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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May 30. 2021

크루엘라, 그녀가 부럽다.

영화를 봤다. 크루엘라.

라온이의 생일을 핑계로 남편과 둘이 연가를 내고 정말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다. 내가 그렇게 오랜만에 영화관에 갔는지 그제서야 알았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는 겨울왕국 2였다. 나는 여전히 차에 겨울왕국 2 OST를 틀고 다녔기에 이 영화가 무려 1년도 더 전에 개봉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겨울왕국2의 개봉은 2019년 11월. 코로나 때문에 1년이 그냥 갔다 그냥 갔다 해도 실감을 못했는데 네이버 검색창 하나에 진짜 제대로 실감했다. 세상에. 1년이 진짜 그냥 지나갔구나.


남편은 한국영화 파이프라인을 보자고 했지만 썩 내키지 않았다. 사실 크루엘라도 완전 보고싶다, 그런건 아니었지만 왠지 파이프라인보다는 더 끌려서 선택하게 되었고 나의 선택은 옳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뻔한 결말의 영화인데도 2시간이 넘는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만큼 크루엘라를 연기한 엠마스톤은 정말 대박이었다. (물론 내 기준이다. 남편은 영화가 끝난후 재밌냐고 물은 내 질문에 그냥 그랬다는 대답을 했다.)



크루엘라를 보는 내내 나는 그녀가 부러왔다. 사실 그녀의 불우한 어린시절, 그리고 충격적인 출생의 비밀 같은것이 부러웠던것은 아니다. 그런것들만 생각한다면 그녀만큼 불행한 인생도 없을것이다. (결론을 감안해도) 나는 그녀의 재능이 부러웠다. 그녀의 타고난 그 재능. 그 재능이 자신이 증오하는 친엄마로부터 왔든, 아니면 정말 신이 내린 선천적 재능이든 그 경로가 어떠하든지간에 옷을 바라보는 감각과 그것을 만들어내고 표현해 낼 수 있는 그 능력이 부러웠다. 어정쩡하지 않고, 적이자 당대의 최고 디자이너의 눈에들만큼 뛰어난 그 능력이 나는 정말 너무나도 부러웠다. 결국 그 재능이 그녀를 구원해주었으니까. 그녀를 빛나게 만들어줬으니까.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것을 이루게 만들어줬으니까. 


크루엘라의 적이자 핏줄인 남작부인의 대사중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파워를 얘기한다는것 자체가 니가 파워가 없다는거야."


이 이야기는 맞는 이야기다. 이 말에대해 크루엘라가 응수한 말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남작부인의 저 대사가 가슴에 콕 박혔다. 내가 크루엘라의 뛰어난 재능을 부러워하는 자체가 나에게 그만큼의 뛰어난 재능이 없다는걸 너무나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으니까. 맞다. 난 재능이 없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뛰어난 재능이 없다. 



뛰어난 재능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명이 모두 다른 정의를 내릴 만한 질문이다. 나에게 뛰어난 재능의 정의란 무엇일까? 모르겠다. 내가 얼마만큼의 재능을 가지길 원하는지 나 조차도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내가 가진 재능들이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래서 나는 크루엘라가 부럽다. (물론 크루엘라라는 인물이 자신이 가진 재능에 대해 본인 스스로 만족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루엘라를 본 후 계속에서 머릿속에 남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


사실 재능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하지만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어떤것들이 나를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끔 만든것은 사실이다. 그 어떤것들에는 영어와, 암기, 그리고 글쓰기가 있었다. 하지만 안타까운건 그 할 수 있는것들을 조금 더 발전시키고자 내가 노력했다면 최소한 지금의 내 모습보다는 내가 더 괜찮아질 수 있었을텐데 그저 그 자리에서 가진것만 가지고 맴맴돌았기에 나는 지금의 나이다. 이 사실이 나는 가장 괴롭다. 


*나는 영어를 전공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어영문학과. 공부에 영 관심없던 중학교 학생이었던 나는 어느날 영어교과서를 보는데 해석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되고 그때부터 영어라는 과목을 좋아하게된다. 그리고 그것을 계기로 영어영문학과로 진학을 하고, 영어에 대한 애정이 식지 않은 덕에 단기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교육청 소속 TALK장학생 활동도하고, 유럽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이 때만해도 나는 영어가 나를 어떤 반짝반짝 빛나는 길로 안내해줄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영어실력은 공무원시험볼때 반짝반짝 빛을 내 나를 이 자리로 오게 만들었다. 지금의 내 직업에 후회가 있는것은 아니지만, 영어를 쓸 일이 없다보니 지금은 중고등학생들이 읽는다는 청소년대상 원서도 제대로 못읽는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어디가서 내가 영어전공자라고 잘 말하지 않는다. 왜냐면 마음한켠 영어는 내 약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잘 하지 못하게 된. 마치 안경을 쓰고 있다가 어느순간 쓰지 못하게 된 기분이랄까. 영어만 생각하면 안경을 벗은것처럼 마음이 희뿌얘지는 느낌이다. 


*나는 초등학교시절 운동을 했었다. 키가크고 체격이 좋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선발이 되었지만 나는 선천적으로 운동신경이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당장 돌아갈 곳이 없었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돌아갈 곳이라고는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서 책을 잡았는데 기초가 없었기 때문에 막막했다. 그런데 잘 지켜보니 대부분의 과목이 암기만 잘해도 따라 잡을 수 있는 구조였다. 수학이나 과학같이 원리를 알아야하는 과목은 암기로 극복할 수 없는 지점이 있었지만 국어, 영어와 같은 언어과목이나 역사, 윤리와 같은 과목들은 암기만 잘해도 성적이 나오겠다는 생각에 정말 미친듯이 암기를 했다. 그래서 무사히 대학까지 졸업했다. 그리고 지금은 머릿속에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 지금의 교육과정은 어떤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학교다닐때는 그랬다. 그리고 이 암기력은 정말 다행히도 내가 공무원 시험 준비할때도 큰 역할을 해 단기합격을 가능하게 하였다. 


*고등학교시절 한 편의 독후감으로 나는 교육감상을 받았다. 이 상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 당시 나랑 우리학교 전교 1등이랑 같이 이 대회에 글을 냈는데 내가 교육감상을 받게 되어 학교에서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나에게도 미쳐 한 선생님이 이런 질문을 하기에 이른다. 


"JA, 이거 니가 쓴거 맞아?"

"맞는대요."

"그래? 축하한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는데 저 질문은 생각날때마다 찝찝하다. 어쨌든 교육감상으로 한 껏 자신감이 붙은 나는 한 제 2금융권에서 개최한 글쓰기 대회에 나가게 되었고 장려상을 받았다. 어깨에 뽕 제대로 들어간 시절이었다. 교내대회에서는 글을 내기만 하면 상을 받았고, 결국 전교 1등과 다시한번 글쓰기대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개최지는 "이화여대"였다. 


교무실이다. 선생님이 묻는다. 


"이대에서 글쓰기전형 수시가 있는데 내볼래?"

"...?"

"너가 나간다고 하면 학교에서 추천해줄 생각이야"

"네"


그래서 갔다. 이화여대. 결과는 둘다 낙선. 어리긴 어렸는지 내가 떨어졌다는 사실보다 둘다 떨어졌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다. 그러고 나서는 글쓰기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공감, 따뜻한 동행"이라는 모임을 운명처럼 만나 글을 쓰다 자비출판이지만 책도 내고 인세를 받아보기도 했다. (자비출판이라 사실 출간하는데 낸 돈이 인세보다 더 많아서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어쨌든 인세는 인세니까, 그 인세로 가족사진 찍었다.) 내가사는 도시에서 주최하는 1인 1책에 통과해서 개인시집도 내보니 출간에 대한 막연한 소망이 정말 막연해졌다. 브런치는 "공감, 따뜻한 동행"이라는 모임에서 알게된 언니를 통해 알게되서 나도 한번 해볼까, 하고 신청했는데 덜컥 합격. 말 그대로 덜컥 합격이었다. 아무 기대없이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 하는 마음으로 냈는데 합격했다. 지금은 그 어떤 곳보다 브런치에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아니, 생각해보니 이유는 명확하다. 그동안은 구독자분들이나 다른 작가분들과의 소통이 없었는데 요새는 소통을 시작했다. 애정하는 작가님들도 생겼고, 구독자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많이 커졌다. 앞으로도 애정은 계속될 예정이다. (구독자분들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나는 어떡해야할까? 사실 이미 답은 정해져있다. 크루엘라처럼 열심히 노력해야한다. 기회를 잡기위해 노력해야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런데 요즘의 나는 .. 많이 지쳤음을 느낀다. 남들은 말한다. 손길이 많이 가는 아이 둘을 키우면서 내가 자기발전을 위해 뭘 하기에는 너무 힘들다고. 맞는말이다. 난 요새 일주일에 여섯번은 아이들과 함께 잔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깬다. 나의 일상이 일어나서 아이들 등원시키고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하원시키고 지지고 볶다가 같이 잠들고 또 아침에 일어나서 ... 무한반복이다. 어쩌다 아침에 일찍 깨면 책읽고, 어쩌다 아이들과 함께 잠 안들면 오늘같이 글쓰는. 자율연수비로 산 디즈니 스크린 영어회화책 열 몇권은 한장도 펼쳐보지 못했다. 사실 아침에 일찍 깨었을때 영어회화책 한두장씩만 읽었어도 이미 몇권은 떼었을텐데. 지친다는 말도 다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핑계.



마음이 답답하다. 의지가 없는 나 때문에. 너무 멋있는 크루엘라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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