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글을 쓴 다는 것 by 권수호
그의 책이 배송된 날을 기억한다. 둘쨰아이의 원인모를 열이 이틀째 지속되던 날, 회사에 아쉬운 소리를 이틀 내내 해야했던 날, 열보초를 서느라 잠을 3-4시간밖에 못자서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하고 일을 하는지 몽롱했던 그런 날들에 그의 책을 만났다. 안전한 뽁뽁이에 둘려쌓여 현관앞에 내던져있던 그 책을. 택배기사들은 왜이리도 매정할까. 매정할 수 밖에 없는걸까. 하나라도 더 배달해야 자신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의 액수가 많아지니까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유난히 책이 던져져 있는 모습을 보면 지친 하루의 끝에 마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책을 고이 모셔놓고 겉옷을 벗으니 할머니 집에 있던 아이가 아빠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약을 거의 일주일 내내 먹고 있으면서도 아프니까 유치원 안가서 좋다는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아빠가 아이를 씻기는 동안 저녁준비를 하는데 그의 책이 보였다. 물이 끓는 동안 팬이 달궈지는 동안 읽어볼까 싶어서 펼쳤는데, 10분이 채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동안 꽤 많은 분량을 읽어냈다.
그의 책이 벌써 우리 집에 세권. 늘 느끼지만 그의 책은 어렵지 않다. 주제는 무겁고 어려울지 몰라도 그는 자신만의 유머를 적절히 섞어 한없이 무거워 질 수 있는 흐름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렇게 굳이 각잡고 이 책을 내가 제대로 읽어야겠다, 라는 부담 없이 여기저기 집안 곳곳 아무데나 서서 완독을 했다.
나는 책을 읽을때 내 마음에 울림을 주는 단 한문장이라도 있기를 바라며 늘 책 첫페이지를 넘긴다. 그 모양이 감동이나 공감이면 좋고 충격이나 여운이어도 괜찮다. 그저 내가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하나도 남는것이 없다면 너무 공허하고 허무할테니 제발 끝이 이렇게 맺어지지 않기를 매번 간절히 바란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각별히 생각하는 작가의 책이지만 그랬기에 더더욱 제발 한문장이라도 남아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그 바람은 현실이 되어 꽤나 여러군데를 접어놓았다.
'버티는 게 뭐가 어때서.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
하루하루를 버텨낼지라도, 퇴근 후의 삶만큼은 반드시 행복하길 바랐다. - 중략 - 남들보다 조금 느릴지라도, 나타나는 결과물이 미약할지라도, 너는 계속 뛰어야한다. 자잘한 실수에 마음이 흔들려 일주일 동안 글도 안쓰면 안된다. - 98p
그의 앞선책 버티스타(버티고있어도 당신은 슈퍼스타)를 읽었던 참이라 더 공감이 되었던 나의 첫 울림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미 브런치에서도 천단위의 구독자를 가지고 있고, 내로라 하는 출판사에서 책도 냈고, 북콘서트도 하는 작가를 보며 타고나기를 스타작가가 아닌이상에야 그 정도면 이제 글쓰기로 이룰만한건 다 이루지 않았나? 결과물이 뭘 미약하고, 뭐가 조금 느리다는건데.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라라크루의 수장으로 그가 어떤말을 해도 꽁꽁숨겨두었던 부끄러운 내 마음 밑바닥에는 그가 온전히 자신의 책을 내놓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어찌알까. 겪어봤기에 안다고 한다면 그에게는 과거일뿐, 현재를 겪고있는 우리와는 이젠 다르다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 그의 고뇌를 노력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가볍게 읽으면 그가 독자에게 보내는 말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다짐에 다짐을 다 하고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이 쓴 이 문장을 지킬 수가 있으니까.
나는 함께나누는 재미있고 즐거운 행복을 통해 다른사람의 삶에도 재미와 즐거움과 행복이 넘치도록 만들고싶다. -105p
하지만 군데군데 이런 무거운 얘기만 있으면 어찌 이 책이 잘 읽히는 책이라 말할 수 있을까. 그는 한때 개그맨을 꿈꿨다고 앞선 책에 썼을만큼 유머를 포기하지 않는 남자다. 그의 책을 한권이라도 읽어본 독자라면 아마 알것이다. 뭐 굳이 책이 아니라 브런치만 봐도 알 수 있다.
나의 본질이 무엇일까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제일 잘하는게 뭐지? - 중략 - 이제부터라도 한 가지에 집중해보자. 어쩌면 본질이 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언젠가 내가 전업작가가 된다면, 모두 샤부샤부 때문임이 분명하다. - 141p
참, 그답다. 나의 이 진중하고 신중한 글에 "ㅋㅋㅋ"를 넣고 싶지 않지만 다시 봐도 참 "ㅋㅋㅋ"다. 아니 도대체 심각하게 본질에대해 글을 써내려가다가 갑자기 전업작가가 된다면 샤부샤부 때문이라고요? 제대로 건드렸다 나의 웃음코드. 참 궁금하네. 저 샤부샤부 맛. 전업작가가 되는 꿈을 이룬 후에 공을 다 돌릴만한 그 맛. 저 맛. 참 진짜.(ㅋㅋㅋ)
이 밖에도 손바닥 하나에 있는 손가락을 다 접을만큼의 울림들이 많이 남았지만, 하나만 더 쓰고 마무리하려한다.
온도를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눈에 김이 서린다. -중략- 마치 뿌연 안경을 쓰고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셈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뿌연 성에는 사라지기도, 더 두꺼워 지기도 할 것이다. -144p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챕터이다. "뿌연안경" 어쩌면 누구나가 다 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뻔한 조언일 수 있으나 그만의 글감과 그만의 언어로 기가막히게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물론 첫문장에서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와우! 를 외칠정도냐고 묻는다면, 그건 대답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의 원 픽 문장이 바로 이 글에 있음을 밝히며, 저 위에 문장은 아니라는것도 함께 밝힌다.(궁금하면 YES24로..) 그리고 더불어 나의 온도는 어디쯤인가 되돌아보고자 한다.
제목에 썼듯이 그는 글에 정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자주 밥도 내팽개치고, 잠도 던져버린다. 이제는 하도 많이 들어서 아 또 밥굶고 글 썼구나, 새벽에 카페 나가서 쓰고 있구나, 싶지만 책을 읽으며 나보고 저렇게 하라면..? 나는 못한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진정 글에 진심이기 때문이다.
브런치라는 세상을 알게되고나서 이 세상에 글 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중에는 글쓰는것이 본업인 사람도 있고, 취미인 사람도 있고, 왜 쓰는지 모르겠는데 약간의 재주를 타고나서 그냥 쓰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드물지만 글쓰는게 정말 좋은사람도 있겠지. 내가 보기에 그는 아마 그 드물고 희귀한 사람중 하나이지 않을까.
이 책은 약간 글쓰기계에 전설의 포켓몬(글이 진짜 좋아서 계속 쓰는 사람, 하지만 본인이 밝혔듯이 자신의 글이 인정받는게 세상에서 가장 좋다는 지극히 평범한 면도 지니고 있음)같은 그가 당신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책을 사려는데 너무 두껍다, 샀는데 너무 두껍다, 그래서 읽기 싫다. 생각이 드는 사람은 다 재끼고 책의 뒷부분 회색처리 되어있는 부분으로 넘어가 아무 글이나 딱 한편의 글만 읽어보길 바란다. 어느새 뒷 에피소드를 읽고 있는 당신을 발견하게 될테니까.