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이유 #2

김지연

by JA

"뭐, 그렇지 뭐.. 증거 같은 게 나한테 전적으로 불리하기도 하고.."


내 직업은 변호사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 십중팔구는 나라는 사람을 내 이름으로 만나면 시답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내 직함으로 만나면 180도 태도를 바꾼다. 그렇다. 내 직업은 나라는 사람을 이 사회 속에서 무언가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내가 이 직업을 기를 쓰고 내 이름 앞에 써넣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내 직업에도 결정적인 결점이 있다. 남들은 일생에 한번 목격할까 말까 한 세상에 밑바닥을 나는 벌써 내 나이 먹은 횟수보다도 훨씬 더 많이 목격하고, 그것도 모자라 그 안에서 이겨보겠다가 항상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비극적인 사실이다.


내가 주로 맡고 있는 사건은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존속살해이다. 쉽게 말해, 자식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성별을 불문하고 자신의 부모 숨을 끊어버리면 비로소 성립되는 죄이다. 세상에, 수 세기 전에 아담과 하와를 창조했다는 창조신께서는 아마 상상도 못 하였을 사건이 지금은 나와 같은 전문 변호사가 생길 정도로 흔히 벌어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이 사건 역시 이제 겨우 내가 살아온 인생의 반밖에 살지 못한 여중생이 (참고로 내 나이 올해 30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누명(나는 변호사이기 때문에 누명이라 생각한다.)을 쓴 사건이다.


나의 의뢰인의 이름은 "김지연"이다. 아마 이런 사건에 휘말리지만 않았어도 그저 홀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착한 효녀로 남았을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얼굴도 예쁘장한 아이다.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2 주일 전쯤에 일어났다. 평소와 다름없이 지연이는 어제도 만취상태로 들어오셨을 아버지를 위해 꿀물을 드실 때에만 쓰는 유리잔에 꿀물을 한잔 타서 아버지 방에 가져다 놓고 등교를 했다. 천진난만하게 오늘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잔뜩 기대감을 갖고 학교로 향해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던 지연이와는 달리 그 시간 집에서는 아버지가 꿀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켰고 모든 걸 다 토한 상태로 사망하고 만다. 평소와 같았으면 지연이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어야 정상이었지만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날은 하필이면 지연이가 며칠 전 주문한 운동화가 배달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오지랖 넓은 택배기사는 집에 인기척은 없는 현관문이 열려 있는 것이 이상해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그 참담한 시체의 첫 목격자가 되고 말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한 순수한 택배기사는 자신이 범인으로 지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떨리는 오른쪽 손을 왼손으로 간신히 고정시켜 경찰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보존을 한다는 이유로 감식반이 오기 전까지는 현관문 밖으로 노란 줄을 걸어놓았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감식반은 아버지 시체 옆에 큰 충격을 받은 듯한, 그러니까 즉 아버지가 놓친 것으로 추정되는 깨진 유리컵 조각들을 수거하고 아버지의 토사물 또한 증거물 봉투에 담아 유유히 사라졌다.


그렇게 지연이네 집 밖에도 안에도 사람이 하나둘 씩 모여 어느새 발 디딜 틈도 없이 북적북적해지는 사이, 시간은 어느덧 흘러 흘러 3시를 가리켰고, 그 시간 지연이는 이미 도착해있던 운동화에 대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담임선생님의 눈을 피해 청소시간에 몰래 도망을 쳤다. 커져가는 기대감만큼이나 빨라지는 걸음걸이를 주체 못 하고 지연이는 거의 뛰다시피 평소보다 빠르게 집에 도착했다. 정상적인 여중생이었다면 자신의 집 앞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ㄷ르이 모여있고, 경찰도 보이고, 노란 줄까지 쳐져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불길한 마음에 주춤하겠지만 지연이는 남달랐다. 지연이가 살고 있는 집은 복합주택으로 1층에는 지연이네 가족이, 2층에는 다른 가족이 세 들어 살고 있었다. 지연이는 당연히 자신과 단둘이 사는 집에 경찰이 들락날락할만한 사건이 일어날 리 없고 평소에 2층에 살고 있는 자신보다 2살 많은 오빠가 자주 사고를 쳐 경찰서에서 그 집에 워낙 자주 드나들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오빠가 사고를 쳤겠거니 하고 별수롭지 않게 노란 줄 밑으로 기어서 집으로 들어갔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지연이의 눈에 포착된 사람은 바로 택배기사였다. 왠지 불안해 보이는 모습으로 본인의 운동화를 꼭 끌어안고 쪼그려 있는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이상했지만 일단 지연이에게 중요한 건 새 운동화였다. 너무나도 기쁜 마음으로 운동화를 받으러 택배기사에게 향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뒤에서 지연이를 붙잡았다.


"넌 누구니?"

"전 이 집에 사는 사람이에요. 아저씨는 누구예요? 우리 집에 왜 있어요?"

"네가 지연이니? 그러니까 나는..."


그냥 윗집에 오빠가 또 사고를 쳐서 왔다고 간단히 말하면 될 것을 이 경찰 아저씨가 왜 이렇게 내 앞에서 뜸을 들이는지 지연이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심지어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저씨, 제가 지금 좀 바쁘거든요? 저 택배 아저씨 보이죠? 저 아저씨가 들고 있는 게 제가 주문한 새 운동화예요. 무려 직구 했다고요. 저거 빨리 확인해봐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할 말 없으시면 비켜주시면 감사하겠네요."


그러고는 미처 경찰이 대답하기도 전에 지연이는 택배기사에게서 신발을 거의 뺏다시피 받아 집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으려는 순간 딱 보기에도 아까 본 아저씨와 비슷한 분위기의 아저씨 두 명이 들것에 어떤 사람을 실고서 지연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지연이는 순간 불안한 기분이 들어 애지중지 손에 들고 있던 신발을 살며시 내려놓고 누구도 막지 못할 만큼 재 빠르게 하얀 천을 뒤집어 보았다. 그리고 지연이는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라도 된 듯이 가만히 서있었다. 열다섯 살밖에 안 되는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누가 봐도 너무나도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 사실을 택배기사도 알고 있었고, 아까 난감한 표정으로 지연이 앞에서 버벅거리던 경찰은 더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연이는 그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하여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아빠..!!!!!!!!!!!!!!!!!!!!!!!!!!!!!!!!!!!!!!!!!!!!!!!!!!!!!!!!!!!!!!!!!!!!!!!"



매거진의 이전글악몽의 이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