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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y 18. 2021

아들은 오마이걸! 나는 코요테!?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길. 남편이 노래를 틀었는데,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어우~옛날 사람"


남편의 핀잔이 날아왔다. 참나, 어이가 없어서(선곡은 자기가 했으면서) 눈을 잠시 흘기고서 다시 어깨를 들썩 거렸다.

남편의 선곡은 코요테의 "순정"이었다.(밑에 사진을 보고 멜로디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나와 같은 세대.^^)

어찌 엉덩이와 어깨가 흔들거리지 않을 수 있는가. 워어어~워어어~워 어어어 어어어! 한참 신나게 따라 부르고 있는데, 노래가 끝이 났다. 하지만 흥이 차오른 나는 남편에게 마구마구 신청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그날의 플레이 리스트!

집에 돌아오는 길이 이렇게 신날 수가 있을까. 당장 여로를 풀 새도 없이 내일은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해야 하는데 그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린 채 목청 터져라 따라 불렀다. 그 여운이 길게 남아 나는 지금까지도 출근길에 저 노래들을 듣는다. 참 신기한 건 길게는 10년도 더 된 노래들이고, 정말 몇 년 만에 듣는 노래들인데도 멜로디가 선명하게 기억나고 중간중간 가사도 정확하게 기억난다는 것이다. 세월도 어찌 못한 추억의 힘이랄까.



나는 정말 옛날 사람이다. 나이만 보면 아직 옛날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BTS덕질을 한다는 주위 엄마들에게 아주 당당히 "나는 BTS멤버 중에 딱 한 명밖에 몰라, R인가?"라고 말하는 파워 당당 옛날 사람. (R이 아니고 RM이라고 옆에 있던 젊은 엄마가 알려주었다. 내가 RM을 알게 된 계기는 몇 달 전에 정재찬 시인의 책-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읽었는데, 그분이 RM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정재찬 시인이 극찬한 RM의 노래를 내가 찾지 못했다는 것. 정말 들어보고 싶었는데. )


그런데 우리 아들은 다르다. 우리 아들은 이번 달에 생에 두 번째 생일은 맞는 24개월, 두 돌 아가다. 그런데 이 두 돌 아가가 푹 빠진 아이돌이 있었으니 바로 오마이걸! 아이돌은커녕 요새 무슨 노래가 유행하는지도 모르고 옛날 노래에 빠져있는 내가 오마이걸을 알리가 없었다. 물론 이제 세상에 태어난 지 2년 겨우 돼가는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 그런데 우리 모자가 오마이걸을 알게 된 결정적인 영상이 있었으니... 바로!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이게 시작이었다. 우리는 분명 뽀로로의 바나나 차차를 시작으로 새로운 영상이 나왔다기에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를 본 것뿐이었는데 가끔 과하게 친절한 유튜브가 연관 동영상으로 오마이걸의 "반하나"를 추천해주었고, 그게 우리 아들의 눈에 띈 것이다. 그리고 그는 빠져든다. 오. 마. 이. 걸에...


그런데 오마이걸이 "반하나"  것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뽀로로와 아주 친한 사이. 뽀로로 전문 협력 아이돌인   노래  노래 많이 했고 나와 아들, 그리고 우리 딸내미까지 오마이걸에 빠져들게 된다. 사실 우리 딸은 아들만큼 오마이걸에 관심이 많지는 않았는데(우리 딸은 이때 한참 우주소녀 쪼꼬미의 흥칫뿡이라는 노래에 빠져있었는데, 다온이 친구 중에 아이돌이 꿈인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처음 접한  완전  빠져버렸다.) 그런 우리 딸이 오마이걸을 좋아하게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슈파 듀파! 이것도 뽀로로와 함께 나오는 노래이다. 일단 루피가 주인공이고, 모든 멤버가 분홍색 옷을 입었으니 한참 핑크와 공주에 푹 빠져있는 우리 딸 취향을 저격하고도 남는 콘셉트이다. 그래서 한동안 오마이걸을 두고 아들과 딸의 치열한 기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 아들은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가 보고 싶고 우리 딸은 "슈파 듀파(SUPADUPA)"가 보고 싶은데, 집에 텔레비전은 한대이니 결국엔 나의 임의로 순서를 정해서 하루는 바나나 먼저 하루는 슈파 먼저로 정해주곤 했었다.


오마이걸을 하도 보다 보니 처음에는 별 관심도 없었는데 이제 우연히라도 텔레비전에 오마이걸이 나오거나, 인터넷 기사에 오마이걸이 언급되면 한 번쯤 보게 되고 클릭해보게 된다. 우리 아들 딸이 파워 당당 옛날 사람 엄마를 변화시키고 있는 느낌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변화는 세계적 아이돌 BTS의 멤버 이름도 한 명밖에 모르는 내가 오마이걸 멤버 이름을 두 명이나 안다는 사실이다. 효정과 아린.


사실 효정은 알고 있었는데 아린을 알게 된 또 결정적인 영상이 있다. 이제 뽀로로를 넘어서 오마이걸 자체에 폭 빠져버린 우리 아들딸이 요새 빠져있는 노래는 바로...! (유튜브야, 연관 동영상 추천 좀 그만해줄래?)

오마이걸 버전 "잘 자요 굿나잇" (이 노래의 원곡은 B1A4라는 남자 아이돌이 불렀다고 한다.)

뮤직비디오 시작을 "아린"이 애인과 통화하는 것처럼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우리 아들은 일단 아린 얼굴만 나오면 아빠미소를 짓는다. 이제 갓 두 돌 된 녀석이 벌써 이쁜 건 알아가지고. 그래. 아린 만큼 이쁜 며느리 데려와라!


완전 넋 나간 우리 아들. 그렇게도 이쁘냐! (이쁘긴 하지...) 이 영상을 볼 때는 남매의 싸움이 없었다. 둘 다 좋아해서. 우리 딸은 이제 하도 봐서 가사를 거의 외울 지경. 나는 100% 타의적으로 너무 많이 들어서 가끔 이 노래의 멜로디와 오마이걸 멤버들의 목소리가 머리에 둥둥 떠다닌다. (잘 자요 굿 나이트~잘 자요 굿 나이트~! 댄싱 댄싱 댄싱 인 더 문라잇! 워어어어어어~워어어어어어~ 미안해요 오늘 그대가 없네요~)


그런데 아무리 좋아하는 영상이어도 같은걸 계속 보면 질리는 법, 어느 날 우리 아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던 아린 얼굴이 나왔는데 손사래를 치길래 속으로 은근, 와! 이제 오마이걸 해방인가? 했는데 해방은 무슨, 다른 영상 틀어달란다. 그래서 아예 오마이걸이 아닌 원곡 B1A4의 영상을 틀어줬더니 이건 뭐 도입부 들어가자마자 아니라고 손사래를 손사래를..ㅋㅋㅋ그래서 우리 딸을 보여줬더니 아무 말 없이 쭉 보더니 한마디.


 "엄마 남자 꺼 말고 여자 꺼가 더 괜찮은 것 같아" 결국 오마이걸 승!



그 흔한 뽀로로, 타요, 슈퍼윙스, 시크릿 쥬쥬 등등 인기 만화를 이겨버린 오마이걸. 요새 다온이는 오마이걸 영상을 보다 나에게 묻는다.


"엄마, 저 언니들이 진짜 사람이야?"

"사람이지?"

"그러니까 내 말은, 저 언니들이 우리가 사는 지구에 진짜 있는 사람이냐고."

"응, 그렇지 진짜 지구에 다온이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지"


질문에 성실하게 답은 했는데 오마이걸이 연예인이고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만날 수 없고, 앞으로도 만날 가능성이 적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다온이에게 물었다.


"다온아, 직업이 뭔지 알아?"

"아니 몰라"

"엄마 직업이 뭔지 몰라?"

"음.. 일하는 거?"

"아니, 엄마 하는일"

"몰라"

"엄마 직업은 공무원이야. 그리고 오마이걸 언니들은 가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가수가 뭔지 알지?"

"응"

"다온이도 가수가 되면 오마이걸 언니들처럼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어"


아이의 눈이 살짝 반짝이는 게 보인다. 내가 설명을 잘한 것일까? 모르겠다. 나중에 다온이가 크면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도 나는 옛날 사람답게 옛날 노래를 들으며 출근했다.


요새 나의 최애곡은 젝스키스의 콤백! 이 노래가 나왔을 때는 존재조차 몰랐는데.


사실 이상하게 정작 그들 전성기 때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 우연히 그들 노래를 들으면 왜 그렇게 반가운 걸까. 그 노래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나 그 가수에 대한 애정도 없는데. 그렇다고 내가 그 노래가 한창일 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냥 반갑고 뭔가 신이 난다. 나도 이렇게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걸까. 벌써부터. 익숙한 것이 좋고 새로운 것은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보는. 또 한편 이상한 건 나는 중학교 시절 조성모의 팬이어서 정말 조성모 데뷔 천일기념일 날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전단지도 붙이고, 사탕도 매달아 놓고 그랬었는데 막상 지금은 조성모 노래를 잘 안 듣게 된다. 물론 우연히 듣게 되면 반갑고 흥얼거리기는 하지만 일부러 찾아 듣지는 않게 된다.


 


주위에서 나중에 아이들이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거나 유행을 탈 때 부모도 그것에 대해 관심이 있고 알고 있어야 소통이 가능하다는데 벌써부터 걱정이다. 내가 옛날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내가 살아가는데 아직까지는 그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않아 괜찮은데, 이로 인해서 아이들과의 소통이 끊기게 된다면 이는 정말 큰일이니까. 게다가 나는 예능도 잘 안 보고, 드라마도 잘 안 보는 사람이라 더더욱 아이들과의 소통거리가 없을 텐데, 생각해보니 이 정말 큰일이다. 지금부터라도 아이돌에 관심을 갖고, 예능도 보고, 드라마도 봐야 하나. (드라마 얘기를 하다 보니 몇 달 전에 초등학생들 얘기를 듣다가 깜짝 놀란 일이 생각난다. 초등학생, 그것도 고학년도 아닌 것 같이 보였는데 그 아이들이 부부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부부의 세계라니.. 부부의 세계 19세 이상 시청 아니었나..?)


오마이걸과 코요테로 시작해 어쩌다 얘기가 미래까지 이어졌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옛날 노래를 들으며 출근하고 퇴근할 것이고, 옛날 가요들이 더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의미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고 요즘 가요가 안 좋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파워 당당 옛날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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