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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09. 2021

카레밥에 쏟은 눈물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카레밥 한 그릇이 뭐라고 나는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그렇게도 소리를 지른 것일까.

하지만 정말 그 순간에는 내 처지가 너무 처량하고 하루 종일 일하고 돌아와서 저녁밥 한 그릇 편하게 먹지 못하는 내 상황이 너무도 화가 났다.



그날은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둘 다 픽업해준다고 해서 여유롭게 운전을 해 집으로 돌아왔다. 주차를 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이들이 집에 가지 않고 놀이터에서 논다고 해서 놀이터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에어컨을 계속 틀고 왔는데도 차 안 온도 33도, 바깥 온도 35도. 나의 체감온도는 이미 35도를 훌쩍 넘은 상태에서 놀이터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너무 짜증 났다. 그래서 아무 죄 없는 친정엄마에게 나는 집으로 들어갈 테니 알아서 들어오라고 말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날따라 고단했던 나는 진짜 집에 들어와 씻고 에어컨 틀어놓고 누워있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엄마들은 알 것이다. 아이들이 없으면 차분하니 커피 한잔 할 여유가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침에 허둥지둥 나가느라 난장판인 거실, 건조기에서 미쳐 꺼내지 못한 빨래, 세탁기에 쌓여있는 빨래, 비어있는 밥통. 뭐부터 해야 할지 지친 마음에 그저 막막하기만 했지만 이 모든 걸 아이들이 오기 전에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너무 배가 고팠다. 운전을 하는 내내 허기가 져서 멍해질 정도였다. 혼자 자취를 했다면 집에 오자마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라면 물을 올렸을 것이다. 집에 밥이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친정엄마가 카레를 해왔다는 말에 아이들과 같이 밥 먹을 생각에 꾹 참고 거실 정리부터 했다. 늘 거실 정리를 하면서 느끼는 건 아이들이 커서 장난감, 스티커북, 퍼즐, 아이들 책, 트램펄린 미끄럼틀 스프링카 등등 이 모든 게 없어지면 얼마나 거실이 넓어질까 하는 것이다. 대충 거실 정리하고 빨래 돌리고, 밥 안치고, 빨래 꺼내 개기. 기분이 우울해졌다. 아마 몸도 지치고 배도 고프고 그때는 몰랐지만 월경 주기도 돌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현명했다면 내가 월경전에 기분이 많이 우울해진다는 것을 깨닫고, 아이들에게 미리 엄마가 좀 우울하니 엄마 말을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을 텐데, 이미 머리는 멈춘 채로 로봇처럼 빨래를 개고 있었다. 정말 초점 없는 눈으로.



아이들이 돌아왔다. 아이들이 돌아오는 동시에 내 정신도 돌아왔다. 갓 돌아온 정신으로 봐도 아이들은 그저 예쁘다. 손을 씻기고 밥을 먹이면서 나도 밥 한술 뜨려는데, 첫째가 안방에 미처 치우지 못한 내 속옷을 가지고 와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 이렇게 하는 거야? 히히히히히히"


아이는 참 해맑다. 며칠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의 호기심은 당연했다. 자신은 하지 않는데 같은 여자인 엄마가 매일 하는 속옷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게다가 하필 안방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속옷은 지인이 내 취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선물로 준 레이스가 아주 화려 한 것이었는데, 딸의 눈에는 그게 엄청 예뻐 보였을 것이다. 그랬으면 그저 자기가 하며 놀 것이지 그걸 왜 나한테 가져온 걸까. 해맑고 순수하고 악의가 전혀 없던 아이는 밥 먹는 나의 숟가락을 멈추게 하면서까지 나에게 그 속옷을 착용하게 하려고 했고 결국 나는 폭발했다.


"그만해!!!!!!!!!!!!!!!!!!!!!!!!! 엄마 밥 먹는 거 안 보여?"


아이는 얼어붙었다. 나의 뇌도 같이 얼어붙었다. 정신을 차리고 아이의 공포에 질린 눈을 보았어야 하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속에 내재되어있던 분노가 모두 쏟아져 나왔다.


"엄마 밥 먹고 있잖아! 엄마는 밥 먹을 때 밥만 먹고 싶어! 엄마 건드리지 마!"


둘째 아이도 놀라서 날 쳐다보았다. 그때라도 정신을 차렸어야 하는데 나는 이미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정신줄 놓아버린 미친 여자에 불과했다. 아이들이 당황하고 겁먹고 놀라 있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서 다온이가 내가 화를 내는데도 부채를 들고 흔들흔들거리면서 나를 무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또다시 문노가 치밀었다.


"엄마가 화내는데 장난을 쳐? 엄마 화난 거 안 보여? 너 나가!"


아이를 잡아끌어 현관 밖으로 내보냈다. 친정엄마가 말렸지만 이미 그 누구도 나를 때리지 않고서는 말릴 수 없는 상태였다. 희미하게 이성 끈이 그만하라고 나를 끌었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현관 밖까지 내몰린 아이는 문을 두드리며 엄마 할 말 있다고, 문 좀 열라고 발을 동동거리며 외쳤다. 하지만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난 걸까?

그날따라 다온이가 밥도 잘 먹고 있었는데(비록 자기 손으로 먹진 않았지만) 왜 그토록 아이가 미웠을까? 분명 아이가 날 악의로 무시하지는 않았을 거란 걸 그런 상황에도 인지하고 있었는데, 왜 마치 아이가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을까. 도대체가 내가 화를 낼 때도 물리적으로 자신에게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표정으로 날 쳐다보거나 전혀 개의치 않는 다온이의 심리가 궁금하다. 지금도 궁금하다. 아이는 유치원에서도 그렇다고 한다. 너무 주변을 개의치 않아서 선생님이 자꾸 당황한다는 것이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는 알고 있는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러 들어오려고 했으나 문은 아이에게 너무 무거웠다. 몇 번의 시도에 좌절한 아이의 울음이 점점 비명으로 바뀌어갔고, 내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아이를 들어오게 하고 현관에 세웠다.


친정엄마가 화를 내셨다. 그쯤에서 정신을 차렸어야 하는데, 내 앞에 놓인 카레밥이, 속수무책으로 식어 정말 차가워진 카레밥이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엄마에게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손주들밖에 안 보여?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한 시간을 운전하고 집에 와서 이제 겨우 밥 한 그릇 먹겠다는데 그것도 못하는 나는 안 보여?"


결국 눈물이 터졌다. 생각이라는 건 할 수 없었다. 갑자기 너무 큰 슬픔이 나에게 몰아쳐왔다. 이게 뭐 하는 건가. 하루 8시간을 꼬박 일하고, 2시간을 출퇴근을 위해 운전하고, 집에 와서도 3-4시간을 아이들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고 책 읽고,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는 운 좋게 아이들과 같이 잠 안 들면 그거 몇 시간, 아침에 일찍 눈떠지면 그거 몇 시간.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살고 있는데 결국 남는 건 미친 여자처럼 아이들에게 소리나 지르고 밥 한 그릇도 편하게 못 먹는 현실이라니. 서러움을 넘어선 절망감이 몰아쳤다. 목소리가 떨렸다.


손주들이 안쓰러운 마음에, 폭주하는 딸이 못마땅한 마음에 계속 역정을 내시던 친정엄마도 더 이상 말이 없으셨다. 눈치 빠른 라온이가 밥을 다 먹고 내 옆에 와서 눈치를 슬쩍슬쩍 보며 엄마엄마 하는 소리에 내가 만들어놓은 감정이 초토화된 거실이 보였다. 그리고 배도고픈상태에서 소리를 너무 질러 기력이 다 빠져버린 내가 느껴졌다.


 


친정엄마가 다온이를 안아 발을 씻기는 동안 라온이를 안아주고, 쭈뼛쭈뼛 거실로 나오는 다온이를 안아주었다. 내가 마치 데이트폭력을 하는 가해자같이 느껴졌다. 끔찍했다. 내 자신이 소름끼쳤다. 그래도 아이를 더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나를 꼭 껴안고 몸을 떨었다. 내 자신이 더 끔찍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정말 미안했다. 죄스러웠다.


진정한 아이에게 밥을 마저 먹이고, 나도 밥을 떴다. 이미 식고 굳어버린 카레밥. 하지만 맛있던 카레밥. 생난리를 치고도 꾸역꾸역 먹고 있는 나 자신에게 구역질이 났지만, 밥은 정말 맛있었다. 먹고 또 한 그릇을 먹었다. 평소라면 생각지도 못한 양이었지만 두 그릇을 먹고도 허기가 졌다. 위가 허기가 졌는지 정신이 허기가 졌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허기가 졌다.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나는 지쳐있다. 이 지친 심신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면 카레밥에 눈물을 쏟을 만큼의 나쁜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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