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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an 12. 2021

슬픈침묵 그리고 비전

번외편

나랑 남편은 같이 출근을 한다. 남편과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건 아니고, 10분거리의 학교에서 각각 근무를 해서 남편근무지까지는 남편이 운전을 하고, 거기서 내가 운전대를 이어받아 우리학교까지 간다. 5년차 부부는 같이 출근한다고 해서 그렇게 알콩달콩하지는 않다. (극 현실주의) 대부분 아이들의 이야기나, 업무적인 이야기(같은 직종이다보니 이런저런 얘기꺼리가 많다.)로 출근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러다가 대화가 끊기면 내가 가끔 노래를 트는데, 어느날 남편이 유승준의 "찾길바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은노래. 한때는 정말 빠져서 지겹도록 들었던 노래. 유승준의 노래들.


그런데 그게 도화선이 되었던걸까. 나는 다시 유승준의 노래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계속 들으면서 마음이 편한건 아니다. 그의 이름만 들어도 생각나는 그가 저지른 사건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가 한창 잘나갈때 그의 노래를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금은 아들을 가진 엄마로서 나는 그의 선택이 실망스럽다. 하지만 그의 선택과는 달리 그의 노래는 참 희망적이다. 그리고 참 건전하다.


 내가 옛날사람이 된걸까. 나는 요새 나오는 노래들이 잘 귀에 안들어온다. 어쩌다 가끔 취향맞는 노래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돌노래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가끔은 가사조차 들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학창시절에 듣던 노래를 요새 많이 찾아 듣는다. 이수영, 이정현, 신승훈, 투애니원을 지나 지금은 유승준에 도착해있다.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그의 무대가 생각이 난다. 사실 나는 그의 엄청난 팬이 아니었는데도, 지금까지도 근육질의 앞머리 한가닥을 내리고 무대를 활보하던 그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것보면 그가 그당시에 대세는 대세였나보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노래를 전부다 좋아하는것은 아니다. 그가 한참 인기있었을때 조차 나는 그의 팬이 아니었고, 그의 노래에도 그닥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날 나의 학창시절 듣던 노래가 그리워졌고 하나하나 찾아 듣던 중에 그의 노래가 귀에 유난히 들려왔었다. 그중에 나의 코끝을 찡하게 하는 노래가 있었는데, 이 노래는 아마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 않을까 싶다. 나도 아무생각없이 제목만 보고 호기심에 틀었다가 울뻔했으니까 말이다. 그 노래는 바로 "슬픈침묵"이다.



슬픈침묵의 부제는 "친구이길 원했던 친구에게"이다. 가사의 내용은 왕따를 당하다가 결국 스스로 세상을 등진 친구를 추모하는 것이다. 잠시 가사를 감상해보자면...


니가 갔어 왜냐고 묻진 않았어

슬픔 아픔에

피맺힌 마지막 니눈을 봤어

단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미소를 비췄던 니가 마지막 던진

그눈빛 그의미 미련한 나로서는 니가

항상 내게 행복을 느낀다던

메모처럼 이해할수 없었던

나 이제 나 이제 나 당할때 너보다 더 비굴한

눈물이 흘러 (Hold my hand)


진짜 나도 눈물이 흘렀다. 내 브런치를 꾸준히 구독해주신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학창시절 왕따를 당했던 경험이 있다. 꽤나 오랜시간 동안 나는 혼자였고, 그 혼자였던 시간들이 남긴 트라우마를 극복하느라 또 꽤나 오랜시간을 힘들어했다. 그래서 이 노래를 처음 듣는 그 순간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졌다. 단지 노래일 뿐인데, 어쩌면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나같은 사람을 그저 상상하며 만들었을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지가 않아서, 나 역시도 그 힘들었던 시간동안 죽음을 생각해봤었기에 정말 이 노래가.. 내 마음을 무너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싶다. 혹시나 지금 누군가를 따돌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노래를 한번 들어보라고. 이 노래는 따돌림을 당하거나 당했던 사람이 아니라 따돌리고 있는 가해자가 정말 들어야할 노래다. 나는 이제 조금은 그 외로움이 주었던 힘듦에서 벗어나 이 노래를 담담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노래를 반복해서 듣는 요즘도 아직 이 노래를 틀지는 않았다. 내일은 출근길에 한번 들어볼까 싶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내가 요새 출근길에 마음의 위안을 얻는 노래가 있는데, 아마 이 노래는 워낙 유명했기에 우리세대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노래일 것이다. 바로 "비전"이다. 제목부터 가사까지 모든게 다 희망적인데 그중에서도 마지막 가사에서 나는 힘을 얻는다. 바로 이 가사이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자신이고 싶은 그런 모습의 그 삶을 위하여 발을 내딛어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내일로-

 


정말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다시 태어난다 해도 자신이고 싶은 사람. 우선 나는 아니다. 물론 나의 삶 전체를 보고 이런 얘기를 하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 인생의 절반은 나는 다시 리셋해버리고 싶다. 하지만 더이상은 리셋해버리고 싶은 삶을 만들지 않기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다. 앞으로 남은 삶만큼은 정말 다시 태어나도 다시 가지고 태어나고 싶게 만들기 위하여.


출근길은 늘 마음이 무겁다. 막상 학교에 도착해서 업무를 시작하면 정말 정신이 쏙 빠지게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하나하나 해나가는데, 그 직전 40분이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다. 정확히 내가 왜그렇게 우울하고, 마음이 가라앉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특히나 내가 혼자 운전하고 출근하는 길은 감정이 패닉상태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럴때마다 요새는 저 노래를 튼다. 유승준의 비전.


이 글을 쓴 이유가 유승준의 노래를 홍보하려고 하는건 절대 아니다. 그가 한 선택은 나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선택이니까. 그런데 그의 노래를 듣다보니 이 글을 쓰고 싶어졌다. 왜냐면 그와 별개로 그의 노래들이 너무 좋아서. 가사들이 너무 좋아서. 새삼 가요라는 것이 사랑만 주제로 하는것이 아니라 사회문제와 희망도 노래할 수 있다는것이 느껴져서. 그리고 나처럼 이유없이 우울한 기분이 드는 누군가는 그의 노래가 힘이 될 수도 있을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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