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인
집으로 향하던 중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변호사 사뉴익입니다."
"변호사님, 저 양문영입니다."
"문영 씨? 제가 부탁한 건 알아봤어요?"
"네, 그 술집의 주인은 40대 후반 여자이고, 사망자는 진술서에 썼던 것과 그대로 늘 혼자 술을 먹었다고 하네요. 원한 관계도 없고.. 워낙 혼자 와서 구석진 곳에서 술만 마시다 가서 사람들 눈에 뜨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그 여주인은 어때 보였어요?"
"그냥 평범했어요. 다른 술집 여주인들처럼.. 화장도 그렇고.. 옷차림새도 그렇고.. 근데 술집에 손님이 별로 없어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제가 갔을 때도 혼자 있었거든요. 왠지 삶을 포기한듯한 느낌이랄까.. 눈도 풀려있고, 말도 어눌하고, 별로 장사할 생각도 없어 보였어요.."
"아, 그래요.. 수고했어요. 내가 직접 한번 찾아가 보죠. 술집의 위치가 어디죠?"
"변호사님네 동네예요. 거기 큰 나이트클럽이 있잖아요. 그 뒤로 작은 길이 있는데 좀 들어가다 보면 [뉴 블랑]이라고 허술한 술집이 보일 거예요. 바로 거기예요."
"우리 동네... 알았어요. 고마워요. 수고했어요. 내일 봐요."
'하필이면 우리 동네람..'
지연이네 동네와 우리 동네는 버스로도 자그마치 10 정거장이 넘는데 왜 지연이의 아버지는 우리 동네까지 와서 술을 마셨을까.. 하는 자연스러운 질문을 가지고 어차피 집에 가는 길이었으니 그 술집에나 가보자는 심상으로 나는 차를 계속 몰았다.
그리고 이 동네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던 거리로 향했다. 크기만큼이나 소리도 웅장한 나이트를 끼고돌아 문영 씨가 말했던 뒷길로 가보니 정말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차로는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좁고 어두운 길이기에 나는 약간 겁이 났지만 걸어가기로 했다. 무서웠다. 마치 은밀한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을 것만 같은 그 길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을 내딛을 때마다 내 심장도 뛰는 속도를 올려갔다. 다행히 이곳은 총이 합법인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이었기에 생명에 위협을 느낀 건 아니었지만,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나는 너무 놀래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뻔했다. 간신히 도착한 이름도 괴상한 술집은 문영 씨 말대로 폭우가 쏟아지면 바로 무너질 것같이 허술해 보였다.
힘을 주면 당장이라도 부서질듯한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니 문영 씨의 말대로 여주인의 모습이 보였다. 하다 만 듯한 화장(손님들과의 과격한 스킨십 때문에 지워졌을지도 모르겠다.)과 대충 가리려고만 걸친듯한 옷, 그리고 마약이라도 하는 듯 풀린 눈까지.. 내가 무슨 말을 걸어도 대꾸도 안 할듯한 모습에 그냥 나가려고 하는 순간,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아.. 저는.."
"며칠 전에는 깔끔하게 차려입은 여자분이 다녀가시더니 이번에는 남자분이.. 내가 섹시하다는 소문이 거기까지 낫던가요? 하하하하.."
"...."
"농담이에요. 젊은 사람이 유도리없이..딱 봐도 내가 큰누나 뻘은 돼 보이는데.. 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러니까..."
대뜸 "여기에 자주 다니던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나는 이 술집에 드나드는 사람들 중에(당신 포함) 용의자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쭈뼛쭈뼛 서있는데 나에게 그 여주인이 또 말을 걸어왔다.
"말하기 힘든 일인가 보네.. 그럼 일단 이리 와 앉아요.. 와서 술 한잔 하면서 천천히 얘기하라고.. 난 시간밖에 남는 게 없는 사람이니까.."
평소 술을 즐기진 않지만 이 여주인이 용의자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도 무서운 철장 속에서 겁을 먹고 떨고 있을 지연이를 생각해서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서 찬찬히 여주인을 살펴보니 술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듯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며, 간신히 찾아서 가지고 오는 모습이며 어디 하나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내가 계속 주시하고 있다는 걸 느꼈던지 어울리지도 않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여주인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젊은 양반이 빤히 쳐다봐주니 기분이 좋네, 여기 내 술 한잔 받아요"
"이 술집은 얼마나 됐나요?"
"이제야 말을 좀 하는구먼.. 이 술집.. 뭐 그런 걸 물어.. 한 20년 됐나?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하네.. 내 나이가 이제 마흔.. 뭐 거의 오십 다 됐으니.."
"손님이 별로 없네요. 단골은 있어요?"
"단골이라.. 지금 젊은이가 말한 대로 단골이 있겠소? 그냥 간간히 찾아오는 손님들이 다 단골이다.. 하는 거지.."
"진짜 단골이 하나도 없나요?"
"... 왜? 젊은이가 내 단골 해주게? 하하하하"
"혹시 이분 모르세요?"
나는 지갑을 열어서 지연이의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망했을 당시의 사진을 보여주면 으레 사람들은 겁을 먹고 내치는 게 다반사였기에, 언제부턴가 나는 유가족들에게 사망자의 생존 시 사진을 한 장씩 달라고 한다. 지연이 한테도 아버지의 생존 시 사진을 한 장 달라고 하니 평소 자기 지갑에 가지고 다니던 아버이즤 사진을 선뜻 내주었다. 역시 사진 속의 사람이 이미 사망하였다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여주인은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알겠다는 표정이 지었다.
"이 양반이랑 젊은이는 무슨 관계요?"
"그냥 아는 분입니다."
"그냥 아는 사람인데.. 여기까지 알고 찾아왔단 말이요? 솔직히 말해봐요. 이 사람 어찌 알아요?"
"사실은 제가 가르쳤던 제자의 아버지입니다."
"그렇군.. 이 양반 여기 자주 왔었어.. 아! 이 양반에 대해 물어보려고 젊은이가 아까부터 단골 타령을 했구먼, 근데 이 양반은 나한테 단골이 아니라 가족과도 같았어, 아니 한 가족이었지.. 그런데 자식이 있는지는 몰랐네.. 아들이요 딸이요?"
"딸입니다. 근데 가족과 같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런 게 있어... 젊은이가 좀 더 살다 보면 알게 될 거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니 왜? 술은 입에도 안 대고.. 서운하게 시리.."
"시간이 늦었습니다. 나중에 생각나면 다시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나 참.. 이상한 젊은이를 다 보겠네.. 어쨌든 이 양반을 찾는 모양인데.. 찾지 마소."
"안녕히 계십시오."
"근데.. 젊은이.."
"네"
"내가 아는 사람과 많이 닮았구먼.."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대 때 여자들한테서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요."는 진부한 작업 멘트를 많이 들어본지라 여주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술집을 나섰다. 한시라도 빨리 이 번쩍거리는 별나라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거의 뛰다시피 내 차로 돌아와 거의 로켓 수준으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