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좋아하는 애

by JA

요새 너무 글을 많이 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매일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도 있고, 하루에 몇 편씩 올리시는 분들에 비하면 난 정말 게으르게 쓰는 사람이지만 그저 내 기준으로 나는 요새 정말 많은 글을 쓰고 있다. 그것도 돈 안 되는 글만.


사실 나에게 굳이 글이 돈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리고 글이라는 것이 나에게 돈을 제외하고도 무언가를 가져다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글로 사람들의 관심을 기대하게 되었고, 내 이름이 알려지길 바라고 있었다. 한심하게도.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필 그러던 차에 저런 말을 들었다. "이런 거 좋아하는 애"라는 말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굳이 사내 메신저를 두고 전화를 할 사람이 아닌데 전화를 했다는 것은 뭔가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네"

(나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쓴다. 그 전에는 자발적으로 썼는데 이제는 습관적으로 쓰고 싸우거나 화가 났을 때는 눈을 부릅뜨고 더 존댓말을 쓴다. 훨씬 더 많이 무서우라고.)


"전화가 왔는데 시 한 편 써줄 수 있냐고"

"어디서요?"

"교육청에서, 소식지에 싣는대"

"시요?"


사실 나는 시를 쓰던 사람이지만 브런치에서 열심히 수필을 쓰다 보니 시라는 자체가 갑자기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시여야 한대요?"

"응"

"알았어요"


너무 쉽게 수락한 것일까. 나는 왜 이럴까. 왜 쓰고 싶은 글만 못쓰고 이렇게 이래저래 써달라는 글을 자꾸 쓰고만 있는 걸까. 그럼에도 나는 타의적인 글에서 뭔가 얻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잘 쓴다고 하는 칭찬이 좋은 거야, 이제는 내 이름만 들어도(내 이름 자체가 특이하다.) 사람들이 "아, 주무관님 글 어디 어디서 봤어요."라고 알아봐 주는 게 좋은 거야, 대체 뭐야. 하고 짜증 아닌 짜증을 내고 있는데 도교육청 번호로 전화가 왔다.


"관등성명"

"그쪽도 관등성명"


*관등성명: 관등(官等, 관리나 벼슬의 등급)"과 "성명(姓名, 성과 이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아우르는 말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번에 ***을 홍보하면서 그 밑에 시를 한편 냈으면 좋겠는데, 주무관님 혹시 ***의 회원이야?"

"네"

"*** 팀장님이 이런 거 좋아하는 애가 했으면 좋겠다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둡거나 무겁지 않은 걸로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사실 일단 기한이 주어졌기에 그리고 조건이 붙었기에(너무 어둡거나 무겁지 않은 거) 제출하기까지는 저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주일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시에 대한 감각도 살리고, 그동안 내가 썼던 시들도 손발 오글거리며 다 읽고, 이것저것 그냥 생각나는 대로 끼적거려본 결과 진짜 딱 한 편의 시가 써졌고 등단 시인분께 타의적 검토(?)도 받은 후에 제출했다. (타의적 검토를 받았지만 난 고집이 센 사람이라 다 수용하진 않았다. 글이 점점 발전하려면 내 글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데 난 일단 기분이 나쁘다. 솔직하게. 글이 중구난방이라느니, 너무 많은 단어가 나왔다느니 하는 도움이 되는 조언들은 일단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히고, 그러면 난 속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서 삭 화풀이를 하다가 정말 어렵게 그 일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언제나 철이 들까.)


제출하고 나니 갑자기 저 말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거 좋아하는 애" 물론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랬겠나 하고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나랑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기에) 그게 되지를 않는다. 내가 너무 칠렐레 팔렐레 상급기관에서 써달라는 글이면 넙죽 받아 쓴 게 아닌가, 내가 굳이 저런 표현으로 비하(?)되면서 까지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제 그만 쓸 때가 된 것일까?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거절할 수 있을까?

괜히 거절했다가 앞길 막히는 거 아닌가?

아..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가.

괜히 신문에 집필진으로 들어간다고 했나.

원고료도 안주는 신문에 뭐한다고 쓴다고 해서.

에이 진짜.


이러고 짜증 팍팍 내고 있는데 문자가 온다. 지잉지잉.


"칼럼은 7월 4일까지 주셔요."


또다시 기한이 생겼다. 정말 나 스스로 뫼비우스의 띠에 들어간 느낌이다.




유일하게 브런치만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쓴다. "그나마"라는 표현을 쓴 건 내 직업 특성상 민감한 글을 올릴 때에는 스스로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누구도 내 글에 관심 없고, 읽어도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방어막을 쳐 놓는다.


개인적인 생각이라든지, 혹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마치 괜찮을 것 같지만 혹시나 몰라서 병원 가서 돈 주고 안심을 사 오듯이, 저렇게 한 줄 쳐놓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고 나면 뒤에 글은 조금 편안하게 써 내려갈 수 있다.



언제나 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절필하면 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모든 글에 댓글이나 조회수, 구독자 이런 기능이 다 사라지면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하..

글에서 자유로워지기에는 너무도 "이런 거 좋아하는 애"이기에 글러버린 나는

다시 칼럼을 쓰고자 한글을 켠다.

(한글 켜기 전에 내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들 글을 읽으며 마음을 정화할까, 고민도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