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이유 #4

뉴블랑

by JA

"쿵"


내가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는 신호이다. 언제나 그랬듯 알 수 없는 굉음에 눈을 뜬 나는 어제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미안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사무실 문을 열고 자리에 앉으니 집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엄마가 하신 말씀이 귀에 맴돈다.


"뉴익아, 그 아이 이름이 지연이라고 했었나? 지연이는.. 아마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을 거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항상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그 예쁜 눈에서 뚝뚝 떨어지는 그 빛나는 눈물방울이 나는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엄마는 왜 그렇게 지연이한테 신경을 쓰시는 것일까? 평소에 내가 하는 일은 복잡하고 가슴 아프다고 일부러라도 신경 안 쓰셨는데.. 영 알 수가 없었다.


"변호사님 나오셨네요."


어제도 본 것처럼 문영 씨는 반갑게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나를 위한 커피가 손에 들려있다.


"피곤해 보이세요."

"조금요.. 미안해요. 어제는 일이 좀 있었어요."

"또 지연이한테 가셨었죠?"

"참.. 못할 짓이라는 거 알면서도 자꾸 가게 되네요.."

"변호사님 마음 충분히 이해해요. 그리고 저도 지연이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요. 참, 1차 공판 때 슬 서류 정리는 다 됐나요?

"거의 다 됐어요. 그런데.. 참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검토하면 할수록 지연이에게 너무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어린 게 무슨 죄가 있다고.. 원래대로라면 매번 꿀물을 타다준 지연이는 효녀라고 칭찬을 받아야 하는데.."


"...."


문영 씨의 말에는 한치의 틀림이 없었다. 아마 지연이가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매번 빠듯한 자신의 아침시간을 쪼개 아버지에게 날이면 날마다 꿀물을 타주는 번거로운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옛 선조들은 사람일 한 치 앞도 모른다는 말을 만들어냈나 보다. 어쨌든 나는 변호사로서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금까지 몇십 번도 더 본 것들이지만 나는 사건 현장 사진부터 부검 결과보고서, 지연이의 진술서와 주변 사람들의 진술서들을 차근차근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희망은 희미했다. 사망자의 몸에서 표백제가 나온 것도 사실이고, 지연이가 매번 꿀물을 타서 아버지께 준 것도 사실이고.. 사망자와 특별히 왕래하던 사람도 없고.. 전 부인과의 사이가 안 좋긴 했지만 알리바이가 너무 명확해 잠깐 용의 선상에 올랐다가 이내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이다.


또 한 번의 좌절이 나를 통째로 삼키려는 순간 주변 사람들의 진술서에서 단 한 글자가 갑자기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바로 "술"이었다.


'아... 술!"


그렇다. 지연이가 자주 아버지께 꿀물을 타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건 바로 아버지가 그만큼 술을 자주 드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연히 시중에 술이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술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까막눈 같으니라고..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열심히 옆에서 타이핑을 치고 있는 문영 씨에게 다가갔다.


"문영 씨, 사망자가 자주 가는 술집이 어디였죠?"

"술집이요? 갑자기 왜.."

"생각해봐요, 지연이가 왜 아버지에게 꿀물을 타 드렸을지.. 그건 바로 아버지가 술을 그만큼 자주 먹었다는 이야기잖아요!!!"

"설마.. 변호사님 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 술은 전국에 유통되고 있어요. 만약에 그랬다면 지연이 아버지 말고도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거예요."

"나는 술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문영 씨에게 지금 술집을 물었어요. 술집."

"아! 술집.. 그럼 술집에 관련된 사람이 용의자가 될 수도..? 그렇지만.. 저번 조사 때 별 관계없는 걸로.."

"맞아요, 하지만 솔직히 어린 지연이가 그렇게 계획적으로 자기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보다는 그 술집에 관련된 어떤 사람이 아주 교묘하게 수사망을 빠졌나 갔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그렇긴 하죠... 그 술집은.. 잠시만요."

"최대한 빨리 좀 찾아봐줘요."


심청이의 아버지가 눈을 뜨고 처음 마주한 햇빛보다도 더 강한 희망의 빛이 나에게 다가오는 듯 느껴졌다. 그렇다. 내 예상대로 돌아간다면 나는 지연이의 누명을 벗겨줄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을 지연이에게도 알리려고 사무실을 나섰다가, 문득 내가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핸들을 집으로 돌렸다.


'침착해야지.. 침착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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