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이유 #7

비밀

by JA

"변호사님 보고 싶었어요."

"어? 어.. 지연이 같이 이쁜 학생이 나같이 늙다리 아저씨를 보고 싶다고 하니 이 아저씨가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걸?"


말은 이렇게 했지만 진짜 지연이는 이쁘장하게 생겼고 나는 주책 맞게 가슴이 콩닥콩닥했다.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지연이가(지연이의 엄마는 집을 나간 후로 지연이와 본 적이 없다 하니 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찾아오는 사람 없이 이 무서운 철장 안에 있으려니 간혹 찾아오는 내가 보고 싶은 게 어쩌면 당연할 것인데 말이다. (지연이의 친구들은 어려서 아마 선생님들이 지연이의 일을 말 안 해줬을 것이고, 소문은 이미 났겠지만, 학교의 이미지를 생각해 학교에서도 최대한 감추려고 하는 분위기이다.)


"근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어.. 그러니까.."


그러고 보니 저번에 만났을 때 지연이가 분명 엄마는 아빠의 술주정을 버티지 못해 나갔다고 했고, 그러면 지연이는 자기 엄마의 얼굴을 안다는 거고, 그럼 내가 물어볼 것은 지연이가 몇 살 때 엄마가 집에 나가셨는지 였다.


"지연아, 오늘은 아버지에 관련된 게 아니고, 엄마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는데.."

"아.. 엄마... 근데 엄마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워낙 어렸을 때 나가셔서.."

"어렸을 때..? 그럼 엄마 얼굴은 기억나니?"

"어렴풋이요.. 근데 아마 지금은 못 알아볼 거예요.. 당연히 엄마도 저를 못 알아보실 거고요.."

"아.. 그럼 지연이 몇 살 때쯤 나가신 거야..?"

"... 다섯 살.... 여섯 살... 잘 모르겠어요.."

"그렇구나, 그러면 지연아 엄마 연세는 기억이 나니.."

"잘 모르겠어요.."


미련한 짓이었다. 차라리 그냥 내가 알아볼 것을. 왜 지연이 한테 와서 괜히 애 마음만 안 좋게 만든 것인지.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 그래 알았어, 지연이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니..?"


이 무슨 한심한 질문인가. 아직 한참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 나이인 지연이가 엄마가 보고 싶은 건 당연한데, 앞으로 이 곳을 나서서 며칠이나 문득문득 떠오를 이 미련한 짓에 얼마나 많이 머리를 흔들려고 계속 이러고 있는지 이제는 자제할 의욕도 없어졌다.


"안 보고 싶어요.. 뭐.. 추억이라도 많고.. 얼굴이라도 또렷이 생각나면 모를까.. 어느 순간부터 엄마라는 존재는 저한테 당연히 없는 존재가 되었어요.. 그래서 친구들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들 엄마를 보면 너무 어색해요.."


"아.. 그래.. 우리 지연이가 철이 들었네.. 이 아저씨는 아직도 멀었는데.. 근데 밥은 잘 먹는 거야? 점점 살이 빠지는 것 같아.."

"잘 먹어요, 근데 여기서는 잘 먹어도.. 살이 안 쪄요... 하하하.."

"자동 다이어트? 하하하하.."




이제 완전 막장이다. 다이어트라니.. 아무래도 내가 더 이상 여기 있다가는 또 무슨 헛소리를 할지 몰라 나는 서둘러 대화를 마치려고 했다.


"...."

"미안, 웃으라고 한말인데.. 아저씨가.. 이렇다니까 철이 없어.. 그럼 아저씨 이만 가볼게, 앞으로는 지금보다 밥 두배로 먹고. 힘을 내야 해!"
"아저씨 또 언제 오실 거예요?"

"글쎄, 잘 모르겠네.. 하지만 곧 다시 올 거야."


지연이가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리까지는 씩씩하게 걸어 나왔지만, 내 짐작에 더 이상은 지연이가 날 볼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다다르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그나마 온몸 구석구석에 먼지만큼 남아있는 기운을 모두 끌어모아 문영 씨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문영 씨? 나 사변이에요."

"네 변호사님, 말씀하세요."

"부탁할 것이 있어요. 지연이 엄마에 대해 조사를 좀 해줬으면 해요."

"아.. 안 그래도 조금 전에 변호사님이 부탁한 것들 조사하면서 혹시나 해서 지연이 엄마에 대해서도 좀 알아봤어요."

"아 그래요? 고마워요."

"근데 변호사님 어디 아프세요? 목소리가 안 좋아요. 아까 지연이 만나러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지연이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오늘따라 좀 많이 피곤하네요."

"그럼 제가 그쪽으로 갈까요?"

"아니에요. 사무실에서 봐요. 금방 갈게요."

"알겠습니다."


내가 아니라 문영 씨가 변호사를 해야 하는데..라는 말로 스스로를 자학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 문 앞에 서기전까지는 지연이의 슬픈 얼굴이 아른아른 거려서 기운이 쭉 빠져있었는데, 문 앞에 서자마자 문득 지연이 엄마가 그 뉴 뭐 술집 주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온몸에 신경이 바짝 서는 느낌이 들었다. 사법고시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던 기분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영 씨는 열심히 컴퓨터로 무언가 보고 있다가 인기척에 나를 돌아보며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 몇 개를 챙겨 내 책상 앞에 섰다.


"그 여자 이름은 이보언,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경력은 없지만 같이 산 남자는 있다고 하구요. 딸도 있어요. 딸의 나이는 15살.. 이름은.."

"이름은...?"

"김지연..."

"김지연.. 이름 이쁘네.. 어? 김지연? 김지연? 문영 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 그 여자 딸 이름이 김지연이라고 했어요?"

"네.. 김지연..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렇지만 설마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연이일까요.. 세상에 얼마나 동명이인이 많은데.. 게다가 지연이 이름은 흔하잖아요.."

"...."

"그 여자 전과는 없고, 지금도 여전히 행 봉이 묘연한 상태예요."

"..."

"변호사님,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아요."

"그리고 그 여자 나이는 올해 50. 만으로 마흔아홉이에요. 그러니까 그 딸을 서른넷에 낳은 거죠."

"네..."

"그고 지연이 엄마에 대해서도 알아봤는데.. 어.. 여기 보면.."


문영 씨가 그 여주인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보고한 것과는 반면에 지연이 엄마에 대해서는 우왕좌왕하는 게 급히 알아본 게 분명했다. 그리고 문영 씨가 앞서 언급한 동명이인이라는 말에 힘이 들어간 걸 보면 나의 우려가 현실화되지는 않을 듯했다. 가슴속 한편에서 안심이 스멀스멀 그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니까.. 지연이의 엄마는.. 올해 마흔 살. 지연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남편과 합의 이혼 후, 재혼은 안 하고 지금 아들과 함께 둘이 살고 있다고 해요."


문영 씨도 무안했는지 갑자기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자진납세를 시작했다.


"호호호호..변홋님..제가 사실은... 지연이 엄마에 대해 미리 알아본 건 아니고.. 하하하하.. 변호사님 전화받고 말은 던져놨는데 수습이 안돼서... 급하게 많이 알아보느라.. 하하하.. 정리가 안됐네요.. 하하하하"

"문영 씨도 참.. 싱겁기는.. 어쨌든 수고했어요."


어쨌든 다행이었다. 그 여자는 지연이의 엄마가 아니었다. 즉 여자가 남편을 죽이고 딸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막장드라마 같은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 여주인의 이름이 엄마의 이름과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보언. 엄마 이름은 이보은. 이렇게 되면 어쩌면 나의 드라마가 일부 성립될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자꾸 들었다. 엄마와 그 여주인이 친 자매이고.. 그럼 나는 이모를 지금 살인 용의자로 의심하고 있는 나쁜 조카....... 가 되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바로 그 여주인을 찾아내 엄마와 대면하게 하는 것이었다. 만약 진짜 친자매라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서로를 알아볼 테니까. 그러나 역시 삶이란.. 드라마와 같이 술술 풀리지 않는 법. 일단 그 여자를 찾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문영 씨, 혹시 이보언 씨 집주소도 알아봤어요?"

"아.. 그게.. 이보언 씨가 술집을 하고나서부터는 가족과 따로 살았다고 해요. 거의 연락을 안 하고.. 게다가 그 같이 살았다던 남편 역시나 이보언 씨가 술집 하는 걸 엄청 못마땅하게 여겼나 봐요.. 그걸로 엄청 싸우다가 이보언 씨가 결국 집을 나가 술집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거의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살아온 것 같아요."

"아.. 그래도.. 일단 그 여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니까 그 전남편(?)이랑 딸이랑 같이 살고 있는 집주소 좀 알려줘 봐요."

"예, 잠시만요. 아! 여기 있네요."


문영 씨한테 받는 집주소를 가지고 나는 당장 출발했다. 한참을 달려가고 있는데 어느새 해가 어둑어둑 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또 집에서 혼자 저녁밥을 드시고 계실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식간적으로 머릿속에 이상한 공식이 성립했다. 내 머릿속엔 지금 세 여자가 있다. 내가 기필코 구해내야 하는 김지연. 내가 기필코 찾아내야 하는 이보언,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우리 엄마 이보은. 그럼 이들 중에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사실 지금 이 순간도 무서운 철장 속에서 무서운 사람들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지연이 생각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나는 요 근래 엄마와 밥상을 같이 한 게 언젠가.. 하는 생각에 차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엄마~아들 왔어요~~"

"아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엄마랑 오랜만에 저녁 같이 먹으려고 왔죠."

"어쩌면 좋으니!! 엄마는 오늘도 당연히 아들이 늦을 줄 알고 금방 밥 다 먹고 치웠는데.."

"아.. 어쩔 수 없죠 뭐.."

"아들! 그래도 이왕 일찍 들어왔으니 엄마가 집밥 제대로 차려줄게. 뭐 해줄까?"

"아무거나 좋아요~!"

"그래 좀 기다려봐~"


엄마가 밥을 드셨다는 말에 살짝 핸들을 돌린 것이 후회되었지만, 오래간만에 아들이 일찍 들어왔다고 얼굴에 화색이 도는 엄마를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문영 씨"

"네 변호사님,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그 집에는 가보셨어요?"

"아니요. 못 갔어요. 집에 무슨 일이 생겨서.."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를..?"

"아.. 그래서 말인데, 문영 씨가 대신 그 집에 좀 가줬으면 해서요."

"제가요?"

"네.. 힘들까요?"

"아니에요. 변호사님께서 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셔서 부탁하실 정도면 꽤나 중요한 일인 것 같은데.. 당연히 제가 가봐야죠."

"고마워요. 그럼 그 집에 가서 최대한 그 여주인에 대해 알아보고 나한테 바로 전화 줘요."

"알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녁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는데, 우리 집에 무슨 일이 있는 줄로만 알고 자기가 가주겠다고 흔쾌히 허락한 문영 씨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음번에 밥이나 한번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씻으러 들어갔다. 다 씻고 나오는데 익숙한 엄마표 짬뽕 찌개 냄새가 솔솔 났다.


"우리 엄마가 또 오랜만에 일찍 들어온 이 아들을 위해 엄마의 특허상품인 짬뽕 찌개를 끓이셨군요~"

"그럼! 우리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일찍 왔는데~"

"아, 이 황홀한 냄새~"

"으이고, 이 넉살하고는, 어서 와 앉아~"
"네! 근데 엄마.. 만약에 이모를 만나게 되면 어떨 것 같아?"

"...?"

"아니 그냥 혹시라도.."

"글쎄다... 하도 오래돼서.. 길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 거야 아마.."

"그래도.. 사람 인연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들 하잖아요.. 게다가 가족인데.. 보고는 싶어?"

"글쎄.. 애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한번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더라.. 그 애도 그렇고.. 아무리 남같이 살았어도 나한테는 조카고.. 너한테는 이종사촌인데.. 근데 지금은.. 뭐.. 그냥 그래.. 어쩌다 인연이 닿아서 보면 보는 거고.. 아님 마는 거고.."

"아.."

"근데 오래간만에 일찍 들어와서 이모는 왜? 우리 능력 있는 아들이 찾아주게?"

"그냥 궁금해서.."

"우리 뉴익이..이모 보고 싶니?"

"아니에요~~ 밥 먹어야겠다 배고파 죽겠네~~"


큰 그리움도 없는데 괜히 아픈 상처만 들추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그래도 큰 거부감은 없으니 가족 간에 한번 만나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쭉날쭉 섞여 머리가 복잡했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웃겼다. 가족이라니? 아무것도 밝혀진 건 없는데.. 일단 그 여주인을 찾는데만 주력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다 먹고 티브이를 보는 건지 핸드폰을 보는 건지 모르는 두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옆에서 엄마는 티브이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저 모습을 얼마 만에 보는지.. 그동안 내가 엄마에게 참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울컥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내 마음을 수습하기 전에 엄마가 깨실까 봐 서둘러 핸드폰을 들고 내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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