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산문시

by JA

험한 동네였다.
이제 겨우 나이 서른중반의 여자가
애 셋을 데리고 살아가기에는.

어느날 새벽
굉음에 눈뜬 첫째 아들은
자신의 차에 흩어진 옆동 아저씨를
봐야했고.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은
그날 밤 아빠에게 맞았다며
자기방으로 뛰쳐들어온 친구와
이불을 같이 뒤집어쓴 체
떨어야했고.

어린 셋째 딸은
먹기싫어서 먹기싫다고 했다가
엄마에게 쫓겨나 문앞에서
복도끝집 아저씨가 속옷차림으로
담배 피는 모습을 빤히 보다가
마주친 눈에 다리가 풀릴만큼의
공포를 느껴야 했다.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여자는 더이상 대신
막아주기에도 벅차다고 느낄때마다
거품을 잔뜩내어 설거지를 하곤했다.

이마가 닿을만한 높이에
버튼을 누르면 흘러나오던
라디오에서 틀어주던 노래에
고무장갑을 쥐어뜯으며 울었지만
물소리에 묻혀 아무도 듣지 못했다.

성공한 첫째아들이
마련해준 집과
똑똑했던 둘째 아들이 선물한
내로라하는 큰차
그리고 속깊은 막내딸이
슬그머니 사놓은 신상 라디오에도.

여자는 막막했던 삶에
유일하게 울음을 허락했던
흉흉한 그 동네 작은 집구석
환풍기 한 모서리 조그만 버튼으로
켜지던 라디오를 생각한다.

목소리만 조금 이상해도
바로 달려오는 발걸음보다도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울음을 지켜봐주던 그을음을
뒤집어 쓴 라디오를 그리워한다.

운다.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잊혀지지 않아서.

여자는 번쩍번쩍한
싱크대 앞에서 마치지 못한
설거지거리를 앞에두고
쪼그려 묵묵히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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