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Jun 28. 2021

이런 거 좋아하는 애

요새 너무 글을 많이 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매일매일 브런치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도 있고, 하루에 몇 편씩 올리시는 분들에 비하면 난 정말 게으르게 쓰는 사람이지만 그저 내 기준으로 나는 요새 정말 많은 글을 쓰고 있다. 그것도 돈 안 되는 글만.


사실 나에게 굳이 글이 돈이 될 필요는 없지만, 그리고 글이라는 것이 나에게 돈을 제외하고도 무언가를 가져다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글로 사람들의 관심을 기대하게 되었고, 내 이름이 알려지길 바라고 있었다. 한심하게도.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필 그러던 차에 저런 말을 들었다. "이런 거 좋아하는 애"라는 말을.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굳이 사내 메신저를 두고 전화를 할 사람이 아닌데 전화를 했다는 것은 뭔가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네"

(나는 남편에게 존댓말을 쓴다. 그 전에는 자발적으로 썼는데 이제는 습관적으로 쓰고 싸우거나 화가 났을 때는 눈을 부릅뜨고 더 존댓말을 쓴다. 훨씬 더 많이 무서우라고.)


"전화가 왔는데 시 한 편 써줄 수 있냐고"

"어디서요?"

"교육청에서, 소식지에 싣는대"

"시요?"


사실 나는 시를 쓰던 사람이지만 브런치에서 열심히 수필을 쓰다 보니 시라는 자체가 갑자기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시여야 한대요?"

"응"

"알았어요"


너무 쉽게 수락한 것일까. 나는 왜 이럴까. 왜 쓰고 싶은 글만 못쓰고 이렇게 이래저래 써달라는 글을 자꾸 쓰고만 있는 걸까. 그럼에도 나는 타의적인 글에서 뭔가 얻고 있는 걸까. 사람들이 잘 쓴다고 하는 칭찬이 좋은 거야, 이제는 내 이름만 들어도(내 이름 자체가 특이하다.) 사람들이 "아, 주무관님 글 어디 어디서 봤어요."라고 알아봐 주는 게 좋은 거야, 대체 뭐야. 하고 짜증 아닌 짜증을 내고 있는데 도교육청 번호로 전화가 왔다.


"관등성명"

"그쪽도 관등성명"


*관등성명: 관등(官等, 관리나 벼슬의 등급)"과 "성명(姓名, 성과 이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아우르는 말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이번에 ***을 홍보하면서 그 밑에 시를 한편 냈으면 좋겠는데, 주무관님 혹시 ***의 회원이야?"

"네"

"*** 팀장님이 이런 거 좋아하는 애가 했으면 좋겠다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어둡거나 무겁지 않은 걸로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사실 일단 기한이 주어졌기에 그리고 조건이 붙었기에(너무 어둡거나 무겁지 않은 거) 제출하기까지는 저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일주일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시에 대한 감각도 살리고, 그동안 내가 썼던 시들도 손발 오글거리며 다 읽고, 이것저것 그냥 생각나는 대로 끼적거려본 결과 진짜 딱 한 편의 시가 써졌고 등단 시인분께 타의적 검토(?)도 받은 후에 제출했다. (타의적 검토를 받았지만 난 고집이 센 사람이라 다 수용하진 않았다. 글이 점점 발전하려면 내 글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데 난 일단 기분이 나쁘다. 솔직하게. 글이 중구난방이라느니, 너무 많은 단어가 나왔다느니 하는 도움이 되는 조언들은 일단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박히고, 그러면 난 속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서 삭 화풀이를 하다가 정말 어렵게 그 일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언제나 철이 들까.)


제출하고 나니 갑자기 저 말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거 좋아하는 애" 물론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랬겠나 하고 그냥 넘어가도 되는데(나랑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기에) 그게 되지를 않는다. 내가 너무 칠렐레 팔렐레 상급기관에서 써달라는 글이면 넙죽 받아 쓴 게 아닌가, 내가 굳이 저런 표현으로 비하(?)되면서 까지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제 그만 쓸 때가 된 것일까?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거절할 수 있을까?

괜히 거절했다가 앞길 막히는 거 아닌가?

아..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가.

괜히 신문에 집필진으로 들어간다고 했나.

원고료도 안주는 신문에 뭐한다고 쓴다고 해서.

에이 진짜.


이러고 짜증 팍팍 내고 있는데 문자가 온다. 지잉지잉.


"칼럼은 7월 4일까지 주셔요."


또다시 기한이 생겼다. 정말 나 스스로 뫼비우스의 띠에 들어간 느낌이다.




유일하게 브런치만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을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쓴다. "그나마"라는 표현을 쓴 건 내 직업 특성상 민감한 글을 올릴 때에는 스스로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사실 그 누구도 내 글에 관심 없고, 읽어도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방어막을 쳐 놓는다.


개인적인 생각이라든지, 혹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마치 괜찮을 것 같지만 혹시나 몰라서 병원 가서 돈 주고 안심을 사 오듯이, 저렇게 한 줄 쳐놓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고 나면 뒤에 글은 조금 편안하게 써 내려갈 수 있다.



언제나 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절필하면 글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일까?

모든 글에 댓글이나 조회수, 구독자 이런 기능이 다 사라지면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을까?


하..

 글에서 자유로워지기에는 너무도 "이런 거 좋아하는 애"이기에 글러버린 나는

 다시 칼럼을 쓰고자 한글을 켠다.

(한글 켜기 전에 내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들 글을 읽으며 마음을 정화할까, 고민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크루엘라, 그녀가 부럽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