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 Aug 30. 2022

아저씨. 비웃지 마오.

나는 심각하다오.

제 대답을 들은 아저씨는 피식 웃으셨습니다. 전 엄청 심각했는데 말이죠.


가만히 되짚어보니 셀프주유를 못해서 벌어진 일들이 참 많더라고요. 그리고 하나하나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그만큼 제가 셀프주유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요. 그렇지만 한 푼이 아쉬운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니 집착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억지 공감과 합리화를 동시에 해봅니다.ㅠㅠ) 오늘은 셀프주유를 할 수 있었다면 마주할 일이 없었을 어떤 "아저씨"와의 일을 얘기해보려 해요.



월요일 퇴근길. 집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기어를 파킹에 탁 밀었는데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어요. 


"댕댕댕"

"..."


익숙하지만 정겹지 않고, 많이 들었지만 반갑지 않은 그 소리는 바로 "연료 부족"을 알리는 경고음이었어요. 그래도 다 도착해서 떴으니 내일 출근까지는 문제없겠군, 하는 정말 근자감으로 아무렇지 않게 내려서 집에 들어갔죠.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렸어요. 그래도 안전을 위해서는 주유를 해야 한다는 것을요. (이제는 연료 부족 딱 뜨면 경고등이 깜박거리기 전에 꼭 주유를 한답니다.^^)


화요일 출근길. 시동을 켜자마자 경고음이 저를 맞이해주더군요. 그리고 그제야 기억이 났죠. 내 차는 현재 "연료 부족" 상태라는 걸. 하지만 별 걱정하지 않고 출발했어요. 그동안의 경험으로 연료 부족이 떠도 30km는 충분히 갈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리고 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어요. 학교에 거의 도착할 때쯤에 경고음은 깜박거리기 시작했지만 중요한 건 무사히 도착했다는 거니까요. 그리고 또 몰아치는 업무에 퇴근길에 꼭 그냥 주유소에 들러서 만원이라도 주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어요. 


화요일 퇴근길. 유난히 힘들었던 하루 탓이었을까요. 학교 앞에 있는 비싸지만 한 줄기 빛과 같은 주유소를 그냥 통과해버렸어요. 그때까지도 주유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죠. 그렇게 약간은 운전에만 집중하며 가다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어요. 지나치게 빨리 깜박이고 있는 연료 부족 경고등이요. 너무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동시에 제 자신에 대해 짜증이 확 났죠. 


'아니 어떻게 이 중요한 걸 잊어버릴 수가 있어! 정신 좀 차리고 살자!'


자책이 쏟아졌지만 그러고 있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어요. 자동차 전용도로였거든요. 신호가 없어 앞으로 쭉 달릴 수 있는 시원한 도로이지만 이 도로 위에 없는 건 신호뿐만이 아니었어요. 주유소는커녕 졸음쉼터라던가 잠시 차를 세울만한 곳도 없었죠. 


망했다.


집으로 갈 때는 소위 추월선이라고 부르는 1차선으로 쭉 달려야 나중에 좌회전하기가 편해서 앞에 공사차량이 있지 않는 한 차선을 안 바꾸자는 주위인데, 그때 그 순간만큼은 바꿔야만 했어요. 혹여나 진짜 차가 이 도로, 이 차선에서 멈춰버리면 고속으로 달리는 차가 많은 특성상 사고가 나도 엄청 크게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천천히 2차선으로 바꾸었어요.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달리기 시작했죠. 


운전대를 잡고 있지 않았다면 평소 불안하면 나오는 손톱 물어뜯기를 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아마 피가 날 때까지 뜯었겠죠. 하지만 마음이 긴박한 탓에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기에 손톱은 아주 무사했고, 대신 엄한 어금니를 너무 꽉 깨물어서 나중에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에 턱이 한동안 얼얼했어요. ㅎㅎ


제발 이 자동차 전용도로에서만 멈추지 마라,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달렸어요. 머릿속에서는 조금 천천히 달려야 기름이 천천히 닳을지, 고속으로 빨리 가야 기름 닳는 속도보다 목적지에 먼저 닿을 수 있는지와 같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기본 지식이 없었기에(지나가다 들은 얘기도 없고) 생각을 해봤자 결론도 안 날 테니 그냥 달리자, 하는 결론을 가지고 달렸어요. 


얼마나 달렸을까요. 다행히 전용도로를 빠져나왔어요! 진짜 천만다행. 그런데 이때부터도 문제였어요. 전용도로는 빠져나왔지만 그 지점에 주유소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하얘지더라고요. 그래서 결단을 내렸어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전용도로를 빠져나와 조금 더 가면 터널이 있어요. 그 터널을 빠져나오면 차를 잠시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죠. 물론 차를 세우라고 만들어진 공간은 아니고, 터널을 만들면서 어쩌다 생긴 공간 같긴 했지만 어쨌든 저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곳이죠. 거기서 차를 세우고 돌발을 누르고 급하게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어요. 바로 "보. 험. 증. 권" 처음부터 보험증권 생각을 한건 아니고 남편에게 한 세 번 정도, 친정엄마에게 두 번 정도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고 사무실에 동료분께 전화를 했더니 "그 정도만 갈 수 있어~"라는 낙천적인 대답만 하셔서 차를 세운 김에 손톱을 열심히 깨물면서 생각을 해본 거죠.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이 보험증권에까지 미친 거예요.


평소에는 보험증권에 관심을 안 가진 걸 그 순간 뼈저리게 후회했어요. 여기저기 다 뒤져보는데도 안 보여서 (아마 당황한 상태에서 더 안보였던 것 같아요)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그 순간! 조수석 앞에 수납공간에서 익숙한 로고가 보였어요. 앗! 이거다!라고 찾았지만 2016년.. 다시 한번 눈물이 차오르려는 순간. 증권은 2016년 것이지만 회사가 바뀌지는 않았으니까 전화라도 해보자. 하고 콜센터 번호로 전화를 했어요.


"안녕하세요. **화재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 기름이 없어서 차가 멈췄는데요."

"아, 긴급호출 서비스 접수하시려는 건가요?"

"(얼떨결에) 네.."

"위치가 어디시죠?"

"여기가 자동차 전용도로를 벗어나면 보이는 **터널 지나서 바로 앞이에요."

"전용도로라면 **동일까요? &&동일까요?"


말문이 막혔어요. 초행길 운전 경험이 별로 없던 저는 제가 늘 다니는 **동쪽으로만 전용도로가 뚫린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동 지명이 나왔을 때 또다시 머리가 백지가 되었죠. 


"고객님, 댁이 어느 쪽이시죠?"

"@@동이예요."

"그러면 **동 방향인 것 같아요. 접수해드릴까요? 담당 기사(? - 담당 무엇이라고 하셨는지 기억이 안 나요;)님이 전화 주실 거예요."

"네.."


상담원의 노련함이 부러웠어요. 그리고 친절함이 고마웠어요. 당황해서 어버버 했는데 "고객님! 어딘지 모르시겠어요?"라고 다그쳤다면 전화기 붙잡고 울었을지도 몰라요. 전용도로에서 내내 운전하면서 느꼈던 극도의 긴장감이(차가 멈출까 봐..) 터널 지나서 차를 세우는 순간 "탁"풀리면서 날 도와줄 그 누구도 전화를 안 받는다는 서러움과 합쳐져서 거의 체념 상태였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어요. 


"안녕하세요. 긴급호출 누구누구입니다. **동 쪽 **터널 맞으신가요?"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차를 세웠나요?"

"네"

"돌발 켰어요?"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금방 오셨어요. 


"무슨 일이시죠?"

"차가.. 멈출 것 같아서.."

"...? 시동 켜봐요."

"네.."

"(피식) 깜박거려서 불렀어요?"

"네..."

"(또 피식) 이 정도면 가긴 갈 텐데.. 그래도 불렀으니 기름 넣어줄게요. 채워주는 게 아니라 3L 정도 넣어주는 거예요. 그런데 진짜 멈출까 봐 세운 거예요? 차가 이상하진 않았고요?"

"조금 흔들거리는 거 같아서..."

"그럼 이대로 쭉 가던 정비소 가서 검사 한번 받아봐요."

"네.."

"(웃음) 조심히 가세요."


아저씨가 가시고 한 고비 넘겼다는 안심되는 마음으로 시동을 켰는데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여전히 연료 부족 경고등이 깜박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


하지만 이제 선택권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대로 집까지 갔죠. 주차하고 맥이 빠져서 잠시 운전석에서 앉아있는데 문자가 왔어요. 만족도 조사였죠. 그래서 매우 만족으로 다 표시하고 나니 아저씨의 웃음이 생각났어요. 두 번의 피식. 흥칫뿡! 난 얼마나 긴장했는데 ㅜㅜ 그래도 비 오는 날에 그곳까지 달려오신 모습이 또 떠올라서 감사한 마음도 들었고요. (자책+긴장+서러움+심술보+감사한 마음이 섞인 복잡한 심경이랄까요.)



이런 경험은 비단 초보운전자들만 있진 않을 거예요. 저처럼 이제 1-2년 정도 된 운전자들부터 10년이 넘은 베테랑 운전자 분들도 주유를 깜박하면 얼마든지 마주할 수 있는 일이죠. 시간이 지나고 든 생각은, 누구에게나 당황스러울 수 있는 상황에 있어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가 초보와 베테랑의 큰 차이중에 하나가 아닐까, 였던 거예요. 


운전실력에 그치지 않고 단 하루도 같은 모습이 아닌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에 신속 정확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진리가 몸으로 느껴지는 날이었죠. 그리고 중요한 건 여기서 경험은 "사고"나 "문제 발생"이 아니라 "운전경험"이요. 일단 차를 끌고 어디든 나가야 경험치가 쌓이지 않을까요. 


책으로 배운 연애는 보통 실전에서 먹통 취급을 받지만, 실제 열 번 연애 경험을 한 사람은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지듯이 10가지의 운전 상식을 머리로 알고 있는 사람과 10번의 운전경험이 있는 사람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라고 감히 생각해요. 물론 두 가지의 역량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다면 가장 금상첨화겠지요. ^^


그래서 오늘도 "주유는 제 때!"라는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운전석에 앉습니다. 오늘 하루 내 운전은 엉망일지 몰라도 출발이 가져다 줄 경험은 또 하나의 제 운전 역사에 단단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믿으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일단 밟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