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이유 #6

엄마

by JA

집에 돌아오니 엄마는 이미 주무시고 계셨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열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을 그 뉴.. 무슨 술집에서 보낸 것이다. 시간을 몰랐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시간을 알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씻는 것도 귀찮을 만큼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자랑스러운 변호사 아들을 기다리다가 티브이 앞에서 잠드신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얼마 전 지연이의 얘기를 들으시고 화장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셨던 엄마의 모습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잠이 조금은 깨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일 아침에 은근슬쩍 이유를 물어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나는 기대감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산뜻하게 일어나 씻으려 화장실에 들어갔다. 한 편의 영화를 찍듯이 멋있게 샤워를 마치고 마무리로 거울을 들여다보는데 갑자기 그 여주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여주인의 마지막 말이 뇌리를 스쳐갔다.


'뭐야, 누구랑 닮았다는 거야.. 신경 쓰이게.. 난 엄마 아들이니까 우리 엄마 닮았지~흐흐흐'


실없게 웃으며 흐뭇한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는 순간 정말 불길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생각이 들었다.


'사뉴익! 너 미쳤구나,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엄마 얼굴을 보면 볼수록 부인할 수가 없었다. 어디를 콕 집어서 닮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닮은 곳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무언가 비슷했다. 무언가.. 미운 오리 새끼가 결국은 백조인 것이 밝혀지는 삼류 드라마처럼 엄마와 그 여주인 사이에 큰 비밀이 있을듯한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괜히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갖은 폼을 잡으면서 거울을 들여다본 것이 후회되었다.


"악!"


이번엔 여자 비명소리다. 그동안 지겹게 들어온 굉음을 총소리라고 가정하고 오늘 들은 이 비명소리와 짝지으면 이건 뭐 여자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서부영화의 단골 장면이 탄생하는 건가? 이런 싱거운 생각을 하고 있는 여전히 문밖에서는 아침드라마 속 악녀가 또 악을 쓰고 있다. 감독도 무심하시지, 저 아침드라마의 애청자도 아닌 내가 항상 저 비명소리를 들을 정도면 저 배우 목이 나가도 한참 전에 나갔을 텐데 아무리 악역이라고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하며 문밖으로 기어나간다. 일어나기도 귀찮은 아침이다.


"아들 일어났어?"


비록 엄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여기에 아들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나밖에 없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대답을 한다.


"네~"

"어제는 언제 들어왔니?"

"어제 한 10시 넘어서 그쯤 들어왔어요."

"저기 아침밥 차려놨으니까 얼른 씻고 나와서 먹어."

"알았어요."


오늘따라 유난히 귀찮아서 느릿느릿 씻고 나오니 어느새 아침드라마 시청을 마치신 엄마가 식탁에서 내가 앉을자리의 맞은편 자리에 앉아계신다. 뭐 빠진 것은 없는지 아침상을 다시 꼼꼼히 살피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어제 결심한 질문을 조심스레 던져보고자 나는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내 자리에 앉았다.


"엄마"

"어? 왜? 우리 아들 엄마한테 할 말 있어?"

"어제요.."

"어제? 어제 뭐 있나?"

"아! 어제가 아니라 엊그제요"

"어제든 엊그제든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우리 아들이 뜸을 들이나~"

"지연이 얘기할 때.."

"지연이.."

"네.."

"지연이가 왜? 혹시 그 아이에게 무슨 일 생겼니?"

"아니요. 제가 지연이 얘기했을 때.. 엄마가 화장실에서.."

"아이 부끄럽게 시리.. 그냥 좀 넘어가 주지 우리 아들 참.."

"보려고 본건 아닌데.. 근데 엄마 왜 우신 거예요?"

"우리 아들이... 그게 궁금해서 이렇게 뜸을 들였구나.. 우리 아들! 엄마가 지금부터 하는 얘기 놀라지 말고 들어.. 어디부터 얘기를 꺼내야 하나.. 아! 근데 오늘은 늦게 출근해도 되는 거니?"

"제가 사무실 왕고잖아요. 괜찮아요."


"그래.. 사실 너한테는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지만.. 엄마는 할머니의 외동딸이 아니야. 무슨 뜻인지 알지? 엄마한테 동생이 한 명 있었어. 여동생.. 그러니까 너한테는 이모가 되겠구나.. 벌써 몇십 년 전에 인연이 끊어졌지만.. 그래도 가족이라는 게 쉽게 마음속에서 잊히지가 않더라.. 잊을만하면 생각나고.. 어쩌다가 생각나고.. 널 보다가도 생각나고.."

"..."

"근데 오래전에.. 할머니가 전화를 해서는 이모한테 딸이 있는 것 같다고 하시는 거야"

"이모.. 딸..."

"근데 그 지연이라는 애가 딱 네 이모 딸 정도 나이가 되는 거 같아서.. 너한테는 이종사촌 나이라고 해서.. 이모도 생각나고 그래서 주책스럽게 눈물이 났지 뭐.."


"이모 딸.. 할머니는 어떻게 아신 대요?"

"글쎄..? 그거까지는 얘기를 안 하시더라고.. 호적을 파버 린다나 뭐라나 그러셨어도.. 딸이니까.. 안 아픈 손가락이 없었겠지 할머니도.. 엄마한테만 얘기를 안 하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여차저차 소식을 듣고 사셨겠지.."


"..."

물어볼 말은 너무 많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우리 아들이 놀랬나 보네.."

"네.. 근데 이모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어요?"

"요즘 세대 사람들은 이해 못할지 몰라도 그때만 해도 술집이라는 게.. 그것도 여자가 술집을 차린다는 게.. 받아들이기가 참 힘든 일이었단다. 근데 너희 이모가 덜컥 술집을 하겠다고 선언을 해버린 거 아니니.. 그 바람에 할머니는 노발대발하시다가 쓰러지실 뻔하고.. 집안이 정말 뒤집어졌었어."


'술집...!'


"온 가족이 다 반대를 하는데도 이모가 결국 자기는 기어코 마담을 하고야 만다고 집을 나갔어. 그러고 나서 서로 인연이 끊어진 거지."


"아.."


"그러고 나서 가족들 아무한테도 말을 안 하고 어떤 남자랑 살림을 차렸나 보더구나.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할머니가 뜬금없이 엄마한테 그 얼굴도 한번 못 본 이모 딸 얘기를 하더라고.. 에효.. 진짜 가족이라는 게 뭔지..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내놓고 집을 나간 네 이모가.. 정말 밉기도 하지만.. 핏줄이 이래서 무서운 거야.. 가끔은 생각나고.. 생각하면 걱정되고.. 한번쯤 찾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한테 차마 이모를 부탁한다고는 말은 못 하여도 그런 의미가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고민도 되고.. 그렇지만 엄마가 무슨 수로 찾겠어.. 그래서 그냥 가슴에 묻은 게.. 세월은 참 잘도 흐르지.."


"...."

"뭐 그래.. 우리 아들.. 괜찮지?"

"저기 엄마.. 혹시 이모 사진 있어요?"

"사진? 사진은 왜?"

"아니 그냥.."

"없을 거야.. 엄마 어렸을 때는 사진이 귀하기도 했고.. 네 이모가 집 나간 이후로는 같이 사진 찍을 일이 없었으니까.."

"아.."

"우리 뉴익이가....혹시 엄마한테 섭섭하려나? 이런 얘기를 이제야 해줘서..?"

"아니에요.. 근데 엄마, 그럼 이모가 엄마보다 몇 살 어려요?"

"걔가.. 엄마보다 딱 열 살어리지, 그러니까 이제 오십이겠다.. 살아있다면.."

"아.. 그렇구나.."

"딸은 잘 키우고 있는 건지.. 술집은 어쩐 건지.. 모르겠다.. 엄마도.. 어서 밥 먹어.. 출근은 해야지 너무 늦으면 아래 직원들이 흉본다.."

"네.."


미련스러운 집착이었다. 마음으로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엄마가 지금껏 몰랐던 이모에 대해 얘기를 할 때마다 계속 그 웃음을 질질 흘리던 여주인이 떠올랐고, 불쾌했지만 피할 수 없었기에 입 밖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속상하게도 술집을 한다는 사실도, 나이가 오십정도 된다는 것도 그 여자와 이모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적인 기정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늘 머리보다는 마음이 앞서는 법. 나는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이 나에게 벌어질 리 없다고 세차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들고 있던 숟가락을 그대로 쥐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체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혼자서 머릿속에 드라마 한 편을 완성시켰다.


'만약 그 여주인이 나의 이모라면.. 나는 원하지 않았던 가족 한 명을 얻게 되는 것이고, 엄마는 몇십 년간 보지 못했던 친동생과 감격스러운(?) 상봉을 할 테지만, 그 기쁨도 잠시 자신의 동생이 살인 용의자로서 자신의 아들에게 의심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지시겠지.. 그렇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 그러고 보니 지연이 나이가 올해 15살이고, 이모가 낳았다는 딸도 나이가 15살이라고 했는데.. 그러면 혹시 지연이가 이모의 딸이고.. 그럼 이번 사건은 이모부가 죽은 거고.. 그럼 내 조카나 이모 둘 중에 한 명이 이모부를 죽인 거고.. 이모가 범인이라면 지금 자기 딸에게 뒤집어 씌운 게 되는 거고.. 그럼 나는.. 누가 범인 이든 간에 생에 처음으로 만나자마자 둘 중 한 명은 감옥에 집어넣어야 하고..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괜히 나쁜 놈이 되는 것 같고.. 이게 뭐야 대체.. 살인자야 살인을 했으니 나쁜 사람이지만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맡은 사건에 가족이 연루되는 바람에 나쁜 놈이 되는 거잖아..'


전적으로 나에게 불리한 전개였다. 그렇지만 상관없었다. 왜냐하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니까. 그저 상상일 뿐이니까. 혼자 실없이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는데 언제나 그랬듯 나보다 먼저 출근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영 씨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좋은 아침이에요 문영 씨"

"아! 변호사님 오셨네요. 그런데요 이상한 일이 발생했어요."

"이상한 일이요?"

"네, 그 술집 여주인 있잖아요. 뉴 블랑."

"여주인이 왜요?"

"사라졌어요. 뭐 좀 물어보려고 전화했더니 없는 번호라고.."

"뭐라고요?"

"그래서 오늘 변호사님도 늦으신다고 하고.. 찾아가 봤는데 완전 문을 닫았어요. 간판도 내리고."

"... 이거 일이 꼬이네요. 유력한 범인일 수도 있는데.."

"변호사님! 이거 공개수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문영 씨도 참.. 공개수배는 아무나 하나요.. 절차라는 게 있는데.."

"그렇지만... 우리가 찾아간 다음에 갑자기 사라진 게 너무 이상하잖아요.. 정황이.."

"그건 그렇지만.. 그럼 일단 문영 씨는 그 여주인 신원확인이랑 가족관계, 혹시 전과는 있는지, 지연이네랑 관계가 있는지.. 소상히 조사해줘요. 나는 지연이한테 좀 가봐야겠어요."

"지연이한테 물어보시게요?"

"그래야죠. 어쩌면 키는 지연이한테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이 여자 뭐야 진짜..'

살짝 짜증이 나려는 것을 안 그래도 힘들 지연이를 좋은 얼굴로 대해야 되겠다는 의무감으로 떨쳐버리고 애써 웃는 연습을 해가며 지연이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한 지연이는 하루 사이에 더 돌출된듯한 쇄골이 무색하게 밝은 미소로 나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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