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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06. 2021

화순아 아프지 마

아이에게 어디까지 말해줘야 할까

드디어 7월이 되었다. 7월!

7월이 이토록 신나는 이유는 월말에 제주도 여름휴가가 예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신나는 마음으로 계획을 짜는데, 남편이 한마디를 건넨다.


"다온이가 돌고래 만지는 체험 하고 싶대"

"..."



다온이가 갓 돌이 지났을 때 무리해서 제주도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다온이에게 돌고래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퍼시픽랜드에 가서 돌고래쇼를 본 적이 있다. 그 시절의 육아일기를 읽어보면 다온이는 결국 돌고래쇼를 다 보지 못하고 잠이 들었고, 나와 남편만 잘 구경하다 왔다. 쇼가 끝나고 돌고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수족관 코앞에 가서 돌고래를 보았는데, 순간 슬픈 마음이 울컥 올라왔다.


'너희는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죽은 물고기를 먹으면서...'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 마음은 육아일기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이에게 동물을 보여주고 싶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인간을 위해 자신들의 터전인 자연에서 억지로 끌려 나와 동물원 그 좁은 울타리 안에서 평생을 무기력하게 보내는 동물들에게 이 무슨 가혹한 짓인가, 하는 양가적인 생각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차라리 동물원이라는 게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가는 제주도이고, 이왕이면 아이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체험하게 기회를 주고 싶은 엄마 마음에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검색을 했다.


"돌고래 조련사 체험"


그런데 마주하게 된 불편한 현실. 나라는 존재가 도대체 동물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가슴이 덜컹했다.



기사를 한참 읽다가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했다.


"나도 봤어"


그렇구나, 남편도 봤구나. 그런데 본 게 끝이야?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남편은 돌고래가 죽어가는 것보다는 아이의 아빠로서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것을 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많아 보였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도 엄마니까, 우리 아이가 돌고래를 만져보고 싶다는데 당연히 그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고, 우리 아이가 한번 만지고 사진 한 장 찍는다고 당장 화순이가 죽는 것도 아닌데, 눈 한번 질끈 감고 강행해버릴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아마 마린파크로 가는 내내, 아이가 체험을 하는 동안, 그리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나의 감정만 앞세워서 괜히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론은 나지 않았다.


날이 밝았다. 아침밥을 먹다가 다온이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다온아, 엄마가 할 말이 있어"

"?"

"다온이 돌고래 만져보고 싶어?"

"응! 제주도 가서 돌고래 만져보고 싶어"

"그런데 돌고래들이 많이 아프대"

"(침묵)"

"돌고래 친구들이 세 마리가 있었는데, 두 마리가 하늘나라로 갔대. 그리고 지금은 화순이라는 돌고래만 남았는데 몸이 많이 아픈가 봐"

"왜?"

"음.. 돌고래 피부는 우리 사람 피부보다 차가운데, 우리가 자꾸 손으로 만지면 너무 뜨거워서 아프대"

"(침묵)"

"그래서 말인데, 우리 돌고래 만지는 건 화순이가 건강해진 다음에 하고 이번에는 그냥 보는 걸로 하는 게 어떨까?"


대화를 하면서 끊임없이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아이에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에 기준선이 안 잡혔기 때문이다.


아이는 이제 겨우 6살, 그것도 5번째 생일이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이고 한참 동물에 관심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어른의 윤리를, 그것도 나의 윤리기준을 들이밀면서 이게 맞으니까, 너는 이거 하지 마, 하고 말하는 게 과연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온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물었다.


"화순이가 왜 아픈 거야?"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주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음.. 그러니까... 다온이 요새 시원하다고 방바닥에 자주 눕지?"

"응"

"방바닥이 다온이 피부보다 차갑잖아, 그런데 다온이가 계속 누우면 결국 이 방바닥은 어떻게 될까?"

"따뜻해지지"

"맞아, 화순이도 그래. 화순이 몸은 우리 몸보다 차가운데 우리가 자꾸 손으로 만지면 화순이가 열이나, 다온이 열나면 약 먹고 병원 가서 주사 맞고 그러지?"

"응"


아이의 눈치를 계속 봤다. 아이가 너무 속상하진 않을까, 너무 깊은 이야기를 한 것일까, 아직은 자신이 세상에 중심에 있어도 될 나이인데, 어른도 이기심에 지키지 못하는 동물윤리를 알려주면서 도대체 난 뭘 기대하는 걸까, 자꾸 마음이 한없이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런데 다온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가 생각난 듯 종이와 색연필을 가져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그저 바라만 보았다. 평소에 그림을 그릴 때 거침없이 그려내는 다온이 답게 지금 당장 떠오른 영감을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정말 쓱쓱 그려냈다. 그리고 짜잔 하고 보여준 그림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감동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뒷장으로 넘기더니 무언가를 쓱쓱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짜잔! 하고 보여준 한 문장은 정말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뿌듯하게도 만들었다.


아직 그림을 그리면서 꼼꼼히 색칠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다온이, 그래도 나는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다온이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그림이야?"

"일단 하늘에 있는 돌고래들은 죽어서 하늘나라로 간 화순이 친구 두 마리고, 바닷속에 있는 큰 돌고래는 화순이, 그 뒤에 있는 두 마리는 화순이 친구들이야"


돌고래 조련사 체험에 이용되던 돌고래 두 마리가 이미 죽었다는 얘기를 흘리듯 했는데 아이는 그것을 기억해서 그림으로 표현해주었다. 비록 하늘나라에 갔어도 그 돌고래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걸까. 아이는 무지개도 함께 그려주었다. 순수하고 예쁜 우리 다온이의 마음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바닷속 그림은 화순이와 또 다른 단체에서 돈벌이에 이용되는 많은 돌고래들이 푸르른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아이에게는 물어보지 않았다. 사실 나의 성격상 조목조목 물어보며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내가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아이는 엄마의 질문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하고 찾아서 대답하는 순간 더 이상 아이의 그림은 자유로운 상상이 아닌 정형화된 틀에 갇힐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화순아 아프지 마"


다온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의 생각을 이해하고 돌고래 체험은 하지 않기로 동의한 건지, 아니면 그거와는 별개로 일단 화순이가 아프다고 하니까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건지, 아직 결론 난 것은 없다. 하지만 내가 울컥한 것은 이 작은 아이도, 이 어린 마음에도 돌고래가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심각하지 않게 가볍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괴로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화순이를 바다로 방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자유주의 경제 사회에서 누군가 어떤 것을 소유하여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그것을 윤리기준에 맞추어 막대한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하고 그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라고 억압하는 것 또한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래서 경제성과 윤리성의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데,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또한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수요를 만들어내는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잘못했다고, 이기적이라고 그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요새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인 "알쓸범잡"에 출연하시는 과학자 "김상욱"님은 이런 말을 했다.


"바깥을 보세요. 모든 자연은 다 조화롭게 살아가요. 그런데 여기를 보세요. 우리밖에 없잖아요. 이렇듯 인간은 자신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은 다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 제거하기도 했고요. 이토록 인간은 이상한 종이예요."


이렇게 써놓고 나니 마음이 더 굳혀진다. 돌고래 조련사 체험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나도 말해본다.


"화순아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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