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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Jul 27. 2021

먼지 같은 내가 하는 먼지 같은 일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 스스로 해야 할 것만 같아서 하는 행동들이 있다. 결코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고, 내가 한다고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지만 굳이 티 내지 않고, 누가 저격해서 물어보면 괜히 숨고 싶은 그런 일들에 대해 한번쯤 말해보고 싶었다.



얼마 전에 키즈카페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키즈카페에 갔다. 입장하자마자 요란하게 들리는 우리 딸 이름. 그곳에는 이미 다온이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세명이 와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이야기하는 가운데 식판 얘기가 나왔다.


나: 다온이 식판을 아직 못 샀어요. 당장 내일이 방학인데(방학에 위탁급식을 한다고 식판을 가져오라고 했다.)

친구 엄마: 쿠*에 들어가서 찾아봐요.

나: 아, 저는 쿠*을 안 써서요.

친구 엄마: 혹시 보이콧하세요? 쿠* 보이콧?

나: 아, 그런 건 아니고.. 저는 원래 쿠*을 안 써서... 안 쓰긴 하는 건데... 최근에 그런 일도 있고.. 그런데 남이 쓰는 건 뭐라 안 해요. 제 남편도 써요.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있다.)

친구 엄마: 저도 사람 죽어나가는 거 보면 안 써야겠다 싶은데.. 이걸 대체할만한 곳이 없어요.

(이 엄마도 구구절절이 자신이 왜 쿠팡을 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렇게 갑자기 이상해진 분위기. 급하게 다른 소재로 화제를 돌렸다.


내가 쿠*을 안 쓰는 이유는 한참 일본 불매가 심할 때, 쿠팡에 일본 자본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향한 무례함이 한도를 넘어섰다고 생각한 순간 망설임 없이 쿠*을 탈퇴했다. (이 시기에 티*이 우리나라 국정농단의 중심에 서있는 최**기업이라는 얘기에 티*도 탈퇴했다.) 사실 그 이후로는 불매에 소홀해진 게 사실이지만 굳이 탈퇴한 두 사이트에 다시 가입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쭉 안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유를 말할 수가 없었다. 유난스럽다는 낙인이 찍힐까 봐.


 


우리 가족은 이번 주에 제주도에 갈 예정이다. 계획을 짜다가 한 달 전쯤 제주도에 다녀온 지인이 생각나서 코스랑 맛집을 물어보는데, 화순이 이야기가 나왔다. (화순이는 제주도 마린파크에서 돌고래 조련사 체험에 동원되는 돌고래 이름이다.)


지인: 마린파크 갈 거야?

나: 아니

지인: 다른 곳은 언제든지 갈 수 있지만 화순이는 죽으면 다신 못 만져봐

나: 우리 애들은 다른 곳을 더 기대하고 있어


내가 돌고래 조련사 체험을 포기한 이유는 밑에 글에도 썼듯이 돌고래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jsmbja/456

그런데 돌고래가 죽어가는 것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 돌고래가 죽기 전에 우리 아이들에게 돌고래를 만져보게 해야 한다고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지인을 보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마음속으로는 "우리 아이들이 돌고래를 만져보는 것도 아이들의 삶을 다채롭게 만드는 관점에서 보면 너무너무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과연 자신들이 돌고래를 만져서 돌고래가 죽어간다는 것을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과연 좋은 기억으로만 남을 수 있을까? 체험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너만 애 키우냐고 욕먹을까 봐. 왜 남의 육아 신조에 딴지를 거냐고 손절당할까 봐.



내 주변에는 유난히 일회용품을 잘 쓰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일회용 그릇, 젓가락, 숟가락, 물티슈, 커피 컵, 빨대 등등 등등.. 나 역시 일회용품을 안 쓰고 살지는 않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는 건 정말 지나치게 잘 쓰는 사람들이다. 그들 속에 머무는 동안은 나도 일회용품을 쓰고 있지만 요새는 소심한 반항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코로나가 이렇게 심각해지기 전에(8인 모임이 가능했을 때) 우리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면 절대 일회용을 쓰지 않고 손님용 그릇과 숟가락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일회용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 집에는 일회용이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사실 우리 집에는 일회용 젓가락 빨대가 쇼핑백 한가득 있다. 배달음식 시킬 때마다 오는 일회용 젓가락, 편의점에서 커피 살 때마다 붙어있는 빨대를 안 쓰고 모았더니 부피만 커져서 애물단지이다.


그리고 놀이터에 갈 일이 있으면 물티슈가 아니라 수건을 챙겨나갔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뭘 먹다가 애가 흘렸는데 옆에 있던 엄마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물티슈를 건네길래 나는 수건으로 닦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목소리.


"갑자기 환경 생각하는 거야? 어차피 집에 가서 수건 빨면 물 낭비 아녀?"


차라리 세탁기를 한번 돌리는 게 무분별한 물티슈 사용보다 낫다고 정말 두 눈 똑바로 뜨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의 방식에 내 삶의 방식을 굳이 끼워 넣을 필요가 없으니까.



제목에도 썼듯이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먼지보다도 못한 내가 하는 이런 먼지 같은 실천들이 가끔은 너무나도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나도 다시 쿠* 가입해서 급할 때마다 주문하고 싶고, 티*에서 아주 저렴하게 파는 우리 다온이 라온이 취향 저격하는 옷들도 마구마구 사고 싶고, 출퇴근에 늘 들고 다니는 무거운 텀블러 따위 던져버리고 드라이브 쓰루로 멋들어지게 테이크 아웃하고 싶다.


그런데 젠장. 죄책감이 든다. 마음이 무겁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나빠질지 가늠조차 안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무겁게 텀블러에 얼음 가득, 커피 가득 담아 들고 출근하고 손 한번 닦은 핸드타월은 키보드 옆에 고이고이 접어뒀다가 혹여나 쓸 일 있으면 또 쓰고, 집에서는 물티슈 안 쓰고 가제수건에 물묻혀 아이들이 흘린 거나 밥상을 닦는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화장실에서 휴지는 쓸 만큼만 뜯어서 써야 한다고 배웠다기에, 옳다구나! 하고 휴지는 3-4칸만 뜯어서 뒤처리 하라고 알려줬다. (아이들은 말을 참 잘 듣는다.)



내가 유별나게 환경을 사랑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먼지 같은 내가 이렇게 행동한다고 지구에 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지만 왠지 이만큼만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아니 조금씩 조금씩 불편함을 더 감수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왜 이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난 철저히 비친환경적인 사람인데. 그저 그래야 할 것 같다.


앞으로는 매번 물병이나, 음료수에 라벨 뜯는 거 귀찮으니까 무라벨 제품을 이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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