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벌 안 받았어요.
한 번은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별로 좋은 일은 아니지만, 글로 정리하지 않으면 끝내 내 마음속에서 그녀가 원망의 감정으로 남을 것 같아서.
사건의 발단은 무엇이었을까. 몇 년간 관례라는 이름으로 지속되었던 그 어떤 걸 바로잡고자 한 사람이 있었고 그 시작에 모두가 협조했었다. 그 가운데 그녀가 있었고 "돈"이 있었다. 몇 년 치를 한꺼번에 점검하고나니 몇 가지의 착오가 발견되었고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바로잡기로 의견을 모았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건 무엇일까. 죄송하다고 말하고 또 말하고 상대방이 마음이 풀릴 때까지 고개를 숙이면 그것이 바로 잘못을 인정하는 걸까. 만약 끝까지 상대가 수용해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녀의 윽박만이 남은 사과와 설명은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또 다른 국면을 맞으며.
그녀는 모든 책임을 다 자신에게 떠넘긴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났다.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다시는 볼일이 없을 거라며 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잡고 있던 희망도 아닌 미련도 아닌, 누군가가 예의라고 칭하던 끈은 끝내 끊어지고 그렇게 우리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란 말처럼, 정말 끝을 내기 위해 그녀가 거쳐간 모든 것에 절차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나는 그녀를 찾았고, 그도 그녀를 찾았고, 또 다른 그도 그녀를 찾았다. 한 때는 서로 웃고 웃으며 인사했던 사이. 이제는 웃을 수 없는 사이. 너무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 착오가 그녀에게는 유난히 무거웠던 걸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녀의 입장을 이해했다.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행한 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런 우리에게 원망만을 쏟아냈다. 한 치의 양보나 이해, 수용은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담을 타고 넘어가던 날, 나는 내 몸 한가득 흐르던 그녀에 대한 애잔함, 미안함 그리고 이해까지 다 버리기로 했다. 커피를 쏟은 옷을 벗어내듯 길바닥에 다 버려버렸다.
이제는 그녀도 나도 그저 매뉴얼대로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마지막 "그"가 그녀를 찾았을 때,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던 걸까. 한 시간 남짓 흐른 후 "그"가 찾아와 나에게 말했다. 그녀가 남겨둔 일을 우리가 돌아가며 맡았다고 했을 때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벌 받은 거야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치고 지나갔다. 얼마나 큰 억하심정을 쌓아두고 있었기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만남에서 그녀는 얼굴을 보고 저런 말을 해댄 걸까. 화가 났다.
당장이라도 쫓아 가 우리는 벌 안 받았어요. 억울하고 힘든 심정은 알겠지만, 어떤 수습을 원하셨는지도 충분히 짐작했었지만,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이 다 억지였어요. 법을 어겨가며 당신에게 어떤 걸 해 드릴 순 없어요. 여기는 개인이 운영하는 사업체가 아니에요. 모든 것이 법과 규칙 매뉴얼에 의해 철저히 감사받으며 행해지는 공공기관이에요. 그리고 엄격히 말하자면 당신이 손해 본 것도 없어요. 착오가 있었지만 당신이 조금 더 미리 누렸을 뿐.
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이미 그녀의 가슴에도 내 가슴에도 둥글고 뾰족한 대못 하나씩 박혔는데 거기에 망치질을 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싶다.
그녀가 끝내 풀리지 않는 분노로 바랐던 결과와는 달리 또 다른 좋은 인연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나의 복이라 했다. 그래. 나의 복이지.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으로 이제 아프게 꽂고 있던 못을 뽑아내려 한다. 두 손에 꼭 쥐고 운동장에 던져버리며 그녀 또한 기억에서 지워버리려 한다.
건강하시길. 어디서 우연히 마주쳐도 인사조차 건네지 못하겠지만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내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인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