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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 Aug 19. 2021

그곳에선 평안하렴

화순이 명복을 빕니다.


나는 아주 가끔 뉴스를 본다. 내가 업무에 짓눌려 숨을 쉬고 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느낄 때쯤 과감히 업무 창을 내리고 뉴스창을 올리는 것이다. 뉴스창이라고 해봤자 인터넷 창에서 탭을 하나 더 여는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별 관심이 없는 나에게는 새 탭 하나 열었을 뿐인데 기다렸다는 듯이 와르르 최신 뉴스를 쏟아내 주는 인터넷 창이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새 탭을 열자마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정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만약 집이었다면 "헙"하고 숨도 잠시 참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화순이의 죽음은 나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한 달쯤 전에 화순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jsmbja/456

사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화순이에게 왜 이렇게 마음이 가는지 나도 의문이지만, 화순이에 대한 기사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갈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었다. 그 후에는 몰아치는 일상에 화순이를 잊고 살았지만 아는 동생과의 대화 덕에 다시 화순이를 기억하게 되었고, 다시 쏟아지는 일상에 또다시 화순이가 내 머릿속에서 서서히 흐릿해지려는데, 오늘 그녀의 사망 소식을 접한 것이다.



마음이 씁쓸하다. 아니 착잡하다. 이 순간만이라도 내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모든 감정을 짧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생각해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저 제자리이다. 나의 바람도, 한숨도,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마저도.


화순이는 죽기 직전 체험이 없는 빈시간이면 그저 물에 몸을 맡기고 둥둥 떠있었다고 한다. 이는 돌고래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보이는 전형적인 행동이라고 전문가는 설명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화순이의 죽음은 막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슬픈 이름 하나가 또 떠오른다. 바로 정인이다.


나는 사실 정인이 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지 않았다. 나 스스로 도저히 견딜 수 없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고편에서 이 사진이 나오면서, 이 사진이 정인이가 죽기 전 어린이집에서 망연자실한 상태로 앉아있는 모습이라고 설명을 하는데 어떤 감정이 올라오기도 전에 손이 떨렸다. 정말 파르르.. 손이 떨렸다.



그저 쉬는 시간에 물에 둥둥 떠있을 수밖에 없었던 돌고래 화순이, 통증이 느껴질까 봐 웃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게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정인이. 허망하게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이 두 생명을 어찌하면 좋을지. 신이 있다면 신에게 여쭙고 싶다. 이들이 이렇게 고통받으며 살다가 끝내 죽어야만 했을 이유가 있었냐고. 당신의 어떤 뜻이 있었던 것이냐고.


왜 이런 슬픈 일들은 계속 일어나는 것일까? 막을 기회를 왜 누군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걷어차버리는 것일까?



오늘은 자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화순이를 위해 기도해야겠다. 그리고 재판 결과에 화가 나 눈도 못 감았을 것 같은 정인이를 위해서도 제발 정의를 실현시켜달라고 기도해야겠다. 신만이라도 이 기도를 걷어차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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