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 변호사
여기까지가 내가 전해받은 서류를 이용해 추측한 사건의 전말이다. 그 후, 지연이의 외침으로 지연이가 바로 죽은 남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형사들은 조사할 것이 있다면서 이 어린 소녀를 (경찰) 서로 데려왔고, 수거한 유리컵에서 사망자 이외에 나온 지문이 있는데 너의 지문과 대조해봐야겠다면서 지연이의 지문을 찍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불쌍한 아이는 지문이 일치한다는 황당한 이유로 자신의 아빠가 토해놓은 음식물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서에서 나갈 수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나와 만나기 하루 전, 사망자의 구토물에서는 충격적인 것이 검출되었다. 바로 표백제. 과연 이 어린아이가 표백제에 관심이나 있을까?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지만 흔히 말하는 정황이 이 아이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면서 경찰은 지연이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나는 국선 변호사로 다른 어느 때보다도 음산한 분위기의 감옥에서 처음 김지연, 이 사건의 용의자를 마주하였다.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엄마에게 다 들려주기에는 나에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더 이상은 묻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다행히 엄마는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형식적인 말이지만 그 안에 진심을 듬뿍 담아 우리의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우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힘들겠구나, 그렇지만 으랏차차! 난 우리 뉴익이가 이번에도 꼭 승소할 거라고 믿는다."라며.
차를 끌고 사무실로 향하다가 나는 돌연 방향을 바꿔 구치소로 향했다. 사건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던 아주 명확한 사실(지연이는 이대로 가다간 최저 7년형에서부터 최고 사형에까지 이를 수 있다.)이었지만 그동안 막연히 내가 반드시 이 아이를 이 악의 구렁텅이와 같은 누명에서 끄집어 내주겠다고 자신했었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번뜩, 어쩌면 그럴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는 또 한 번 확실한 대답이 필요했다.
"퉁 퉁 퉁.."
낯익은 지연이의 발소리가 들린 지 얼마 안돼서 내 눈에 낯익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해버린 지연이의 얼굴이 감지되었다. 이 어린아이가 자신에게 내려질지도 모르는 형량을 알고 있는 것일까. 하루하루 안 좋아지기만 하는 지연이의 얼굴 때문에 나는 매번 이 질문을 입밖에 꺼내기가 더 힘들어진다.
"저.. 언제쯤 나갈 수 있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지연아,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어.."
"또 그 질문인가요..?"
"니 기분이 어떨지 알아, 하지만 나에게는 확신이 필요해, 너를 못 믿는 것은 아냐.. 그렇지만.."
"변호사님.. 그만하세요. 변호사님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대답해드릴게요. 몇백 번이고 몇천 번이고 해드릴게요. 저 아니에요. 제가 왜 아빠를 죽이겠어요? 아빠는 저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었어요. 엄마는 아빠의 술주정에 오빠와 함께 나가버리고, 비록 일주일에 절반 이상을 술에 취해 사셨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그나마 남은 유일한 방패막이자 기댈 수 있는 가족이었다고요. 제가 왜... 왜요?"
매번 지연이가 답을 해줄 때면, 그 진심이 나의 마음을 짓누르는 부담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그랬다. 나는 사실 처음 지연이를 만났을 때부터 이 아이를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렇게도 매번 지연이에게 고문과도 같은 이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만약 나의 믿음이 깨어질 진실이 나중에 나온다면, 그것이 내가 이 아이를 전과자를 꼬리표로부터 구해주지 못했을 때 죄책감으로부터 그때는 나를 끄집어낼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아주 못되지만 절실한 이유 때문이다.
지연이는 아직 아버지의 몸속에서 표백제가 검출된 것을 모른다.(시신부검은 유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자타살및 정확한 사망원인을 가리기위해 수사기관이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수행하는 공적인 업무이기에 유가족의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왜 지연이가 여기에 지금까지 있는지를 설명해줘야 한다.
"고마워, 매번 힘들 텐데.. 넌 참 착한 아이야, 그것이 내가 지금 너의 변호사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이기도 해, 그런데 너에게 할 말이 있어, 부검을 했단다.. 아버지를.. 미안해.. 하지만 사인을 알아내기 위해 필요한 절차였어.. 네가 충격받을까 봐 미리 말하지 못했어. 미안해.. 그런데 아버지의 몸속에서.. 표백제 성분이 검출됐어.. 표백제가 뭔지는 알지?"
"알아요.. 락스 같은 거잖아요."
"어.. 맞아, 근데 그게 한꺼번에 먹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소량으로 섭취해서 결국 사망에까지 이른 것 같다는 전문가들의 소견이 나왔어."
"그렇군요.."
"형사들이 지연이네 집을 중심으로 주변 탐방을 했는데, 주민들이 지연이가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신 다음 날 항상 꿀물을 타서 아버지께 드렸다고 하더라고.."
"맞아요. 진짜 술 엄청 좋아했어요 아빠는.. 그리고 저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온 다음날 학교 가기 전에 항상 꿀물을 타서 아버지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고요."
"그랬구나.."
"무슨 삼류 법정 드라마 같네요.. 그래서 제가 그 꿀물에 조금씩 조금씩 표백제를 넣어서 결국 아빠가 죽었다는 그런 말이 하고 싶으신 거예요? 그렇군요. 그런 거였어요. 꿀물.. 아빠를 위한다고 한 게 이렇게.. 참.. 꿀물.."
담담하게 하지만 감출 수 없는 배신감을 꾸역꾸역 누르며 이야기하는 지연이의 태도가 충분히 이해되었기에, 자신에게 내려질지도 모르는, 그렇지만 내려져서는 안 되는 형량을 정작 이 아이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착잡했다.
"아저씨.. 저 만약에 이대로 범인이 되어버리면 사형선고받을 수도 있나요?"
"어?...."
"역시 그렇군요. 뉴스에서 본 적 있어요. 어떤 오빠가 pc방 갈 돈을 안 줬다고 엄마를 칼로 찔러 죽였는데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뉴스요."
"그건 최고형이야, 그리고 그런 사례는 별로 없어,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고. 아저씨가 꼭 지연이 구해줄 테니까."
갓 변호사의 길로 접어든 새내기 변호사처럼 나는 어울리지도 않는 패기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점점 사그라들던 지연이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바로 집으로 향했다. 사무실로 돌아가 얼마 남지 않은 1차 공판을 위해 서류를 정리해야 했지만 지연이 한마디 한마디가 몸에 모래주머니 마냥 주렁주렁 매달려 이 무거운 몸을 누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머? 너 왜 이렇게 빨리 들어왔니? 어디 아파?"
"아니에요. 저 들어가서 쉴게요."
아침에 내 기대에 부응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부응해 주셨으면 난 엄마에게 한없이 감사했을 테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너무 귀했던 어머니는 기어코 내 방까지 들어와 내 이마를 짚어보신다.
"열은 없고.. 무슨 일이야? 뭐가 잘 안돼?"
"아니에요, 그냥 좀 피곤해서..."
"아들! 이 엄마가 아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이 답답하고 그러면 엄마에게 털어놔.. 엄마가 들어줄 수는 있으니까.."
"엄마, 자기 아버지를 죽여야만 했던 아이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요..? 아니, 자기 아버지를 죽인 천하의 나쁜 년이라는 누명을 쓴 아이의 마음은.. 그 마음은.. 과연 어떨까요..?"
"뭐?"
엄마의 얼굴은 차츰차츰 뻣뻣히 굳어갔지만, 나는 나만의 우울에 갇혀 엄마의 얼굴을 미처 보지 못했다.
"이번에 제가 맡은 사람이.. 아니, 아이가 이제 겨우 열다섯인데... 이 세상이 그 아이 보고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라고 하네요. 엄마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어쩌면... 그 아이를.. 승소를..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속상해요.."
"........."
평소 같았으면 세상에 말세라는 둥, 그 아이가 불쌍하다는 둥 무슨 말이라도 특유의 고음 추임새를 넣어 설레발을 치셔야 하는데, 문득 곁에 아무도 없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살짝 들어 바라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느낌에 거실로 나가보다 그곳에도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 계신 거야...'
걱정 반, 짜증 반인 마음으로 화장실을 열어보니, 엄마는 다 큰 아들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연 것도 모른 체 변기에 바지도 내리지 않고 않으셔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왜 저러시지..?'
워낙 나는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아침드라마를 보시면서도 눈물을 철철 흘리 신 소녀 같은 감성의 소유자이시기에 졸지에 악랄한 살인자가 되어버린 지연이가 불쌍해서 그러는 것이려니...라고 하기에도 엄마의 표정은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말을 걸어봐야 할지 모른척해야 할지 몰라 한참 우물쭈물 고민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앞으로 휙 지나갔다. 어느새 엄마가 눈물을 다 닦으시고 태연히 내 앞을 지나가 거실 바닥에 앉으신 것이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저 눈동자만 굴려 엄마를 바라보았다.
"아들, 이리와 봐"
"..."
"그 아이.. 구해낼 수 있겠니?"
"... 노력해야죠.. 처음엔 여중생이라고 해서 당연 히 그럴 리 없을 거라고 확신했고, 그래서 무조건 구해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점점 자신이 없어져요..":
"엄마는.. 우리 아들이.. 잘할 거라고 믿어.. 구해내야 한다.."
"... 네.."
난 엄마의 진심 가득한 눈빛에 왜 우셨냐고 물어보아야 할 것도 잊어버리고 그저 새로운 마음가짐을 마음에 품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눈부터 얼른 감았다. 한숨 자야겠다는 것을 온몸으로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