다.
좋은 인연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지금은 더 타오르지 않아도 된다고 글로 마음을 나누어 주었던 밍블님, 계속 기록해주어서 감사하다는 나날님 덕분에 글로 위로를 받으며 계속 쓸 수 있었던 것은 안비밀이다. 쓰기의 나날이 내년엔 없어진다니 서운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