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이유 #8

사라진 희망

by JA

"여보세요."

"변호사님. 저 양문영입니다."

"네, 문영 씨, 그 집에 가봤어요?"

"네.. 그런데.."

"왜요?"

"그 집 사람들도 그 여주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더군요.. 관심도 없는 눈치였어요."

"아.. 그래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 명함을 놓고 왔어요. 그 여주인이 돌아오면 연락해달라고 말했으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고마워요. 정말 수고했고 이제 얼른 집에 들어가서 쉬어요. 내일은 좀 천천히 출근하도록 해요."

"정말요? 호호호..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쉬세요."


큰 기대를 한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막상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다는 문영 씨의 말에 나는 기운이 빠졌다. 곤히 자는 엄마를 깨워서 안방으로 들어가서 주무시라고 할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나는 안방에 있는 이불을 가져다가 엄마를 덮어드리고 나도 그 옆에 누웠다.


"번쩍!"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평온하게 눈을 떴다. 그동안 부지런히 도 나를 괴롭히던 굉음도, 얼마 전 신선했던 여자 비명소리도 없이 그냥 눈이 번쩍 뜨인 것이다. 엄마 옆에서 자서 그런가.. 오늘은 왠지 하루의 시작이 평범한 것 보니 하루 일진이 좋을 것만 같은 느낌에 몸이 한결 가벼웠다. 이 좋은 기분을 왠지 지연이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 나는 사무실 대신 지연이에게로 향했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아침에.."

"지연이 보고 싶어서 왔지.."

"감사해요. 저도 아저씨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거 제삼자가 본다면 영화 인디언 서머(변호사와 죄수의 사랑을 그린 우리나라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장면이겠다. 불쌍한 여자 주인공과 그 여자 주인공을 구해주려 애를 쓰는 정의의 변호사. 그렇지만 그러기엔 우리는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고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난 대한민국 변호사이다.


"근데 지연아, 물어볼 것이 있어."

"...?"
"혹시 아버지 주위에 친한 여자분도 있었어?"

"여자요?"

"어, 그러니까 지연이도 알 정도로 가깝게 지내던 여자분.."


내가 왜 이 말을 물어보는 건지 전혀 알 수 없겠다는듯한 지연이의 표정. 일단 그 여주인이 지연이의 엄마는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면 만약에 그 여주인이 정말 범인이라면 왜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범죄까지 저지르게 되었을까? 금전관 계일 수도 있고, 과거에 얽힌 원한관계일 수도 있고.. 정말 홧김에..(음, 이건 아닌 것 같다. 지연이의 아버지는 지속적인 표백제 섭취로 인해 서서히 사망이 이르렀다는 결과를 받았으니..) 아니면 그 여주인이 보기와는 다르게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고, 그냥 묻지 마 살인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단 용의자가 여자인 ㅁ나큼 나는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의 뿌리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여자..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그래도 다시 한번 잘 생각해봐. 아빠가 자주 만난다거나.. 아니면 얘기를 한 번이라도 했다고나.. 아니면 싸웠다고나 한 아줌마 없었어?"

"음.. 근데 왜요? 혹시 범인이 잡혔나요? 아줌마예요?"

"아니 아니.. 혹시 범인이 여자일 수도 있으니까.. 저번에도 말했지만 지연이 아버지는 표백제 과다 섭취로 돌아가셨잖아.... 그런데 사람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지속적인 섭취에도 불구하고 당사자가 눈치를 못 챘다는 건 그만큼 조금씩 오래 그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건데.. 이런 세세한 작업은 남자라기보다는 여자가 했을 간으성이 높은 것 같아서..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내 생각이고.. 범인은 아직 남자일지 여자일이 모르는 상태야.."

"음.. 그렇군요. 그런데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럼.. 내가 다시 여기 오기 전까지 틈틈이 생각 좀 해줄래? 혹시 문득 생각 날수도 있으니.. 힘들까?"

"아니에요. 저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은걸요. 생각해볼게요."

"그래 고마워, 우리 지연이는 얼굴만 이쁜 줄 알았더니 마음도 이쁘네.."

"...."

"지연이는 여기서 나가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어?"

"그냥 집에 가고 싶어요.. 우리 집.."

"집에...?"

"네...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계셨던 곳에 가보고 싶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옆에 있어드리지도 못했잖아요.. 근데.. 저희 아버지 시신은 어떻게 됐어요? 부검했다고 하셨잖아요.. 장례는 했어요?"


그러고 보니 부검 후 법적 유일한 직계가족인(엄마와 함께 나간 오빠도 직계가족이긴 하나 본인들이 먼저 시신 인계를 거부하였다.) 지연이가 미성년자인 데다가 이렇게 살인 누명을 쓰고 이 말도 안 되는 곳에 있는 바람에 어찌어찌 연락이 닿은 먼 친척에 의해 시신이 화장되어 어딘가에 버려지듯 뿌려졌다는 말을 문영 씨가 해준 것이 생각이 났다.


"어.. 그러니까.. 아버지의 시신은 화장이 되었대.. 아마 지금쯤 편안하실 거야.."

"화장이요..? 그럼 어디에 뿌려졌는지는 아세요..?"

"어.. 그건..."

"..."

"미안해 지연아.. 미처 거기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어.. 다음에 올 때 꼭 알아볼게.."

"네.."

참 미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밖에 내다 놓으면 변호사라고 온갖 접대를 다 받는 내가 지연이 앞에만 서면 세상에서 제일 한심하고, 가장 미련하고, 엄청나게 생각 없는 사람이 된다. 아무래도 지연이를 이 곳에서 구해내면 한 1년을, 못 구해내면 평생을 두고 문득문득 떠오르는 지연이와의 철창 추억 때문에 괴로울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울적해져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차를 타려는 순간 운전석 창문에 어떤 여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냥 우리 엄마 연배 정도 되어 보이는 평범한 아줌마 같았는데 왠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이 기분이 영 이상해서 천천히 돌아보았다. 내가 본 것이 귀신이었으면 순식간에 사라졌을 텐데 무슨 여유로 이렇게 천천히 돌아본 건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내가 본건 사람이었고, 그것도 경찰서가 두려운지 선뜻 들어가지는 못하고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는 아주머니 었다. 괜히 시간만 낭비한 것 같아서 다시 운전석에 앉으려는데 이번엔 창문으로 얼굴이 보였다. 그 순간 잠시 쉬었던 나의 온몸의 솜털이 바짝 섰다.


"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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