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음
"번쩍"
엄청난 굉음에 깜짝 놀라 눈을 떠보면 힘을 잔뜩 준 나의 눈이 부끄러울 정도로 내 방은 조용하다. 눈을 뜨는 순간 지난밤 꿈을 오늘도 역시나 아무 대책 없이 날려버리고 나는 혹시라도 누가 볼까 불안해하며 서둘러 눈꺼풀을 들었다 내렸다 반복한다. 언젠가부터 대체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름다운 아침햇살을 내 눈의 첫 손님으로 맞는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시간 중에 가장 두려운 시간이 되었다. 있는 힘껏 백 미터를 달린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나의 심장은 방망이 질을 멈출 줄 모르고, 산을 한 반쯤까지 오른 것 마냥 숨이 차오른다. 만약 어젯밤 누군가 나와 함께 이 방에서 잠들었더라면, 그리고 내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게슴츠레 눈을 떠 나를 바라보았다면, 아마 내가 저승사자라도 본 줄 알았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어젯밤 이 방에서 혼자 잠이 들었고, 지금 이 순간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다만 문 넘어에서 들려오는 아침드라마 속 여주인공의 처절한 비명만이 이 집안에 나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이 축 늘어져서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내 모습을 잠시 비추어준 뒤 곧바로 화장실로 향했다. 씻으려고 물을 받으면서 올려다본 거울 속 나는 지난밤 한바탕 전쟁이라도 치른 듯 지쳐 보인다. 내 얼굴이 안쓰러워 더 이상 쳐다보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엄마의 얼굴을 바라본다. 우리 엄마의 얼굴은 마치 고무판을 조각칼로 쓱쓱 긁어 논 것처럼 주름이 많고 살이 없다. 참 객관적으로는 볼품없는 얼굴이지만 초롱초롱한 눈으로 티브이를 보고 있는 엄마의 얼굴은 30대의 나보다 더 생기가 흘러넘친다. 나는 아침부터 나를 알 수 없는 공포로 몰아넣은 굉음을 알람으로 삼은 이 후, 저런 생기 넘치는 얼굴을 가져본 적이 없기에 그저 부럽기만 하다.
대체 그 굉음의 정체는 무엇일까. 폭죽이 터지는 소리일까. 총소리인가? 폭탄이 터지는 소리인가? 여러 가지 추측이 내 머릿속에서 난무하여 내가 화장실에 들어온 목적을 잊어버리려는 찰나, 내 귀에 아침드라마 엔딩곡이 들려온다. 벌써 8시라는 얘기다. 늘 그랬듯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못하고 나는 모든 걸 세숫대야 속 차가운 물에 털어넣으려는듯 머리를 처박는다. 옷을 대충 걸쳐 입고 식탁에 앉았다. 식탁에는 엄마가 아침드라마가 시작할 시간에 딱 텔레비전과 얼굴을 마주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 미리 차려놓은 아침상이 있다. 아까 화장실에서 미쳐 끝내지 못한 생각을 하며 한 숟갈 한 숟갈 밥을 입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오늘 드라마의 내용이 꽤나 만족스러운 듯이 행복한 얼굴을 한 엄마가 내 맞은편에 앉아 내 이름을 부르는 통에 나는 그 굉음이 또 반복되기라도 한 듯이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사뉴익!"
"어? 왜?"
"우리 아들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나~"
"아니 뭐.. 별거 아니야"
"무슨 일인데~엄마한테 말해봐~엄마가 다 들어줄 테니까~하나밖에 없는 우리 아들 이야기를 이 엄마가 아니면 누가 들어주겠어~"
"별거 아니라니까"
"뉴익이 너...... 진짜 그러기야? 엄마 삐진다!"
소녀 같은 우리 엄마는 호기심도 감성도 풍부하셔서 본인이 궁금한 건 절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고, 혹시라도 내가 끝까지 무시하면 심사숙고 끝에 큰 맘먹고 고백했다가 단번에 차인 여고생처럼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니까.. 그게.. 엄마.. 어느 순간부터 나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려"
"소리? 무슨 소리?"
"큰소리.. 엄청나게 큰소리.. 그리고 기분 나쁜 소리.. 크고 기분 나쁜 소리.."
"크고 기분 나쁜 소리..?
"어, 뭐랄까. 총소리 같기도 하고.. 폭발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뭐 그런 소리.."
"총..... 폭발?"
"응.."
엄마의 얼굴에서 섭섭함의 그림자가 온데간데 없어지는 것을 보고 나는 내 대답이 꽤나 만족스러우셨나 보다, 하는 생각에 안도를 하고 있는데 엄마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우리 뉴익이가.. 요즘.. 고민이 있구나? 하하하.. 이번에 맡은 사건이 어렵나?"
엄마는 내 앞에서 서툴게 이야기의 화제를 돌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에 썩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아침부터 내 머리를 흔든 굉음과는 상관없이 사실 내가 요즘 맡은 사건이 골치가 아픈 것이 사실이었기에 나는 엄마의 방향에 따라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